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능적인 군용 아이템에서 가장 상징적인 클래식 아이템까지, 트렌치 코트는 단지 겉옷 중 하나 그 이상이다.
“그것은 과학적인 혁신, 기술, 대량 생산의 결과입니다…트렌치 코트의 이야기는 매우 현대적인 이야기입니다.”라고 런던 예술 대학의 디자인 역사 강사인 Jane Tynan 박사는 말하고 있다. 트렌치 코트의 역사는 200여 년 전쯤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우리는 그 역사와 디자인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상상 그 이상의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트렌치 코트와 방수 직물 이야기
트렌치 코트의 기원은 18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19세기 초, 스코틀랜드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찰스 매킨토시와 영국 고무 산업의 창시자이며 발명가인 토마스 핸콕(Thomas Hancock)는 고무 처리된 면으로 만든 코트 ‘Mac’를 만들었다.
고무 처리된 코트는 방수가 되었기 때문에 혁명적이었지만, 통기성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땀 배출이 어려워 특유의 악취가 났으며, 태양열에 녹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통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수 직물 개발이 이어졌고, 1853년, Mayfair 신사복 재단사 John Emary는 통기성이 더 뛰어난 새로운 방수 모직물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고, 개선된 비옷을 생산하면서, 회사 이름을 라틴어로 ‘물’과 ‘방패’ 즉, ‘방수막’을 의미하는 ‘아쿠아스큐텀(Aquascutum)’으로 변경하였다. 아쿠아스큐텀은 1853년 크림 전쟁 때까지 귀족 신사들에게 외투와 사냥 장비를 판매하고 영국 장교들에게 비바람에 견디는 양모 코트를 제공했으며 1914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영국군이 사용하기 위해 트렌치 코트를 개발했다.
한편, 1856년에 남성복 사업을 시작한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1879년 햄프셔(Hampshire) 양치기들이 입는 라놀린(lanolin) 코팅 방수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아, ‘개버딘(gabardine)’이라는 직물을 개발한다. 이는 전체 원단이 아닌 직조하기 전, 양모나 면의 섬유 가닥을 라놀린으로 코팅하는 방식으로 원단 가공 방식에 있어 큰 도약이었으며, 통기성과 내후성을 동시에 갖춘 직물이었다.
20세기 초, 버버리는 영국 국가로부터 방수 기능이 있는 군용 외투를 생산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에 1901년 영국 전쟁 사무소에 비옷 디자인을 제출하였고, 채택되었다. 또한, 1912년 버버리는 트렌치 코트의 전신인 ‘타이로켄(Tielocken)’ 코트로 특허를 취득한다. 타이로켄은 트렌치 코트와 매우 유사한, 허리에 벨트가 있고 넓은 옷깃이 특징이며 무릎 길이의 비바람에 견디는 코트였다.
Aquascutum와 Burberry, 두 회사는 군사적 요구 사항에 매우 영리하게 적응했으며, 트렌치 코트의 ‘발명’이라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스포츠 코트 유형을 군용으로 개조하여 대중화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혁신적인 방수 직물을 개발하고, 내후성 의류(weatherproof clothing)를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당시 두 회사의 직물은 군용품 뿐 아니라 사격, 승마, 낚시 등 아웃도어를 즐기는 상류층, 탐험가, 비행사들, 궂은 날씨에도 잘 차려 입은 것이 유지되고 싶어하는 신사들에게까지 매우 인기가 있었다.
영국 상류층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 경(Sir Ernest Shackleton)은 1907년의 남극대륙을 포함, 1917년까지 ‘위대한 항해’라 불리는 20세기 초 대표적인 탐험에 버버리 개버딘을 착용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완성한 트렌치 코트 디자인
트렌치 코트의 디자인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인들의 요구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트렌치(trench : 참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 당시 대부분의 날들을 진흙 투성이 참호 속에서 지내야 했던 상황에 맞춰 디자인 되었다.
그 이전까지 착용했던 두꺼운 모직 코트(serge greatcoat)는 따뜻했지만 가렵고 길고 무거웠으며, 참호의 진흙으로 인해 더욱 무거워져 움직임에 방해가 될 정도였다. 이에 비해, 가볍고 방수가 되는 원단으로 만들어진 트렌치 코트는, 진흙 속을 헤매지 않을 만큼 충분히 짧은 무릎 길이와 허리부터 플레어진 실루엣으로 최대한의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여기에 전투를 위한 수 많은 기능적 디테일이 추가되었는데, 어깨 부분의 스톰 플랩(storm flap)은 원활한 통풍과 총격 시 보호기능을, 뒷면의 주름 잡힌 작은 망토(cape)는 빗물이나 진흙이 쉽게 흘러내릴 수 있게, 목 부분의 칼라 버튼(collar button)은 채웠을 때 악천후와 독가스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방독면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지도 등 장비를 넣을 수 있는 단추로 잠그는 깊고 큰 주머니, 지도 케이스, 도검, 수류탄, 기타 장비 수납을 목적으로 한 D-링(ring)이 달린 제천 허리 벨트, 소매에는 쌍안경을 고정하거나 빗속에서 쌍안경을사용할 때 물이 팔뚝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고 날씨로부터 보호도 가능한 버클이 있는 커프 스트랩(cuff straps), 장갑과 호루라기 등을 걸거나 계급장을 부착할 수 있는 견장(shoulder straps)까지…전쟁을 위한 실용적 디자인을 완성했다.
