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눈이 오더니 잠시 영하로 내려갔던 기온이 급격히 올라 이번 주는 '진짜 봄이 왔구나' 싶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적은 양의 비(비가 많이 왔어야 했는데 ㅜㅜ)가 오고, 주말 눈 예보(눈이라도 산불을 잠재울 양이 내렸으면 좋겠다)가 있고, 다시 아침 기온이 영하로 잠시 내려갔다 온다고 한다.
늘 3월에는 꽃샘 추위가 있어 익숙한 추위지만, 4월까지 이어질 거라니...유난히 몸과 마음이 시렸던 겨울인지라...곧 올 봄이겠지만 더욱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두꺼운 겉옷은 벗어버려 다시 입기는 뭐한 날씨, 그러나 아직 뭔가 확 따뜻하지 않은, 가끔은 스산한 환절기에 체온은 유지해주면서도 봄 느낌 나게 해주는 가벼운 아이템을 오늘 이야기 하려 한다.
봄, 가을 환절기에 늘 사랑 받는 아이템, 바로 스카프(scarf) 이야기다.
스카프(scarf)의 기원 : 고대 이집트, 중국, 로마
스카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고,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은 불분명할 수도 있고 논란이 될 수 있다는 애기지만,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했다.
일단 가장 앞선 기록은 B.C. 1350년 고대 이집트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 스카프를 착용했다고 하는데, 최초의 착용자로 알려진 이집트 네르페티티(Nerfetiti) 여왕은 화려한 보석 머리 장식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머리에 실크 스카프를 둘렀다고 한다.
또 하나의 기록은 스카프를 두른 최초의 고대 중국 군대 이야기이다. 중국 군인의 조각상은 B.C. 1000년경에 어깨에 직사각형 스카프를 두른 모습을 보여 준다.
고대 로마인들도 스카프를 사용했는데 그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고대 로마에서는 남성도 따뜻함보다는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시원하고 건조하기 위해 목과 얼굴의 땀을 닦는 용도로, '수다리움(sudarium. 땀 천)'이라고 불리던 리넨 스카프를 목에 두르거나 어깨에 두르거나 벨트처럼 허리에 묶어 사용했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오늘날 여성이 많이 애용하는 스카프를 옛날에는 남성이 주로 착용했다는 사실이다.
지위의 상징이었던 실크(silk) 스카프
B.C. 259년에서 210년 사이의 중국 정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스카프는 군사 계급을 표시하기 위해 군복의 일부로 계속 사용되었다. 장교들은 실크 스카프를 착용하는 반면, 일반 군인들은 목에 면 스카프를 매듭으로 둘렀다.
B.C. 50년에서 A.D. 60년경 로마, 특히 카이사르(Caesar) 시절 상원 의원들은 토가(toga)에 실크 띠나 스카프를 착용했고, 이 실크 스카프 역시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네로(Nero) 황제는 목에 실크 스카프를 두르지 않고는 대중 앞에 나서는 경우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중세 시대에 착용한 스카프에서도 나타난다. 부유한 여성들은 높은 머리 장식을 하고, 그 위에 긴 베일(veil), 고급 스카프를 달았다. 아키텐(Aquitaine)의 엘레오노르(Eleanor) 여왕이 12세기에 이러한 유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당시 새로운 유행의 머리 장식을 살 여유가 없었던 가난한 여성들은 리넨(linen)으로 만든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다녔다.
한편, 17세기, 머리와 어깨를 가리는 용도의 실크거나 레이스 스카프인 스페니쉬 만틸라(Spanish mantilla)는 여러 유럽 궁정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머리와 어깨를 모두 덮는 실크나 레이스 스카프인 만틸라는 귀족 여성들이 입는 넥라인(neckline)이 낮은 드레스가 피부를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을 방지해주었다

<출처> 머리에 실크 스카프를 두른 고대 이집트 네르페티티(Nerfetiti) 여왕, letolama.com / 중세시대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여왕과 그녀의 여인들 / 17세기 Spanish scarf mantilla, countingflowers.co.uk
스카프는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이 1837년 왕위에 오른 후 대중화 되었는데, 그녀는 실크 스카프를 부유층을 하류층으로부터 구분하는 사치품으로 착용하는데 기여했다. 그녀가 1901년 사망했을 때 스카프는 필수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스카프의 역할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전쟁 중 대부분의 패션 아이템들이 그랬듯이 스카프를 착용하는 추세는 쇠퇴했고, 대신 기능성을 위해 착용되었다. 전쟁 중에 스카프, 양말, 스웨터를 떠서 군인들에게 보내주는 것은 여성들의 애국적인 의무가 되었고, 혹독하고 춥고 습한 환경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반면 전투기 조종사들은 흰색 실크 스카프를 착용했는데, 고지대에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적의 항공기를 감시하기 위해 머리를 좌우로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임무의 특성상 실크의 매끄러운 원단이 목이 긁히는 찰과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실크는 서양에서 생산되기 시작했으며, 실크는 타도 잔여물이 남지 않기 때문에 화약물을 담는 가방을 포함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전쟁 중 화약을 운반하는데 사용되던 실크 가방은, 전쟁 후 다시 의류, 스카프로 전환되었고, 밝은 프린트의 가벼운 실크 스카프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실크 스카프의 대히트 : 에르메스(Hermès)의 등장
전쟁 후 실크 스카프를 생산한 최초의 그룹 중 하나는 Liberty of London이었고, 전쟁의 우울함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밝은 프린트를 전문으로 했다.
