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자극적인 모양의 디자인은 때론 우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눈만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기만 한다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입에 달기만 한 음식이 깊은 맛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디자인은 깊은 감동을 자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디자인들은 이런 문제를 가리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치장을 한다. 안타깝게도 디자인에 대해 거리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이런 얄팍한 치장에 놀아나기가 쉽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한 디자인이라도 감각에만 머물게 되면 사람에게 오랜 시간 머무르지 못한다.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은 이런 점에서 명확히 구별된다. 정말 좋은 디자인은 외형이 어떻든 사람의 눈을 넘어서서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는다.
모든 예술들이 그렇지만, 디자인이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눈과 같은 감각기관 만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디자인의 아름다운 외형 그 안쪽 깊숙한 곳에 의미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디자인에 가치가 담겨있을 때,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관통하여 정신을 아우르며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그냥 예쁜 사람과 속이 깊은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모양새 뿐 아니라 그 안에 좋은 가치를 품은 디자인들을 보면 그런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뒤에 있는 피자 조각을 보면 금방 알 수 있겠지만, 이 희한하게 생긴 물건은 피자 커터이다. 일반적인 피자 커터와는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단 칼날이 둥근 스테인레스 스틸의 외곽에 날을 세워서 만들어진 것이라 일반적인 피자 커터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특이한 모양의 칼이지만 그냥 굴리기만 하면 피자를 자를 수 있는 기능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기능하기 위해서 둥글고 큼직한 칼날 중심에는 잡기 편하게 생긴 유선형의 손잡이가 비스듬하게 붙어있다.
이 유선형 모양을 한손에 편하게 잡고 굴렁쇠를 굴리 듯 피자 위로 굴리면 피자가 깔끔하게 잘라진다. 일단 이 디자인은 외형에만 그치지 않고 빼어난 기능으로 보는 사람의 내면을 파고들어온다. 그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면모를 가진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피자 조각 위로 칼을 왔다 갔다 하다보면 피자 파편을 튀기며 자르지 않을 수 없는데, 이 피자커터는 아무리 피자 위를 왔다 갔다 해도 피자는 물론이고 피자 위에 얹혀있는 치즈가루도 흔들림이 없다. 그런 편리함은 여느 피자 커터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장점이다. 그리고 이 편리함이 단지 피자를 쉽게 자른다는 물리적인 편리함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디자인에서의 기능성은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심리적인 차원에 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해 보이는 이 피자 커터가 이상하게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것은 이런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피자 커터가 마음을 파고드는 차원은 이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용하는 방식을 가만히 보면, 이 피자 커터는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칼처럼 자르는 것이 아니라 굴리게 되어있다. 물리적으로 편하다는 장점을 차치하고서도, 피자를 자른다는 행위를 매우 우아하고 품격 있는 행위로 승화시킨다.
문화인류학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만든 문화의 핵심은 ‘살아가는 방식’이다. 문화인류학적 가치는 바로 이 삶의 방식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한국 사람은 수저를 쓰고 서양 사람은 칼과 포크를 쓴다. 기능적으로 어떤 게 더 좋은지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양의 칼과 포크에 비해 우리의 수저는 공격적이지 않고, 먹는다는 행위와 음식에 대한 태도를 매우 공손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소소한 생활방식의 차이가 문화를 나누고, 문화적 차원을 고양시키게 된다.
그런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이 피자 커터를 보면 단지 편리한 도구가 아니라 피자를 자르는 일을 아주 격조 있는 행위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기능성을 넘어서서 문화인류학적 가치를 만들고 있는 차원에까지 이르고 있는 디자인인 것이다. 이런 가치들을 통해 점점 더 사람의 마음을 깊게 파고들고 있다. 그런데 이게 또 끝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을 때 이 피자커터는 매우 흥미롭게 변한다. 사실 이 커터를 칼로만 생각하면 일반적인 것들에 비해 크기가 좀 부담스럽다. 특히 작지 않은 둥근 칼날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피자 커터로 쓰지 않을 때 이 둥근 칼날부분은 바닥에 납작하게 붙여 놓게 된다. 사용할 때는 서슬퍼렇던(?) 칼이 바닥과 한 몸이 되면서 날카로운 날을 평평한 바닥으로 숨겨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칼의 위험은 해소된다.
그렇게 둥근 칼날이 바닥과 하나가 되면서 부수적인 역할을 하던 손잡이 부분이 세로로 우뚝 세워지면서 주인공이 된다. 유선형의 손잡이 부분은 그립감이 좋은 인체공학적 형태이기도 하지만, 현대 추상 조각 같은 유기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그냥 보면 하나의 조형물로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이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을 때 이 부분은 마치 작품 대 위에 세워진 조각품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피자커터는 더 이상 피자를 자르는 도구가 아니라 주방 한 켠을 화랑으로 만드는 작품이 된다. 그러니까 이 피자 커터는 사용할 때는 도구가, 사용하지 않을 때는 예술품이 되는 이중적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조각 작품같은 피자 커터이니 이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깊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이 피자 커터는 기능도 뛰어나고, 사용방법도 품격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예술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디자인은 보는 사람이나 가진 사람의 눈을 넘어서서 마음을 깊이 파고들면서 빼어난 존재감을 만든다. 이런 디자인은 단지 예쁘다거나, 기능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서 마치 애완동물처럼 마음에 답싹 안긴다. 금속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무생물인데도.....
이런 디자인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볼 디자인이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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