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아늑하고 싶은 겨울에 위로 같은 아이템, 카디건(Cardigan) 이야기

김은영 전문위원 승인 2024.12.30 14:45 의견 0

첫눈치고는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유난했던 폭염의 여름이 언제였나 싶게 따뜻한 어묵 국물이, 아직 어딘가에 있을 뜨끈한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왔다.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은 무탈하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한 나에게 쓰담 쓰담 해주고 싶은 달이다. 바깥 날씨는 춥지만 서로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고 싶고 고마운 사람이 떠오르는 달이다. 내리사랑의 절정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하염없는 포근함이 그리워지는 달이다.

겨울이면 떠오르는 뜨개질의 정성이 담겼었던 벙어리 장갑처럼, 목도리처럼 왠지 소박함 속의 포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지는 카디건을 오늘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카디건’이라는 이름은 언제 어디에서

‘카디건(Cardigan)’은 풀오버 스웨터와는 달리 일반적으로 앞면이 트인 니트 스웨터의 일종으로 재킷처럼 착용되는 아이템을 일컫는다.

현재 우리가 아는 카디건이라는 유형의 의류는 수세기 동안 존재해왔을 수 있지만, 카디건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1850년대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 사령관이였던 제7대 카디건 백작인 제임스 토마스 브루드넬(James Thomas Brudenell, 7th Earl of Cardiga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브루드넬은 부유하고 스타일리쉬하기로 유명했지만, 카디건의 지금 이미지와는 달리 전쟁 동안 악명 높은 경기병 돌격을 이끌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전쟁 중에 착용한 몸에 꼭 맞는 소모사 양모로 만든 앞 여밈이 단추로 채워지는 울 재킷은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따뜻했으며 니트라는 소재로 인해 움직임조차 편안하게 해주었고, 이는 카디건의 대중화와 현대 카디건 디자인에 영감을 주었다.

카디건은 처음에는 군복 안에 착용하기 편하도록 민소매 즉 니트 조끼 형태로 디자인 되었고, 1864년 일반적으로 ‘카디건 재킷’이라고 불리는 현대적인 소매 버전이 등장했다. 심플한 버튼 여밈 디자인은 날씨에 따라 빠르게 입고 벗기 유용하게 해주었고 이러한 착용 용이성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카디건이 군복에서 일상 패션으로 전환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카디건의 상승과 확장

‘카디건’이라는 이름은 원래 초기 디자인인 민소매 니트 조끼만을 지칭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유형, 즉 앞이 트인 형태로 재킷처럼 착용되는 의류들로 확장되었다.

1800년대 후반, 대영제국이 확장되면서 영국 패션의 영향력도 커졌다. 스웨터는 절제된 우아함의 상징이 되었으며,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신사들도 자주 입는 영국 엘리트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이 때는 뜨개질 기술이 발전하여 카디건의 더 복잡한 디자인과 패턴이 가능해졌다. 패션 역사학자인 애비 콕스(Abby Cox)는 "집에서 뜨개질하는 것은 18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인기가 높았으며 기성 니트웨어가 더 많이 가능하게 된 기술 발전에 더해 카디건과 같은 니트 의류의 인기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으며, 패션 역사학자이자 큐레이터인 케렌 벤-호린(Keren Ben-Horin) 역시 몸에 맞추기 위해 개별 조정이 필요했던 맞춤형 직조 의류와는 달리 신체 모양에 맞게 늘어나고 조정되는 능력이 있는 스웨터는 대량 생산 산업시대에 이상적인 의류가 되었다고 말한다. 니트웨어는 1880년대 편직 기계의 새로운 개발로 인해 다리뿐만 아이라 몸통까지 딱 맞고 덮을 수 있는 기계 편직 의류가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해지면서 더욱 활력을 얻었다. 이는 니트를 더 저렴하고 다양성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결국 패션 의류로서도 더 적합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이 시대 카디건은 스포츠와 레저와의 연관성이 깊다. 골프, 테니스 및 사냥이나 낚시 등 야외 활동은 실용성과 따뜻함을 가진 카디건을 즐겨 찾게 하였다. 케렌 벤-호린은 또한 많은 중산층이 스포츠에 참여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등 보다 역동적인 생활 방식을 시작하면서 19세기 말부터 여성 의류가 완화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현대 생활의 새로운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신축성 있고 실용적인 스웨터보다 더 좋은 옷이 있을까요?”라며…

