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수트 재킷과 스포츠 재킷 사이, 다재 다능한 클래식 아이템 블레이저(Blazer) 이야기

김은영 전문위원 승인 2023.10.22 15:34 | 최종 수정 2023.11.12 22:19 의견 0

가을이 시작되면서 지난 해부터 조금씩 회자되고 있던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이 패션계를 휩쓸던 Y2K패션의 열풍을 잠재우면서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모노톤이나 자연 그대로의 뉴트럴 컬러(Neutral Color) 같은 절제된 색상과 고급스러운 소재, 우아하고 세련된 스타일로 대변되는 ‘올드 머니 룩’은 스스로 창출해 낸 부를 과시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강조했던 ‘뉴머니 룩’과 상반되는 트렌드로 클래식의 귀환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에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패션과 같은 가치소비를 추구하는 Z세대의 가치관과 부합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절제되고 우아한 올드 머니 룩에도 부합되며 2023FW 기본 아이템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늘 필수 아이템이었던 블레이저(Blazer)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블레이저란? 그리고 그 기원은?

블레이저는 전통적으로는 엉덩이를 덮는 허벅지 정도 길이의 싱글 또는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Double breasted Jacket)으로 남색(Navy) 또는 검정색의 경량 양모 플란넬(wool flannel) 소재로 만들어진 재킷을 말한다. 이는 포멀 수트 재킷과 캐주얼한 스포츠 재킷 중간쯤에 해당되어 포멀한 수트 재킷보다 어깨와 가슴 부분이 더 여유가 있으며 덜 구조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포멀한 수트 재킷과 달리 블레이저는 다른 색상과 패턴 또는 소재의 바지와 함께 착용되는 독립적인 재킷을 말한다. 단색 또는 대담한 패턴(타탄tartan이나 줄무늬), 대조적인 그로그랭 트리밍(grosgrain trimming)이 특징이며, 일반적으로 소모사, 양모 플란넬, 리넨(linen) 등으로 제작된다. 또한 진주조개, 은, 백랍(pewter), 황동이나 금같이 대비되는 소재의 버튼이 달려 있으며, 종종 팀의 로고나 넬슨 단추(Nelson button, 닻과 같은 문양)로 양각 장식이 되어 있는데, 이는 블레이저의 기원인 19세기 영국 보트 및 크리켓 문화 혹은 해군의 상징을 반영한다.

‘블레이저’라는 명칭과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

명칭에 대한 이야기는 1825년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레이디 마가렛 보트 클럽(Lady Margaret Boat Club)이 착용한 빨간색 재킷으로 시작된다. 그 재킷은 특유의 밝은 빨간색 천 때문에 블레이저라고 불렸는데, 이 용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London Daily News(1889년 8월 22일)에서 발견되었으며, "오늘의 기사 에서 당신은 '줄무늬 빨간색과 검은색 블레이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라고 표현되었다 한다. 한편으로는 재킷의 밝은 빨간색상 때문에 ‘빨간색 건지(red guernsey)’ 또는 ‘블레이저’로 표현한 기사에서 처음으로 인쇄되기 시작했다고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 마치 타오르는 듯한 붉은 색을 표현한 것으로 조정용 유니폼 재킷의 이름이 되었다. 블레이저(blazer)라는 단어는 ‘불타는’이라는 뜻의 영어 ‘ablaze’에서 유래한 것이다.