하지만, 실크 스카프를 대히트 상품으로 바꾼 브랜드는 에르메스(Hermès. 1837년 설립)였다.
1937년, 프랑스 브랜드 에르메스는 최초의 고급 그래픽 실크 스카프, '쥬 데 옴니버스 에담 블랑쉐(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라 이름 지어진 '까레(Carré. 프랑스어로 정사각형을 의미)' 스카프를 제작했다. 그들은 튼튼하고 내구성 있는 최상급 중국 실크를 수입하여 이전의 모든 스카프보다 두 배나 강하고 뛰어난, 그러면서 아름답고 모험적인 그래픽이 담긴 호화로운 사각형 실크 스카프를 만들어냈고, 이 스카프는 왕족과 유명인들에게 대히트를 쳤다. 에르메스의 스카프에는 손으로 그린 디테일, 손으로 말아 만든 가장자리, 승마, 항해, 식물, 신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출처> 에르메스 '쥬 데 옴니버스 에담 블랑쉐(Jeu des Omnibus et Dames Blanches)'라 이름 지어진 '까레' 스카프(1937) & 광고, 에르메스 홈페이지, 조선일보
그러나, 이 실크 스카프는 많은 여성들에게 너무 비쌌고, 이로 인해 더 저렴하고 인공적이지만 실크의 특성을 가진 '인조 실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는, 레이온(rayon) 또는 비스코스(viscose)가 1930년대 등장했다(50년대 후반, 레이온과 비스코스와 같은 인조 섬유로 스카프를 만들면서 스카프는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고 더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실크 스카프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계속 유행하였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여성들은 제조업과 공장 일을 포함한 남성의 업무를 위해 징집되었다. 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안전 문제를 위해 여성들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어야 했고, 목에 스카프를 두르는 대신 긴 머리카락이 장비에 얽히지 않도록 헤드스카프(headscarf)를 사용하는 것이 권장되었지만, 배급으로 인해 구할 수 있는 직물인 값싼 면이나 리넨이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모두가 더 밝은 색상을 원했기 때문에 패턴 스카프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 시기 패턴 스카프가 패션계에 진출했다. 섬유 회사인 Ascher는 전 세계의 유명 디자이너의 여러 디자인을 선보였다. 약 50명의 아티스트가 기여하여 전쟁 후 타 직물들의 부족으로 인해 레이온 직물에 혁신적인 스카프를 선보였는데, 이를 '아티스트 스퀘어(Artist Squares)'라고 불렀다.
실크 스카프 역시 패션계에 빠르게 재등장했고, 에르메스는 다시 인기를 얻었다.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과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영화에서나 뉴욕과 모나코의 집에 있을 때 스카프를 두르는 모습,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가 스카프를 머리띠로 착용하고 다시 팔에 두르는 방식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등 1950~60년대 아이콘들이 에르메스 스카프를 착용하는 모습은 전세계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스카프를 가장 필수적이며 우아하고 다재다능한 패션 액세서리 중 하나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스포츠 경기 행사에서 헤어스타일을 고정시키는데 스카프는 필수 아이템이었고, 여왕의 에르메스 스카프에 대한 사랑은 유명해서,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두른 모습이 우표에 등장했다. 이와 같이 많은 유명인들이 뉴욕 거리를 걸을 때마다 에르메스 실크 스카프를 선택했고, 실크 스카프는 우아함, 힘, 여성성의 상징이 되었다.
