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스트아이템 ] 좋은 디자인(Good Design)이란 무엇인가?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프루스트 의자

최경원 전문위원 승인 2020.03.27 15:45 의견 0

디자인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Good Design’이라는 말이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직역하면 ‘좋은 디자인’이라는 뜻인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디자인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말이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가장 좋은 디자인’을 쫓아 헌신했었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 말을 미술이나 음악 등의 분야에 적용해 보면 손발이 금방 오그라든다. ‘좋은 미술’, ‘좋은 음악’이라니! 미술이나 음악 등의 분야에서 이런 것을 창조의 목적으로 주장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까?

지금에야 ‘Good Design’, ‘좋은 디자인’이라는 말이 독선적이고 개념적으로 고급하지 않다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지만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그러기가 힘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자인 분야에서 이 말은 산업생산체계를 등에 업고 서슬퍼런 기세로 산업적, 사회적 윤리성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Good Design’디자인이라고 정해져 있는 심플하고,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벗어나면 바로 안 좋은 디자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는 디자인 바깥으로 추방되기가 일쑤였다. 그런 디자인은 디자인의 바깥 언저리에서 순수미술이나 공예의 어느 부분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Good Design’의 독선은 이런 것이었다. 물질의 기본이 원자이듯이 디자인의 본질은 기능이고,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누가 뭐래도 변하지 않는 보편적이란 믿음이었다. 얼핏 보기에 맞는 말인 것 같지만 20세기 자연과학적 세계관을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디자인에 적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디자인은 자연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확고부동한 진리라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분야도 아니다.

1970년 대 부터 이탈리아에서는 ‘Good Design’의 이런 독선을 거부하는 디자인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기능주의가 완전장악하고 있던 세계 디자인계는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변화의 흐름을 최첨단에서 끌고 있었던 사람이 안레산드로 멘디니였다.

1978년에 선보였던 ‘프루스트’ 의자는 기존의 디자인에 대한 비판정신이 매우 집약되어 표현되었고, ‘Good Design’을 붕괴시키는 폭탄이 되었다. 이 의자를 보면 당시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새로운 디자인 관을 밀도 높게 느낄 수 있다.

지금 봐도 이게 디자인인지 의문이 들고 혼란을 초래한다. 모양은 박물관에서 가져온 것 같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소파인데, 그 위에 칠해진 색이나 조형적인 이미지는 현대 추상미술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 의자는 앉을 수가 없다. 아니 앉지 못한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프루스트의자 (Proust Chair)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몇 개가 있는데 모두 미술품처럼 전시되어있다. 그런데도 이것은 의자이고, 디자인으로 대접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어떻게 이런 의자가 디자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의자에 담긴 멘디니의 정신 때문이었다. 멘디니의 목적은 이 의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이 의자는 하나의 총이었다. 그가 이 의자로 겨냥했던 것은 ‘Good Design’의 독단이었다. 꼭 디자인이 기능만을 추구해야 하는가? 그렇게 기능만 추구하게 되면 편리한 기능만을 쫓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찾고, 그것으로 새로운 것만 대량으로 만들게 된다. 다 좋은데 그로 인한 자연과 자원의 훼손은 어떻게 할 것이며, 기능 바깥에 있는 인간의 정서나 윤리, 문화 등이 황폐화되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 멘디니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새로운 재료를 쓰고,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을 피했다. 대신 기존의 오래된 가구를 선택하고, 그 위에 점묘파 기법으로 색점을 찍어서 새로운 의자 디자인을 했다. 자기가 새롭게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쓰임새 있는 의자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 프루스트 의자는 의자 디자인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디자인을 붕괴시키는 총이자 폭탄이었다. 당장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존의 독단적인 디자인을 와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쓰임새를 가진 디자인을 하는 것 보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이념적 디자인을 하는 것이 먼저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프루스트 의자는 의자 디자인이 아니라 ‘Good Design’ 이후의 디자인 흐름을 디자인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향후 디자인의 지침서이자 새로운 디자인을 주장하는 상징 디자인인 것이다.

아무튼 그의 이런 시각적 주장은 당시 디자인계에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그리고 기능성을 방패삼아 무조건 많이 만들고 무조건 많이 팔아야 한다는 당시의 독단적 디자인관에 대해 참회를 요구하는 엄중한 경고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프루스트 의자는 1980년 대 초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흐름을 이끌어 내기에 이른다. 프루스트 의자의 기능이나 임무는 그렇게 성공적으로 수행된다.

이 세상에는 기능적으로 쓸모 있는 의자는 수없이 많다. 아직도 이 의자를 일개 의자로 비판하거나, 이 의자의 역사적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침반이 중국에서는 방향을 찾는 도구에 그쳤지만, 유럽에서는 식민지라는 선물을 안겼다. 같은 물건이라도 쓰임새의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쓰임새는 좁은 물리적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루스트 의자는 일반적인 디자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시공간에서 대단한 기능을 수행했고, 또 엄청난 성과를 얻었다. 디자인도 아주 통이 큰 디자인이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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