여기에 최대한 은폐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위장용 카키색와 베이지색(장거리 무기의 기술 발전은 크림 전쟁 이후 밝은 색상의 제복들 대신 위장 가능한 군복색이 반드시 필수적이게 하였다)까지…이 모든 것들은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될 정도로 탁월한 기능성을 가진 극 실용주의 디자인으로 트렌치 코트의 상징적인 특징이 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군복의 현대화였습니다. 그것은 실용적이고 기능적이며 위장되고... 전쟁에 대한 매우 현대적인 접근 방식입니다.”라고 Tynan은 말한다.
트렌치 코트는 일반적으로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방한용이 아니라 비바람을 막는 용으로 설계되었다. 따라서, 비상용 침구로도 사용 가능한 탈부착되는 울 라이너(wool liner)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외투만큼 따뜻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광고에 따르면 트렌치 코트는 추운 날씨에 브리티시 웜(British Warm)같은 코트와 겹쳐 입을 수 있도록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트렌치 코트의 넉넉한 크기를 설명해준다.
트렌치 코트는 영국 육군의 선택적인 품목이 되었으며, 사적으로 구입해야 했지만 그것은 영국 장교와 1급 장교에게만 허용되었고, 일반 군인들은 그것을 착용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트렌치 코트가 사회적 구별과 높은 계급을 표시하는 코트 이미지를 가지게 하였다.
하지만, 전쟁 중 장교들만이 트렌치 코트를 입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 중에도 일반 남녀 모두 구입하였는데, 그것은 일종의 애국심 또는 전쟁에 대한 연대, 즉 최전선에서 전투중인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든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알아 챈 마케터들은 요리용 스토브에서 심지어 보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물건에 ‘트렌치’라는 단어를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민간인 생활로 돌아온 많은 참전 용사들이 트렌치 코트의 다재 다능한 실용성과 장교 계급에 대한 애착으로 계속해서 입고 다녔고, “전쟁 중 영국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사람은 트렌치 코트를 입은 장교”인 듯한 트렌치 코트의 광고는 “이 코트 하나만 입어도 패션의 정점에 있는 느낌이 들 정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실용적인 기능과 결합하여 일반인에게도 인기를 끌게 하였다.
트렌치의 아이콘화를 이끈 할리우드(Hollywood)
트렌치 코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다시 착용되었지만, 1940년대의 할리우드는 이 코트의 장교 이미지를 빠르게 저널리스트, 탐정, 스파이 등 매혹적인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스타일의 아이콘화를 주도한다.
1941년 험프리 보가트(Humphrey Bogart)는 ‘The Maltese Falcon’에서 Aquascutum Kingsway 트렌치를, 1942년 ‘Casablanca’와 1946년의 ‘The Big Sleep’에서도 트렌치 코트를 착용하면서 페도라와 함께 고전적인 느와르 탐정의 의상 캐릭터를 구성하였다. 이후 1967년의 범죄 스릴러 ‘Le Samouraï’에서의 알랑 드롱(Alain Delon)은 네오-느와르(neo-noir)에서 다시 한번 트렌치 코트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트렌치의 유니섹스 매력을 입증해준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Let’s Make Love’의 마를린 먼로(Marilyn Monroe), ‘Breakfast at Tiffany’s’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the Key’의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Kramer vs. Kramer’의 메릴 스트립(Meryl Streep)과 같은 여배우들도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장면에서 매혹적인 트렌치 코트를 입고 있었다. 이는 트렌치 코트를 대담한 남성과 똑똑한 여성의 대명사가 되게 해주었다.
군복은 항상 패션에 있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트렌치 코트는 전쟁 장교의 상징에서 한 순간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고, 이제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 발명된 의복 중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 중 하나로 지속되어 왔다. 트렌치의 그 많은 기능적 디자인, 넓은 옷깃(lapel), 견장, 큰 주머니, 허리 벨트, 가벼운 방수 원단 등도 역시 큰 변화 없이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고전 디자인의 유지성은 유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진정한 클래식 아이템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이에 트렌치 코트는 전 세계 디자이너들에 의해 매년 재해석되는 끊임없는 스타일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매력을 과시하며 클래식으로 그리고 머스트 아이템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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