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세기말이라 불리던 시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났다며 뉴스에까지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이란 의미를 가진 ‘X세대’는, 일명 배꼽티라고 불리는 과감한 패션을 선보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그 당시 유행을 선도하던 젊은이들은 압구정에 모여들었고, 그 중심에는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유학파 학생들의 영향이 있었다. 남학생들은 종아리를 드러낸 반바지를 일상복화 시켰고, 여학생들은 배꼽티로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때의 패션에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X세대의 자유로움과 서구 유학파의 영향이 있었기에 그 시작에는 서양 문화가 있으리라는 필자의 편협한 오해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 시작해볼까요!
동양이 주도한 크롭 탑
동양에 비해 비교적 추운 기후와 서양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청교도 복장 규정을 가진 서양에서는 크롭 탑이 일상화 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반면, 동양의 일부 지역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일단 날씨가 전반적으로 따뜻했기 때문에 신체를 많이 가리는 의복은 불필요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본능적으로 말이다.
예를 들어,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sari)는 일반적으로 ‘콜리(choli)’라고 불리는 짧은 상의와 함께 입었다. 또한, 이집트, 중동, 일부 아시아 등에서도 각 지역마다 일명 배꼽 춤과 같은 민속 춤을 위한, 횡경막을 드러내는 고유의 전통 의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동양의 전통 의상이 서양인들에게 알려지는 일이 1893년 일어난다. 이집트 카바레 주인인 바디아 마사브니(Badia Masabni)가 디자인한, 춤을 추기 위해 허리부분을 드러낸 투피스 의상 베들라(Bedlah)가 벨리(belly) 댄서들의 ‘Little Egypt’ 공연에 의해,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에 소개된 것이다. 이 공연이 지금의 크롭 탑에 가까운 개념의 의상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서양인들이 보기에 크롭 탑은 충분히 흥미로운 의상이기 했지만, 너무나 이국적이었고, 그 정도의 노출 패션은 그 당시 서양인들에게 아직 필요하지 않았기에 그들이 크롭 탑을 패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제 2차 세계 대전과 크롭 탑의 패션계 데뷔(Début)
크롭 탑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패션 산업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1940년대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부족한 물자로 인해 많은 품목이 배급되었는데 여기에는 직물도 포함되었다. 이는 의복의 원자재를 절약하기 위해 디자인이 더욱 창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고, 디자이너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상의(top)의 길이를 자르는 선택을 하였다. 이는 자재를 아끼는 쉬운 방법이면서 동시에 세련된 스타일을 제공하는 해결책이 되었다.
이렇게 크롭 탑은 하이 웨이스트 미디 스커트(high-waist midi skirt)와 함께 1940년대의 특징적인 모래 시계 형태의 룩(look)이 되었고, 특히 여름 바캉스에 제격인 시크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룩을 뽐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새로운 트렌드 스타일이 그러하듯 크롭 탑 역시 긍정적 지지만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과도한 노출이라고 여겼고, 1945년에는 센트럴 파크에서 반바지와 홀터넥(halterneck) 크롭 탑을 입은 여성이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오는 트렌드는 막을 수 없다’는 속설처럼 다행히 대다수는 크롭 탑을 완전히 불법화 할 정도로 보수적이지 않았고, 이 스타일은 50년대 내내 유행하였다. 60년대에는 보헤미안 스타일로 프린지(fringe : 술 장식) 트렌드와 함께 하거나 혹은 허리를 묶는 셔츠 스타일로 유행을 이어나갔다.
성 혁명, 그리고 대중 문화를 통해 다시 태어난 크롭 탑
1960년대 후반과 1970대 초, 성 혁명 덕분에 여성에게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의 권한이 부여되면서, 크롭 탑은 널리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밑단(hemline)은 더욱 올라가기 시작했고, 함께 착용하는 하의의 웨이스트 라인(waist line)은 낮아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크롭 탑은 컴백했다. ‘I Dream of Jeannie’ 시트콤으로 유명해진 바바라 에덴(Barbara Eden, 배우, 가수)과 에르메스 버킨백의 주인공인 제인 버킨(Jane Birkin싱어송라이터, 배우, 모델)과 같은 유명인들이 착용하고, 특히 셰어(Cher, 가수, 배우)와 같은 패션 트렌드세터(fashion trendsetter)이자 대중 문화의 아이콘이 TV매체에 착용하고 나오면서 섹스 심볼이 되었다. 이후 크롭 탑의 인기는 계속해서 높아졌고,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트렌드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1980년대에는 건강해 보이는 톤 다운된 피부색과 스포츠웨어가 유행이었는데, 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크롭 탑이 제격이었다. 당시 ‘에어로빅(aerobic)’이 크게 유행하면서 레오타드(leotard)나 탱크 탑과 코디된 크롭 탑은 1980년대의 대표 스타일이 되었다. 이 스타일은 ‘Lucky Star’라는 뮤직 비디오를 시작으로 마돈나(Madonna)의 시그니처 룩이 되었으며,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였다. ‘더티 댄싱(Dirty Dancing, 1987)’의 베이비’(Baby), ‘플래시댄스(Flashdance, 1983)’의 알렉스(Alex)를 비롯해 많은 영화 캐릭터들의 스타일이 되었다.