<출처> 에르메스 스카프 모델 촬영 당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pinterest, getty image /
스포츠 경기장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여왕, getty image
이 시기 패션계는 낙관주의가 흘렀고, 스카프 역시 유쾌하고 밝고 따뜻하게 디자인 되었다. 머리 스카프는 부유하고 유명한 여성들이 이 고급품을 과시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했으며, 필요할 때 큰 선글라스와 함께 익명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시대의 많은 대형 브랜드는 자신들의 시그니처를 스카프로 옮겼다. 예를 들어, 버버리(Burberry)는 그들의 시그니처 타탄 체크(tartan check)를 스카프에 등장시켰는데, 이는 독특한 체크 무늬로 스카프를 패션 액세서리로 사용한 최초의 패션 하우스 중 하나가 되었고,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살 여유가 없는 여성들은 스카프를 구매함으로 버버리의 시그니처 체크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마찬가지로 샤넬도 가방에 사용된 체인의 상징성을 연결하기 위해 스카프에 체인을 사용했다. 이는 현재도 마케팅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며 여성들에게 대형 브랜드에서 구매한 제품을 과시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실크 스카프를 대체할, 저렴한 소재에 밝고 생생한 디자인을 인쇄할 수 있는 대안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실크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캐시미어(cashmere) 스카프, 파시미나 숄(pashmina shawl) 이야기
캐시미어 스카프는 주로 몽골, 인도, 네팔의 고지대, 캐시미어(cashmere) 염소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속털로 만들어지는데, 카슈미르(Kashmir) 지역의 라다크 캐시미어(Ladakhi cashmere)가 가장 고급인 품종이다.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고지대에 살고 있는 캐시미어 염소는 겨울에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얇은 속 털을 키운다. 봄에 기온이 오르면 자연적으로 털갈이를 하는데, 이때 부드러운 속 털을 신중하게 빗질하면 섬유가 생기고, 이를 얇은 실로 뽑아 통기성과 단열성이 뛰어난 캐시미어 스카프, 파시미나* 숄(pashmina shawl)을 만든다. 따라서, 캐시미어는 따뜻함, 부드러움, 가벼운 질감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천연 섬유 중의 하나로, 일반 양모와는 달리 가벼우면서 부드러운 질감을 가지고 있어 자극 없이 피부를 감싸며 보온성을 제공하는 스카프를 만드는데 완벽한 소재이다. 이러한 섬유의 고유한 내구성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부드러워지는 특성으로 인해, 고급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외에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이처럼 캐시미어 스카프는 장인 정신과 독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고급 액세서리이다.
캐시미어 스카프가 18세기에 소개되었을 때, 그것은 여성들 사이에서 하이 패션의 전형이 되었다. 페이즐리(paisley) 패턴은 캐시미어와 관련해서 특히 유명했는데, 바로 나폴레옹이 아내 조세핀(Josephine)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것을 제조한 최초의 마을이 스코틀랜드의 '페이즐리(Paisley)'라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페이즐리 마을은 5,000명이 넘는 직공들의 고향이었고, 그들이 제조한 랩(wraps)은 그 당시 훨씬 더 인기가 있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Napoléon Bonaparte)는 첫 번째 아내 조세핀(Josephine)에게 선물로 이집트에서 파시미나(pashmina) 스카프를 가져왔고, 처음 그녀는 그것을 두르는 것에 회의적이었지만, 나중에는 평생 400여 개의 캐시미어 스카프를 소유했다고 한다.
<출처> Empress Josephine in Kani Pashmina Scarf, pashmina.com
19세기 후반 여성들의 옷장에서 숄과 스카프 트렌드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90년대에는 부유한 사람들만 착용하던 캐시미어 스카프, 파시미나 숄이 과시가 아닌 현대 여성을 위한 일상적 액세서리로 변형되면서, 고유의 부드러움, 따뜻함, 고급스러움으로 인해 유행이 절정에 달하며 어깨에 두르는 숄로 착용하기 시작했다.
스카프의 현대화
에르메스의 절묘한 실크 스카프부터 에밀리오 푸치(Emilio Pucci)의 대담한 프린트,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상징적인 해골 스카프, 버버리의 유산(heritage), 에트로(Etro)의 보헤미안적 매력에 이르기까지 디자이너들은 스카프를 하이 패션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카프도 빠른 삶에 녹아들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브랜드들은 제품을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기 시작했다.
에르메스는 능직(twill) 패턴의 스카프를 재도입하여 'twilly'라고 불렀다. 이 스카프는 가늘고 길기 때문에 핸드백의 끈에 두르거나 팔 액세서리로 손목의 두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머리띠나 머리끈, 최근에는 허리에 고정하는 벨트로 사용되는 것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캐시미어 스카프도 변화하게 되는데, 단순한 솔리드나 자수가 아니라 수 많은 현대적 패턴, 타탄 체크, 레이스, 세련된 프린트와 패턴, 옴브레 염색 등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프린트 및 패턴 캐시미어 스카프는 여행에 편리할 뿐 아니라 비교적 저렴했기 때문에 추운 계절 일상 액세서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여기에, 특히 자연스럽게 속 털을 잃은 윤리적인 섬유로 만들어지고, 자연적으로 생 분해되는 캐시미어 스카프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윤리적인 제조 공정을 장려하는 지속 가능한 패션의 이상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스카프는 예술적인 작품에서부터 패션을 표현하는 방식, 목에 두르는 작고 따뜻한 담요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스카프는 그것이 단색이든 프린트 패턴이든, 또는 실크든 캐시미어이든, 부드러움과 가벼운 편안함, 따뜻한 보호라는 기능적인 측면으로 착용하든, 헤드스카프(headscarf), 가방 액세서리, 팔찌처럼 사용하든, 심지어 실크 톱(top)으로 착용하든, 모든 드레이프(drape), 매듭, 꼬임은 평범한 옷차림을 특별한 옷차림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우아하고 품위 있게, 혹은 스타일리쉬하게 만들어 준다.
변덕스러운 환절기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 스카프가 주는 따뜻함, 부드러움, 가벼움이라는 긍정적인 느낌들이 우리의 봄마저 행복한 계절로 다가오길 바래본다.
*파시미나(pashmina)는 페르시아어로 '부드러운 금'을 뜻하는'Pashm'에서 유래되었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