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Gabriele Chiave 의 "Apostrophe"
중국의 현자 임어당은 "수학자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묘령의 처녀하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낫다"라고 했다. 높은 가치와 고상한 논리가 초월적인 힘으로 세상을 계도하고 이끌어 가는 것 같지만, 희노애락을 탑재하고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손에 잡히지 않는 매력 보다는 눈으로 들어오는 심쿵하는 매력이 더 좋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 골치 아픈 수학자와 마주보고 이야기 하고 싶어 할까? 무슨 이야기를 하든 매력적인 사람과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그 시간은 아주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디자인도 비슷하다. 자기 의무에만 충실하고 외모 또한 그런 의무에만 충실한 기능적인 디자인은 고맙긴 하지만 수학자와 함께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재미없는 건 사실이다. 좀 어설픈 구석이 있더라도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훨씬 낫다. 뭐 어렵게 모더니즘이니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묘령의 오뚜기 모양은 우리의 마음을 아주 크게 끌어당긴다.
유려한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몸체는 과격한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눈을 공격적으로 파고 들어오기 보다는 눈을 타고 들어오는 맛이 있다. 자기를 애써 내세우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곡면의 흐름이 무척 매력적이다. 아래쪽의 묵직하고 둥근 덩어리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윗부분은 마음 놓고 위쪽으로 강렬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둥글고 뾰족한 형태의 움직임들이 서로 다이나믹하게 어울려 강한 인상을 만들고 있는 조각처럼 보인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이루어진 금속성 몸체가 번쩍이는 광택 없이 묵직한 무게를 아래로 담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차가운 재료의 질감은 무광 처리된 표면으로 인해 따뜻한 피부를 얻었고, 몸무게의 대부분을 둥근 아래쪽에 싣다 보니 언제나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도 한 손에 들어오기에도 모자란 작은 크기의 물건이지만 덕분에 넉넉한 여유와 덕을 가진 물건이 되었고, 손만 가까이 가져가면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기능은 이런 거다라고 크게 외치지는 않지만 눈에 띄지 않게 형태와 기능을 배려한 면모들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나저나 이것은 모양만 인상적인 작은 조각품이 아니라 오렌지 껍질을 까는 도구이다.
크기가 너무 작고 모양이 예쁜 까닭에 팬시 용품이나 캐릭터 상품의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자칫 모양만 앞세운 쓸 때 없는 물건 취급을 받을 공산도 크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작은 물건은 더 우리의 마음에 묘령의 대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반전의 효과도 커진다. 이 작은 물체가 얼마나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써보면 크기와는 달리 매우 긴요하다.
너무나 맛이 있지만 그 맛을 보기 위해서는 두터운 껍질의 장벽을 넘어서야만 하는 오렌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오렌지의 두터운 껍질을 넘어선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커다란 과도를 가지고도 어떻게 하기 어렵고, 손톱은 과불급이고, 온갖 도구들을 총 동원해서야 겨우 어렵게 오렌지의 맛을 보는 경험들을 누구나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뚜기처럼 생긴 이 우아하고 조그마한 덩어리 하나만 있으면 그런 문제가 일시에 해결된다.
하늘을 향해 있는 뾰족한 부분. 그 중에서도 낚시 바늘처럼 뾰족하게 나와 있는 부분을 이용하면 난공불락의 오렌지 껍질은 아주 고분고분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낚시 바늘처럼 삐져나와 있는 부분의 높이가 오렌지 껍질의 두께와 비슷하고 유려하게 흐르는 몸체의 곡면은 오렌지의 둥근 몸체를 아주 부드럽게 흘러가도록 한다.
즉, 이 오뚜기 같은 물체를 한 손에 잡고 오렌지 껍질에 대고 주욱 그으면 오렌지 껍질 안쪽의 속살에는 전혀 손상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오렌지 껍질을 마음대로 잘라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있을 때는 다소곳한 묘령의 여인 같지만 오렌지 껍질 위에서는 단호하게 자기의 능력을 보여준다. 자기의 기능성을 물리학이나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설파하는 독일식 디자인에 비해 이 디자인은 묘령의 여인처럼 자신의 능력을 감추면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이런 디자인이라면 사용하기 보다는 대화를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싶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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