1990년대 역시 크롭 탑은 대중 문화에 계속해서 등장하는데, 특히 스키니한 크롭 탑과 로우라이즈(low-rise) 청바지는 짝을 이루어 뮤직비디오와 TV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와 같은 팝 스타들이 애용하였으며, 패리스 힐튼(Paris Hilton)의 톤 다운된 허리 노출은 2000년대 초반까지 크롭 탑의 인기를 확고하게 하였다.
남성 크롭 탑과 성별(gender) 이야기
여성에게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을 지원해 준 크롭 탑은 여성들에게 널리 착용되기 몇 년 전 남성용 의복으로 시작되었는데, 남성은 여성처럼 배꼽을 드러내는 것에 법적 제한을 받지 않았다.
남성 크롭 탑의 시작에는 2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70년대 초반 역도 선수들이 상의를 입지 않은 채 운동하는 남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체육관 복장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상의 밑단을 자르면서 시작되었다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가장 남성적인 스포츠 중 하나인 미식 축구가 기여했다는 이야기이다. 미식 축구 유니폼은 경기 중에 강렬한 몸싸움으로 인해 끊임없이 찢어져 선수들의 몸통과 복근이 노출되었다. 이런 우연한 노출은 80년대 초반 선수들이 자신들의 조각같이 멋진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니폼 상의를 자르는 상황으로 발전되었다. “미드리프 컷은 실루엣을 확장하고 몸통과 근육의 크기를 증가시켰다. 이는 매우 남성적인 제스처이며 외모였습니다.”라고 뉴질랜드 Massey University 디자인 학교의 Vicki Karaminas 교수의 설명처럼 말이다.
남성다운 근육을 강조해주는 크롭 탑의 효과를 스포츠 브랜드 Nike는 바로 선택하여 디자인하고 마케팅하기 시작하였고, 크롭 탑은 남성 패션으로 도약하기 시작한다.
남성들이 착용한 크롭 탑이 1980년대 ‘Rocky III(1982)’, ‘느룹나무 거리의 악몽(1984)’과 같은 영화에 소개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윌 스미스(Will Smith)의 90년대까지 계속 되었다. 이처럼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의 크롭 탑은 스포츠 혹은 남성다움과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이면서 미식 축구 선수뿐 아니라 래퍼들도 착용하기 시작했고, 일반 남성들도 스포츠와 상관없이 크롭 탑을 입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부터 남성 크롭 탑의 이미지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1986년 웸블리(Wembley)공연에서 스포츠 이미지와 관련 없이 타이트한 크롭 블랙 탑을 입은 양성적 아티스트인 프린스(Prince)를 시작으로, 마크 월버그(Mark Whalberg)와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모델이었던 캘빈 클라인(Calvin Klein)의 대표적 90년대 젠더리스(genderless) 광고는 크롭 탑을 패션과 성적인 이미지의 상징 아이템으로 바꾸고 있었다.
여기에 결정적 남성 크롭 탑의 쇠퇴는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당시 에이즈(AIDS)와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오해 등으로 인해 시작되는데, 그 이미지가 남성다움보다는 섹스, 양성애를 연상하게 하면서 많은 남성들이 크롭 탑을 멀리 하게 되었다.
90년대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2010년대가 되면서 제이든 스미스(Jaden Smith, 배우, 가수)과 같이 성별에 대한 유동적인 패션 감각을 가진 유명인들로 인해 크롭 탑은 다시 SNS 등을 통해 대중 앞에 선보여졌지만, 여전히 성별(gender)과 성적인(sexuality) 이미지의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Vicki Karaminas 교수는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젠더와 패션에 대해 더 많이 실험하고 옷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재고함에 따라 젠더는 훨씬 더 유동적이며…새로운 성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훨씬 더 복잡해졌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여기에 X세대 이후 뜨겁게 등장한, 다양성의 가치관을 가진 새로운 세대, 일명 MZ세대들이 전통적인 성별(gender)에서 분리된 패션과 의복을 재발견하고 있는데, 이것이 크롭 탑의 2.0 버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크롭 탑은 여성에게는 한때 허리 노출을 제한했던 사회적 제약에서 벗어나 여성을 위한 보다 자유로운 스타일을 지원해주며 여성의 성적 권한을 부여해주는 아이템 역할을 해주었으며, 한편 남성에게는 80년대 스포츠와 근육이라는 남성다움의 강조 혹은 세기 말 에이즈로 인한 부정적 젠더 이미지를 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이제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gender)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진정 패션의 이름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의 아이템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 그럼 이제 Y2K 패션의 이름으로 다시 돌아 온 크롭 탑을 뜨거워진 이 여름에 패션 트렌드 머스트 아이템(must item)의 이름으로 즐겨 보는 것을 어떤가!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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