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익숙한 사물이 익숙해 보이지 않을 때 우리의 시선과 마음은 그쪽으로 강하게 이끌리게 된다. 이 가방이 그렇다. 유려한 곡선을 이루며 아름다운 조각 같은 자태를 이루고 있는 모양은 가죽이나 천으로 만들어진 가방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형태가 이 가방의 럭셔리함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가방이 루이뷔통의 다른 가방들과 완전히 다른 형태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리콘이 무엇인가?
실리콘은 반도체나 성형분야에서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름이다. 쿠션성이 강해 부드럽고 탄력이 좋으면서도 질기고, 표면이 강해서 각종 공업부문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첨단의 공업적 재료이다. 하지만 실리콘은 럭셔리 가방의 재료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실리콘은 기능성이 뛰어난 대량생산적 재료이기 때문이다.
흔히 첨단의 재료를 사용하면 굿 디자인이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공업적 첨단재료와 럭셔리는 오히려 안 어울린다. 재료의 물성이 뛰어난 것과 럭셔리함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주왕복선에 쓰이는 최첨단 세라믹으로 그릇을 만들었다고 해서 로젠탈 도자기보다 더 비싸고 뛰어난 그릇이 될 수는 없다. 대체로 첨단의 공업적 재료들은 뛰어난 실용성을 싼 가격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자하는 의도로 개발되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럭셔리한 물건들과는 길을 달리한다.
그런데 이 가방에서는 그런 공업적 재료를 통해 매우 럭셔리한 매력이 만들어지고 있다. 알고 보면 상당히 모순적이며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이렇게 일반적인 선입견의 허를 찌르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일반적으로 상품은 재료에 가해지는 사람의 손이 많이 갈수록 고급스러워진다. 아무리 산업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수공업적 공정을 많이 거친 물건들이 가진 가치를 최첨단 재료로 흉내 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루이뷔통 가방은 순전히 공업적인 재료만으로 그런 럭셔리한 가치를 만들고 있다. 질감이 건조하고, 물셀 틈 없이 매끈한 가방의 표면 재질이 어떻게 피부에 촥 감기는 가죽의 감촉에 대적할 수 있었을까.
이 가방을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는 실리콘 재료만이 가지는 특징에 주목했다. 루이뷔통 가방의 럭셔리함은 무엇보다 가방의 표면에 새겨진 모노그램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세상의 그 어떤 값비싼 재료나 손길도 루이비통 가방표면에 2차원으로 프린트 된 모노그램 로고를 3차원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자하 하디드는 루이뷔통 가방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모노그램을 마치 조각처럼 가방의 표면으로부터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모노그램은 더 이상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를 가지는 존재로, 만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루이뷔통을 형성하는 럭셔리함이 눈만이 아니라 촉감으로 인지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실리콘 재료나 금형으로 찍어내는 공업적인 방법으로만 만들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가방의 표면으로부터 튀어나온 모노그램이 선명한 그림자를 가질 수 있도록 가방의 색깔을 지워버렸다. 덕분에 고동색 배경색에 검은색의 문양이 칠해진 기존의 가방이 흉내 낼 수 없는, 그리스 조각이나 건축에서나 볼 수 있었던 정갈하고 정신적인 품격이 이 실리콘 가방에 불어넣어졌다.
그리고 아무리 마찰을 가해도 닳지 않는 강인함에, 살결을 흉내(?)낼 수 있는 부드러운 촉감을 가진 실리콘이라면 산업계 출신이라는 자신의 낮은 신분(?)을 가리고도 남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자하 하디드는 충분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재료를 완벽히 이해하고 격조 높게 활용할 줄 아는 자하 하디드의 미적 통찰력이 돋보인다.
이렇게 자하 하디드는 실리콘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을 적절하게 극대화시켜 장인들의 솜씨와 대적할 수 있는 가치로 승화시켜 놓았다. 그래서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이 루이뷔통 가방은 하얀 속살을 드러내면서도 수많은 루이뷔통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방이 된 것이다. 그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최대한 활용하여 재료의 신분을 이렇게 상승시킬 수 있는 디자이너도 없을 것이다.
가방의 표면 위로 튀어나온 루이뷔통의 상징은 새하얀 몸체 위에 자신의 존재를 그림자와 더불어 선명하게, 그러나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하 하디드의 분신과도 같이 표현되어 있는 우아하면서도 다이나믹한 곡선의 아름다운 형상은 마치 곡선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다이나믹한 곡선은 루이뷔통의 럭셔리함을 압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고고하고, 진귀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가득 찬 명품을 이처럼 공업적 재료로 완벽히 재해석한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이런 점을 보면 자하하디드는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루이뷔통 가방을 디자인한 자하 하디드의 본업은 건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가방을 디자인 한 자하 하디드는 얼마 전에 생을 달리 했으며, 우리에게는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를 설계한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건축가로서도 그녀는 카리스마 가득한 곡면의 작품으로 유명했으며, 세계 건축계를 주도하는 건축가였다.
건축가로서 이라크계의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유리하지가 않았지만, 그런 불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정상에서 활동을 했던 건축가였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았던 사람이라서 그녀의 상실은 매우 아쉽게 다가온다. 그녀는 항상 상식과 충돌하는 건축들을 내놓으면서 건축계의 판도를 바꾸어왔다.
루이뷔통의 가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녀는 건축을 벗어난 분야에서도 많은 디자인들을 선보였었다. 건축가라면 커다란 건축물만을 디자인 할 것 같지만 자하 하디드는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의 상품이나 각종 인테리어, 기타 제품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까지 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분야는 다양했지만 그녀가 디자인했던 모든 디자인들은 그녀의 건축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유기적인 곡면의 흐름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아함과 끝을 알 수 없는 격조로 가득했다.
그런 고품격의 유기적 디자인은 이라크 출신인 자하 하디드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변화무쌍한 사막의 모래 산의 형태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자신의 태생적인 문화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건축관, 새로운 디자인 이미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루이뷔통의 우아한 곡선도 바로 이런 그녀의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역시 멋과 아름다움은 꾸며지는 것이 아니라 우러나오는 통찰력에 기반 한다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예순에 접어들면서부터 세계적인 활동을 했던 그녀의 파격적 행보는 참으로 볼만한 것이었는데, 더 이상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아쉽고 또 아쉽다. 이제 그녀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거주하면서 후세의 칭송과 비판을 더하면서 더욱 역사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이 루이뷔통의 가방도 그런 역사적인 행보의 일환으로 가치매김을 곧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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