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산다는 게 무얼까? 밥 먹고, 걷고, 컴퓨터를 만지고, 옷을 입고, 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우리는 살고 있다.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일상이라고 말하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일상이 그저 그렇게 지속되는 와중에 슬픈 일과 기쁜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가며 평탄한 일상생활에 높낮이를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상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윗 모습이나 뒷 모습을 보이며 새롭게 다가온다. 이럴 때마다 스쳐 지나갔던 여러 일상사들을 다시한번 반추하며 그저 그런 삶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면서 다시 살아가야 할 동력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뿐. 그런 생각들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삶의 보이지 않는 앞, 뒷면을 모두 보면서 앞으로 나아갈만한 여유가 허락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일상을 발판으로 삼아 우리의 눈은 다시 머리 위를 쳐다보면서 뛰기 시작한다. 그게 삶이 아닐까?
잠시이긴 하지만 위르겐 베이의 디자인은 머리 위만 쳐다보며 뛰어다니는 우리를 잠시 멈추어 놓기에 충분하다.
위르겐 베이의 진공청소기로 만든 '먼지의자'
지금이야 이런 푸대자루에 먼지를 모아놓는 진공청소기가 드물어지긴 했지만, 먼지 봉지를 의자처럼 만들어서 진공 청소기 바깥으로 빼놓은 것은 좀 탁월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실용성만 보자면 시대에 잘 맞지 않는 점도 있지만 이 진공청소기는 무언가 일상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데에 있어서는 시대를 훨씬 앞장서고 있는 것 같다.
이 디자인에 담긴 의미는 보이는 모습과 같다. 청소기 바깥으로 나와 있는 비닐봉지는 어떤 특정한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 속에 먼지들이 담기면서 풍선에 바람이 차는 것처럼 모양이 만들어진다.
청소를 하면할수록 먼지 봉투에는 각종 쓰레기와 먼지가 차곡차곡 쌓이고, 그런 과정에서 먼지 봉투의 모양이 완성된다. 청소기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을 줄이기는 하지만, 버려야 할 봉투가 쓸모없는 먼지들에 의해 모양이 분명해지고 진다.
비록 속은 더러운 찌꺼기로 충만하지만 그럴수록 겉은 점차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뀐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것으로 인해 단지 실내를 청소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나 일상적인 도구 자체도 대단히 의미있는 것으로 바뀐다.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물리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 이론 즉, 에너지는 점점 쓸 수 없는 상태로 바뀐다는 논리까지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쓸 수 없는 쓰레기가 모이면 모일수록 쓸 수 있는 물건으로 바뀐다. 디자인이라면 기능성만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던 차원에서 고전 물리학의 전제를 정면 도전하는 존재로까지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위르겐 베이는 이처럼 디자인의 존재가치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고 바꾸는 그런 문제작들을 내놓으면서 단지 아름다운 디자인, 단지 잘 팔리는 디자인, 단지 편리한 디자인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우리의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하게 하고 있다.
이런 디자인을 통해 우리는 단지 문학적인 차원에서 일상을 가끔 새롭게 보는 수준이 아니라 일상의 본질, 나아가 우주의 본질을 재조명하게 된다. 저 높은 언덕을 향해 있는 우리의 눈을 코 앞으로 당겨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 삶의 목적 등에 관해서도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한다.
물론 그런 거창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의자모양의 먼지 봉투가 달려있는 진공청소기 그 자체 만으로도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디자이너는 단지 하나의 디자인을 했을 뿐이지만 그 하나의 디자인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복잡하면서도 즐겁기 그지 없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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