<출처> Members of the Lady Margaret Boat Club, May 1897

또 다른 이야기는 영국 해군의 유니폼이 표준화되기 전 ‘HMS 블레이저(HMS Blazer)’라는 배의 승무원들은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재킷’을 입었는데, HMS 할리퀸(HMS Harlequin) 선원들이 할리퀸 수트를 입은 것에 대한 대응으로 1837년까지 HMS 블레이저의 승무원들은 선장에 의해 파란색과 흰색 줄무늬 재킷을 입었고, 이 줄무늬 재킷을 의미하는 것으로 ‘블레이저(blazer)’라는 단어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밀라노에 기반을 둔 블레이저 브랜드인 Blazé Milano는, 1837년 HMS 블레이저의 선장이 배에 탑승한 빅토리아 여왕을 환영하기 위해 선원들에게 행사에 적합한 남색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과 영국 해군 호위함의 문장을 장식한 금색 단추가 달린 옷을 입힌 순간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이 멋진 블레이저는 19세기 후반에 걸쳐 옥스퍼드와 더럼(Durham) 대학교에서 ‘블레이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경기 중에만 입기 아쉬웠던 선수들은 대학 캠퍼스에도 입기 시작했고, 레터맨 재킷과 마찬가지로 지위를 상징했으며 동지애와 성취감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크로켓, 럭비, 축구 클럽 등 다른 스포츠 팀들도 블레이저를 원했고, 그렇게 확산되어 갔다. 그러면서 ‘블레이저’라는 용어는 조정이든 해군이든 물에서 시작되었지만, 1890년대에는 모든 플란넬 소재의 헐렁한 핏, 그 당시 일반적으로 밝은 색상이었던 캐주얼 재킷이 ‘블레이저’로 사용되게 된다. 결국 블레이저는 유럽에서 너무 널리 입혀지게 되면서 스포츠적 의미가 사라지고 레저용, 심지어 업무용으로도 적합한 의류가 된 것이다.

이렇게 옷장의 필수 아이템이 되어 버린 블레이저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진출하게 되었고,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에 의해 대중화 되었으며, 프린스턴, 코넬, 예일, 하버드와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 학생들이 입기 시작하였고, 여전히 엘리트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블레이저의 부활과 패션계 등장

1893년 6월, 블레이저는 처음으로 패션 잡지인 ‘보그(vogue)’에 등장한다. 기자는 “이제 보트 시즌이 시작되었으므로 양장점과 재단사가 요트 의상을 가져오느라 바쁘다.”며 “내가 본 것 중 가장 스마트한 것은 완벽하게 평범한 스커트에 이튼 재킷이나 롱 블레이저를 입은 것인데, 그 뒷면은 엄청나게 나팔꽃 모양이고 흰색을 향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고 한다.

블레이저는 1950년대 영국 학생들이 교복 블레이저를 스타일리쉬하게 바꾸면서 다시 한번 큰 변화, 부활을 겪게 되는데, 블레이저 추종자 중 런던 출신의 미키 모던(Mickey Modern)은 “이 무렵 가슴 패치 주머니에 로마자로 이니셜을 새기는 것이 유행이었다”, 또 다른 추종자는 “블레이저의 길이를 짧게 줄여 입기도, 넥타이를 풀고 옷깃을 위로 올려 입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줄무늬 블레이저는 1960년대 초반 영국 Mods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고, 1970년대 후반 Mods가 다시 부활되는 시기에 또 인기를 얻게 된다. 특히, 3가지 색상의 줄무늬(stripe) 패턴과 3버튼의 싱글 브레스티드, 여러 개의 단추가 달린 소매가 있는 디자인이 유행되었다. 1964년의 모드 아이콘 The Who(High Numbers) 의 사진에는 Pete Townshend, Keith Moon 및 John Entwistle이 보트 블레이저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다양하게 나와 있었고, 또 다른 모드 밴드인 Small Faces와 모드가 좋아하는 The Rolling Stones, The Beatles 등의 밴드 멤버들도 줄무늬 블레이저 또는 흰색 혹은 밝은 트리밍이 있는 밝은 색상의 블레이저를 입고 있었다.

<출처> Beatles, 1964 / Pinterest

줄무늬 블레이저의 초기 스타일은 영화 Quadrophenia에서 볼 수 있으며, 이후 밝은 스타일의 블레이저는 Austin Powers의 Swinging-London룩의 일부로 선택되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1975년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는 구조화되지 않은 남성용 블레이저를 첫 번째 컬렉션으로 선보이며 다시 패션으로 이끌어 냈다. 안감이 없고 완벽하게 다림질되지 않은 아르마니의 블레이저는 덜 형식적이며 캐주얼 했지만 여전히 전문적이면서 세련되게 보여졌다. 특히, 리차드 기어(Richard Gere)가 1980년 히트작 <아메리칸 지골로American Gigolo>에서 아르마니의 블레이저를 입으면서 ‘블레이저의 왕(King of the Blazer)’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블레이저는 마침내 성적 매력까지 얻게 되고, 1980년대 팬츠 수트가 더욱 보편화되면서 다양한 실루엣, 색상, 프린트 패턴으로 재해석 되었다.