<출처> 디자이너 Jean Patou의 제품을 즐겨 입었던 테니스 선수 Suzanne Lenglen,

GETTY IMAGE

이렇게 수십 년이 지나 20세기 초 카디건은 여성 패션에서도 입지를 확고히 하기 시작한다. 니트웨어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 의류들을 여성화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코코 샤넬(Coco Chanel)은 여성을 위한 카디건도 대중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샤넬은 전통적인 남성용 (풀오버)스웨터를 머리 위로 벗고 입을 때마다 머리가 엉망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스웨터 앞부분을 똑바로 자르는 샤넬다운 첫 번째 카디건 프로토타입(prototype, 시제품)을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그 후 샤넬의 카디건은 편안하고 헐렁하며 부드러운 저지(jersey, 니트류)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카디건과 매우 흡사하며 전투용이 아닌 패셔너블한 일상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다. 전설적인 이 초기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카디건 재킷’은 오늘날 샤넬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되었다.

<출처> (좌) houseoffraser.co.uk / (우) savoirflair.com

1920년대의 카디건은 젊음, 안일한 삶, 그리고 반항을 중시하던 1920년대 대학문화와도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캠퍼스 안팎에서 남녀 모두에게 보편적이었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 카디건은 편안함과 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를 끌었다. 헐렁하고 개방적인 디자인 덕분에 캐주얼한 외출부터 공식적인 행사까지 상황에 맞게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다.

카디건의 인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증했다. 전쟁 중 모든 의류는 실용성과 단순성에 중점을 둘 수 밖에 없었다. 집에서 뜨개질 할 수 있는 카디건의 편의성은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전쟁이 끝난 후 다시 패션이 꽃피우기 시작하면서도 카디건은 사랑 받는 아이템으로 남았다.

1950년대에 카디건은 특히 미국에서 프레피 패션의 상징이 되어 종종 버튼다운 셔츠 및 치노 팬츠(chinos)와 짝을 이루었다. 특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과 같은 인물들이 카디건을 입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학문적이고 지적인,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선사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50년대 여성의 스웨터와 가디건은 전시 때 직업전선에 서있던 여성들에게 다시 전통적인 영역 즉 가정(home)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회적 영향으로 인해 당시 인기 있는 실루엣(디올의 뉴룩과 같은)을 위해 플레어 스커트와 함께 섬세한 블라우스 위에 입는 경우가 많아졌다.

패션에서 카디건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계속 발전했는데, 깔끔한 스타일로 유명한 영국의 ‘모즈(Mods)’ 하위 문화도 카디건을 수용하였다. 이 시기 카디건은 캐주얼함과 세련된 요소가 균형을 이루는 룩의 일부로 젊은 남성들이 즐겨 입는 아이템이 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카디건은 편안함의 상징이 되면서 더욱 편안하고 헐렁한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카디건은 당시의 여유로운 태도를 반영하여 오버사이즈로 착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시기 유니섹스 패션이 부상했고, 카디건은 남성과 여성 모두의 필수품이 되어 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

1980년대에는 카디건이 대담하고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 시기 패션은 밝은 색상, 큰 패턴, 강렬한 아이템 등 과잉과 강조의 시대였다. 심플하고 절제의 카디건을 새로운 니트 기법으로 재해석하여 오버사이즈 버튼과 과장된 어깨가 특징인 청키 니트 카디건이 시선을 사로 잡는 눈에 띄는 아이템이 되었다.

반면 1990년대에는 미니멀리즘으로 회귀를 가져왔다.

또한 검소함과 낡은 옷을 강조하는 그런지 패션은 편안함과 다양성을 위해 카디건을 받아들였다. 너바나(Nirvana)와 같은 밴드는 티셔츠나 체크 무늬 셔츠(plaid shirts)위에 겹쳐 입는 좀 더 편안하고 헐렁한 카디건 스타일을 대중화했다. 이러한 ‘안티 패션' 룩(anti-fashion look)’은 카디건의 적응성을 더욱 보여주었고, 주류 패션 트렌드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기술의 영역은 카디건의 진화에도 기여했다. 최신 편직 기계는 훨씬 더 복잡한 패턴과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새로운 기능성 소재는 편안함과 기능성 모두를 향상시켜 다양한 환경에서의 착용을 확대시켜 주었다. 또한,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 인해 친환경 소재, 리사이클링 소재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었고, 윤리적인 생산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디건을 사랑한 사람들

