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패션도 그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패션 관련 큐레이터이자 저술가인 Dennis Nothdruft(데니스 노스드루프트)는 꼭 집어 티셔츠를 가리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티셔츠는 빈 캔버스…세상에 당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를 알리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티셔츠는 어떻게 나를 표현해주는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을까? 티셔츠의 시작부터 하나하나 알아나가 보기로 하자!
티셔츠의 시작이 속옷이었다는 것은 이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겉옷으로 태어나기 이전 최초의 티셔츠 탄생에는 2가지 유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중세 사슬 갑옷의 속옷으로 사용되었던 린넨 셔츠가 시초라는 설로, 이 때의 사슬 갑옷은 작은 쇠고리의 연결로 만들어져 유연함은 가지고 있었으나, 녹이 잘 슬고 태양열에 뜨거워지며 살이 긁히는 단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피부를 보호하는 속옷이 필요했고 이것이 티셔츠의 시작이다라는 이야기가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Merriam-Webster 사전에 의하면 19세기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주로 남성 노동자들은 빨간색 울 플란넬 소재로 만들어진 속옷 “UNION SUIT”를 입었는데, 울 소재의 올인원 형태는 추운 날씨에는 따뜻함과 쾌적함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이었던 반면 여름은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이에 노동자들은 이것을 반으로 잘랐고, 이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 “Long John”이다. 추후 더 부드럽고 통기성이 좋은 면과 양모의 언더 셔츠로 단추까지 필요 없어지게 되면서 티셔츠의 발전은 시작된다.
1904년 COOPER UNDEWEAR COMPANY는 이렇게 개선된 티셔츠를 대대적으로 홍보하였고, 1913년 미 해군 유니폼 개정안에서 이 크루넥 티셔츠는 표준 언더 셔츠(가벼운 반팔 흰색 면 속옷)로 채택된다.
그 후, 1920년 Merriam-Webster 사전에 드디어 공식적으로 ‘T-Shirt(티셔츠)”라는 단어가 등재되었고, 일반인에게 티셔츠가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 미국의 통신판매회사인 Sears, Roebuck and Company이다.
티셔츠! 브랜드 홍보의 아이템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다.
최초의 Graphic T-shirt는 1939년 “The Wizard of OZ(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 또는 1942년 7월 13일자 LIFE지의 표지를 장식한 Air Corps Gunnery School 티셔츠이다.
그 후 50년대 중반, Graphic Tee는 디즈니 캐릭터의 최초 독점 인쇄권을 얻은 Tropix Togs사의 Walt Disney Mickey Mouse로 이어졌고, 디즈니는 자사 캐릭터를 대량생산하며 티셔츠가 속옷이라는 개념을 깨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러한 티셔츠의 홍보사 역할은 ‘Brand 시대’를 맞아 더욱 상업적으로 활성화 되는데, 1960년대 버드와이저를 시작으로 70년대 코카콜라, 1978년 뉴욕시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I♥NY’으로 이어졌다.
승리에서 젊음의 상징까지…티셔츠! 아이콘 아이템이 되다.
제2차 세계대전은 티셔츠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데, 언론의 보도로 티셔츠는 군대의 아이콘이 되었고, 전쟁의 승리는 티셔츠를 영웅, 해방자의 상징으로 만들어 주었다. 또한 수천 명의 귀환하는 군인들이 기념품으로, 승리의 상징적 유니폼으로, 그리고 티셔츠의 편리함에 반해 집으로 가져와 자랑스럽게 점퍼나 스웨터 속에 착용하기 시작하면서 여전히 노동자 계층의 속옷 개념이 남아 있었던 티셔츠는 승리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결정적 유행의 계기는 현 시대와 다르지 않았으니, 바로 50년대 헐리우드 스타들의 착용이 발화점이 된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말론 브란도의 섹시한 남성적 이미지의 상징물을 시작으로,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으로 인해 반항 가득한 젊음의 상징까지 되면서 속옷의 이미지에 불과했던 티셔츠는 상징성을 부여 받게 되고, 이는 티셔츠가 비로서 진정한 Outerwear로서, 하나의 독립된 아이템으로서 각광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 티셔츠! 의사 표현의 매개체가 되다.
1973년 뉴욕 타임즈는 티셔츠를 “메시지를 위한 매체”라고 명명한다.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과 국가를 위해 힘쓰는 군인, 육체노동자들에 대한 공감을 티셔츠 착용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던 젊은 세대는 1964년 평화주의 학생들 주도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표시 ‘No War’가 적힌 슬로건 티셔츠를 착용한다. 이 젊고 불안한 세대는 자기표현, 항의, 메시지 전달의 방법으로 티셔츠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60년대 후반부터 불어 온 평화와 자연 친화적 성향인 히피의 영향으로 ‘Make Love’, ‘Peace’ 같은 메시지를 담은 슬로건 티셔츠가 70년대까지 유행했다.
또한, 1960년대 말 정치적 혼란기에 가장 인기 있는 티셔츠는 마르크스주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로 이상주의자, 우상파괴주의자들의 상징적 표현물이 되었다.
이처럼 정치적 대립으로 사회적 소용돌이가 일었던 60년대 말에서 70년대에 티셔츠는 정치적 문구나 사회적 이념을 담은 또한 정치 캠페인을 위한 매우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메시지 전달 역할로서의 티셔츠의 활용은 패션계에서도 활발했는데 그 대표 주자는 Katherine Hamnett (캐서림 햄넷)이었다. 1985년 마가렛 대처 총리에게서 영국 최고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받는 공식 석상에 참석한 햄넷은 ‘58% Don’t want pershing(퍼싱 미사일 배치에 반대한다)’ 슬로건 티셔츠를 착용하여 정치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했다. 햄넷은 70년대 말 그녀의 대표 'Choose Life' 슬로건 티셔츠를 시작으로 2017년 9월 'Cancel Brexit (브렉시트 취소)' 디자인을 출시하면서 오늘날까지 티셔츠를 통해 정치적 이슈에 대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다른 디자이너들 역시 티셔츠를 통해 자신들의 가치관을 표현하고 있는데,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의 2013년 S/S 컬렉션, 2017년 디올 (Dior)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티셔츠에 표현하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이슈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티셔츠는 비록 단순히 땀 흡수가 잘 되고, 세탁이 용이하며, 저렴하고 실용적인 장점들로 인해 속옷에서 출발하였지만, 시대의 사회와 문화에 깊숙이 침투하여, 그 시대의 정신을 대신 진술해주고 있는 표현의 아이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다.
이러한 티셔츠의 지속적이고 매력적인 역할에 대해 노드러프트 (Nothdruft)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티셔츠는 심플하며…베이직한 형태로 그것은 성별이 없습니다. 티셔츠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가장 민주적인 옷입니다.”라고.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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