<출처> Richard Gere, on set of the film American Gigolo, 1980 / Shutterstock

블레이저와 여성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여성들이 남성들이 지배하던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전문가로 보이기 위해 남성복을 입기 시작, 블레이저는 반란의 아이템이 된다.

그 후 1930년대가 되면서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과 같은 인기 여배우들이 나비넥타이와 수트, 즉 남성복에서 영감을 받은 패션을 입기 시작했고, 30년대 말 보그(Vogue)는 팬츠 수트를 입은 모델의 표지를 게재하며 “우리의 새로운 슬랙스는 남성적인 테일러링을 자랑하지만, 여성들은 색상과 추가한 액세서리를 통해 완전히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라고 했고, 이 기사는 더 많은 여성들이 블레이저를 입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출처>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캐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 / mirchikomachi.com

1960년대 초에 들어서며 제2의 페미니즘 이 시작되는데,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은 베스트셀러 책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에서 여성을 집에 두는 것은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재능과 잠재력을 낭비한다고 말하면서 주류 언론의 여성 이미지에 반대하였다. 이 운동을 지지하기 위해 여성들은 남성에게서 영감을 받은 옷을 입음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고 한다.

다이앤 키튼(Diane Keaton)은 1977년 영화 “애니 홀(Annie Hall)”에서 중산모, 조끼, 넓은 타이, 블레이저 및 버튼 업 셔츠를 입은 남성복 차림의 캐릭터로 나타나면서 또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또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오리지널 르 스모킹 재킷(Le Smoking Jacket)을 만들었으며, 1975년에 프랑스 보그(Vogue)의 헬멧 뉴턴(Helmet Newton)이 역사적인 사진을 찍었다.

<출처> Yves Saint Laurent Le Smoking

by Helmet Newton / thecodemag.com

전문직 여성이 늘어난 80년대에 들어서며 여성들에게 블레이저는 넓고 패드가 들어간 각진 어깨의 ‘파워 수트’의 재킷으로 더욱 사랑 받게 되었고, 영국 전 총리 마가렛 대처도 “그녀는 남자의 세계에 있었고, 그 역할을 보여야 했다”며 항상 정장을 입었다고 한다.

2000년대 후반까지 블레이저는 여성들의 인기 있는 패션 트렌드로 자리잡게 된다. 종종 더 짧은 길이, 롤업된 소매, 다양한 라펠 및 밝은 색상으로 사랑 받았던 블레이저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크리스토프 디카르닌(Christophe Decarnin)이 발망(Balmain)에 있는 동안 이브닝 드레스 위에 레이어드할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아이콘 아이템이 되었고, 후에는 드레스로도 확장되어 여성들의 옷장 필수품이 되어 버린다.

<출처> Margaret Thatcher / A model wearing a blazer designed by Christophe Decarnin, 2010 / Kate Moss, 2009 / / Rihanna, 2019 / Getty Images

수년에 걸쳐 블레이저는 완벽한 세미 정장 스타일로, 혹은 절묘한 믹스 & 매치 스타일로, 또 지난 몇 년간은 중성(androgynous)이라는 새로운 패션 트렌드로 발전해 오면서, 블레이저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패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알렉스 이글(Alex Eagle)은 말한다. “블레이저는 필수다. 순간적인 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엇이든 위에 걸쳐 입을 수 있고, 청바지와 티셔츠에 세련미를 더하거나, 예쁜 드레스에 남성적인 느낌을 더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할 때면 프로페셔널 해 보이고 항상 시크해 보이는 이 아이템은 열심히 일하는 옷장의 결정판입니다.”라고. 포멀한 수트 재킷과 스포츠 재킷 그 어느 사이에 위치하지만, 블레이저는 ‘가장 단순하며 우아하고 절제된 의류다’라고 칭해지고 있다.

‘The simplest and most elegantly discreet garment’ _ Blazé Milano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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