벤-호린(Ben-Horin)은 “특정 연령의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카디건'이라는 단어는 즉시 따뜻하고 아버지 같은 인물인 로저스 씨를 연상시킵니다. 대부분의 다른 의류와 마찬가지로 카디건의 의미는 누가, 언제, 어디서 입었는지에 따라 달라지지만 아마도 한 가지 연관성이 지배적일 것입니다. 카디건에는 몸을 감싸고 따뜻함을 제공하는 방식에 친밀한 느낌이 있습니다.“

또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Queen Elizabeth II)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카디건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블라우스와 주름 스커트에 차분한 색상의 헐렁하고 오픈된 카디건을 매치한 여왕의 모습은 수십 년 동안 볼 수 있었다.

<출처> (좌) Mister Rogers may be the most iconic cardigan-wearer in pop culture history., GETTY IMAGE

(우) Queen Elizabeth II, PA IMAGES

반면 여왕과는 스타일적인 면에서 반대편에 서있는 록 아이콘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1990년대 카디건에 새로운 세대를 선보였다. 그 당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흔히 입는다고 여겨지던, 마치 어머니에게서 빌린 것처럼 소박한 카디건을 좀먹은 청키 니트(chunky knit)와 밴드 티셔츠, 낡은 청바지와 매치해 멋스러움과 동시에 친밀함을 표현해냈다. 밴드의 1993년 MTV Unplugged 공연에서 입었던 커트 코베인의 가장 유명한 가디건 중 하나가 2019년 경매에서 무려 $334,000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J. Crew와 같은 브랜드의 프레피하고 간결한 니트 가디건은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의 옷장에 주요 아이템이었으며, 그녀의 우아한 스타일을 모방하려고 함에 따라 J. Crew 매출은 급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락 오바마가 2008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날 밤, 영부인은 빨간색과 검은색 나르시소 로드리게스 드레스 위에 검은색 카디건을 입었으며, 2009년 엘리자베스 여왕을 만날 때도 착용하였다.

또한, 2020년,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가 새 앨범 ‘Folklore’를 발표했을 때 리드 싱글은 ‘Cardigan’이었고, 앨범 출시를 기념하기 위해 그녀는 실제 카디건을 판매하는 특별한 마케팅을 하였다. 그녀의 싱글 Cardigan 뮤직 비디오에서 스위프트가 입었던 카디건(가장가리에 검정색 줄무늬가 있는 크림색의 두꺼운 케이블(cable)이 있는 브이넥 카디건)은 그녀의 온라인 상점에서 놀라운 속도로 매진되었다. 배우 제시 타일러 퍼거슨(Jesse Tyler Ferguson), 코비 브라이언트의 딸 나탈리아(Natalia) 등 카디건을 좋아하는 유명 팬들은 스위프트가 선물한 카디건을 착용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정도였다.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1억 7,500만 명에 달하는 팝스타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카디건은 다시 핫 아이템으로 급부상하였다.

<출처> (좌) The khaki cardigan that Kurt Cobain wore during Nirvana's appearance on "MTV Unplugged" in 1993, GETTY IMAGE / (중) First lady Michelle Obama wore many cardigans throughout her time in the White House, starting with this mustard yellow number during the inauguration festivities in 2009, GETTY IMAGE / (우) ‘Cardigan’ music video, Taylor Swift, GIPHY

레이어드하기 편해 변덕스러운 날씨에 완벽한 필수품인 카디건의 지속적인 인기는 스타일과 기능성의 조합에 기인한다. 이 아이템은 따뜻함, 편안함이라는 실용성인 핵심적인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격식을 차려입거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능력, 유니섹스한 매력,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한 적응력으로 시대에 맞춰 진화하며 연령, 성별, 계절을 초월하여 사랑 받는 아이템이 되었다.

콕스는 ‘카디건’이 의류의 본질을 훌륭하게 포착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카디건에는 가을, 아삭아삭한 나뭇잎, 사과 사이다와 장작 냄새,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감정과 같은 특정 시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편안함, 익숙함, 안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명절이면 어머니는 할머니가 추모의 의미로 입으시던 크리스마스 카디건을 입으십니다. 카디건으로 몸을 감싸면 소중한 추억과 감정을 감싸 안고 안전감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랜드 맘, 그랜드 팜이 트렌드 용어로 떠다니는 이 계절에 단어만큼이나 포근함을 선사해주는 카디건으로 이 겨울을 이 연말을 포근하게 감싸 입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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