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건물이 처음 나왔을 때의 엄청난 논란들과 사회적 파장을 생각하면, 런던도심 한 복판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이 건물의 모습은 참으로 생경하다.
지금 시각에는 도심 한복판을 장식하는 명품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공업단지에나 세워져 있어야 할 건물처럼 보인다. 기계적인 형태에 차가운 광택이 번쩍거리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스며들 틈도 안주고 그대로 반사시켜 버린다.
20세기의 공장을 홀로 건조하게 이미테이션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기세등등했던 산업시대의 퇴조를 은유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이제는 첨단기술로 무장한 공장이기 보다는 증기기관으로나 굴러갈 것 같은 공장처럼 보이니 그동안 시간도 많이 지나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건물이 처음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앞서있었던 모습으로, 세계 건축계를 강타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이끌었었다. 공상과학 영화의 광선총처럼 번쩍거리는 표면의 질감과, 번쩍거리는 만큼 단단하고 역동적으로 보이는 건물의 구조는 당시에 가장 핫한 자태였다. 모양만 두드러지는 것이 아니었다.
리처드 로저스의 '로이드 빌딩'
이 건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건물은 토지의 활용도를 집약적으로 구현해야 했고, 일체의 장식이 없어야만 앞서 간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모더니즘 건축’, ‘기능주의 건축’이었다.
이들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윤리적이라는 명분을 독점하면서, 2차 대전이후 세계 건축의 흐름을 손아귀에 쥐었다. 그리고 일체의 다른 접근을 허락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동안 세계 건축의 흐름을 장악했었다. 반대편에서 볼 때 그것은 권력이었고, 독단이었다.
마침내 1980년대를 전후해서 기존의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원성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곧 세계적으로 새로운 건축의 흐름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경향들이었다. 이들은 곧 기존의 모더니즘 건축을 밟고 올라서서는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건축이라는 정원에 수많은 가치의 꽃이 필수 있게 했다.
리처드 로저스의 로이드 빌딩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여러 경향 가운데에서도 첨단 기술을 화두로 삼아 건축의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 건물에서는 그간 건물 안에 꽁꽁 숨겨졌던 것들이 전부 바깥으로 차출되었다.
그동안 건물 안쪽에 감추어졌던 것들은 갑자기 건물을 장식하는 요소로 바뀌었고, 이런 발상의 혁명을 통해 건물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은 단번에 무너졌다. 그러니 이 건물은 이후에 나타날 건축물에 상상력을 북돋워주는 명작으로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칭송을 얻었다.
하이테크 건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이 건축물은, 기존의 모더니즘의 딱딱함을 붕괴시키고 건물에 새로운 가치를 집어넣은 훌륭한, 그리고 파격적인 건물로 인정받았었다. 게다가 건물에 내장될 부분을 모두 건물 바깥으로 꺼낸 것은 기존의 건축물에 대한 반항의 의미로 해석되면서 아방가르드한 건축으로서의 지위도 함께 얻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이 건물은 단지 기술적인 이미지만을 앞세웠던 것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이 가지고 있었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비판하는 건강한 정신의 표출이었다.
그런데 기세등등했던 모더니즘 건축이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져가면서 하이테크를 추구했던 이 로이드 빌딩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존재감이 희미해져갔다. 뿐 만 아니라 보석처럼 번쩍거리며 존재감을 뽐내던 건물이 오히려 그 번쩍거림 때문에 황량해져서 이제는 도시 한켠에서 그림자처럼 서있게 되어버렸다.
이 건물은 하이테크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번쩍거리는 것을 하이테크로 봐주었을 때만 효력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런 차가운 하이테크 이미지가 눈을 시리게 만들고,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마음이 변덕스러워진 것일까. 아마도 지금의 하이테크가 IT로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소프트하고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신속한 이미지가 최첨단으로 느껴지니, 금속성의 번쩍거리는 딱딱한 기하학적 형태는 이제 철지난 로우테크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시대의 미감은 언제나 머물러있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 노먼 포스터의 스위스르 빌딩 근처에 서늘하게 서있는 모습에서는 더이상 파격적이고 뜨거운 비판 정신이나 새로움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그만큼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이제는 이 금속성 강한 건물에 붙어있는 하이테크라는 간판이 이 건물을 더 스산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근처에는 한때 런던의 상징, 런던의 랜드 마크로 여겨졌던 노먼 포스터의 스위스르 빌딩이 있어서 그런 느낌이 더해진다. 두 건물이 지근거리에 있어서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한 때 시대를 풍미했던 이 건물의 명성이 바로 이웃에 있는 건물로 이전한 것 같아서 안타까움이 더 한다.
오늘날 자하 하디드의 유기적인 건물들이나 프랭크 게리의 휘어진 건물들이 건물에 대한 선입견들을 무자비하게 부쉬어 버리는 상황에서, 금속성의 하이테크 이미지는 더 이상 하이테크가 아니라 증기기관을 연상시키면서 낡은 시대의 유산으로 퇴락해 보이기까지 한다.
건축이, 예술이 하이테크 즉, 기술에만 기대었을 때 그 미래가 얼마나 초라해지는 지를 잘 보여준다. 기술은 항상 발전하고 있다. 앞선 기술은 언제든 평범해진다. 건축물에 담긴 정신이 기술에 자리를 내어 주었을 때 닥치는 불행한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가지지 못한, 그래서 지금도 테크놀로지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예술가들이나 디자이너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건물이 아닐까 싶다.
글 ㅣ 최경원 ,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
<필자 소개>
현 디자인연구소 대표이자 연세대 겸임 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한국의 인문학적 미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홋’이라는 브랜드를 런칭하여 운영 중입니다.
머스트 아이템은 기능성만을 추구하는 TECH 기반의 상품이 아닌 인문학적 감성이 함께 녹아든 상품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발행,편집자 주>
저작권자 ⓒ 머스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