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여성의 실루엣을 해방한 샤넬의 역작! 샤넬 트위드 재킷(Chanel Tweed Jacket) 이야기

김은영 전문위원 승인 2023.09.18 00:47 | 최종 수정 2023.09.18 07:52 의견 0

샤넬(1883. 8~1971. 1/ 사자자리)은 말했다고 한다. “나는 내 삶을 창조했다. 이전까지의 삶이 싫었기 때문에.”라고. 샤넬은 자신의 삶을 창조했듯이, 우리들에게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여성복들을 창조해 주었다

샤넬(Gabrielle ‘Coco’ Chanel)은 정말이지 무수히 많은 아이콘 아이템들을 남겼다. 리틀 블랙 드레스, 니트 트윈 세트, 투톤 펌프스, 최초의 숄더백 2.55, 코스튬 쥬얼리(Costume Jewelry), 그리고 디자이너 이름으로 출시된 최초의 향수 N°5 까지…하지만 그 중 여성 최고의 클래식 아이템은 샤넬의 트위드 재킷(tweed jacket)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거라고 감히 생각하며, 샤넬 트위드 재킷의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진정으로 럭셔리한 스타일이라면 편해야 한다. 편하지 않다면 럭셔리 한 것이 아니다.”

샤넬은 벨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이란 뜻으로 보통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를 의미) 시대 동안 유행했던 코르셋과 롱 스커트로부터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즉, ‘편안하지만, 여성스러운 우아함은 드러나는 수트’를 원했고, 이러한 마음은 그 당시 속옷용으로만 사용되었던 저지 소재를 사용하여 여성 비치 파자마(비치웨어)을 만들었던 것처럼, 남성의 클래식 스포츠웨어의 주요 소재였던 트위드로 1920년대 중반 샤넬의 첫 번째 트위드 수트를 탄생하게 하였다. 이것이 100여년 전 여성 패션 혁명의 시작이었다. “여자를 사랑하는 저는 편안하면서도 여성미를 강조할 수 있는 수트를 입혀주고 싶었습니다.”라고 샤넬은 설명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샤넬은 꾸튀르 하우스를 폐쇄하고, 샤넬 N°5를 비롯한 향수 사업에 집중한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녀는 스위스로 망명했고, 195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다시 트위드의 세계로 돌아온다.

<출처> courtesy of CHANEL.

샤넬은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휴가를 보내는 동안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들의 유니폼, 리프트 재킷(lift jackets)에서 영감을 받아, 1954년 깃(collar)과 어깨 패드(pad)가 없어지고, 4개의 포켓이 생긴, 가장자리와 커프스에는 브레이드 장식(braid trimming), 샤넬 브랜드의 상징들(동백꽃, 사자, 이중 C로고,,,)이 찍힌 보석 같은 단추가 달린 현재에 가까운 트위드 재킷을 만들게 된다. 당시 샤넬은 71세였고, 이 트위드 재킷은 파리 캉봉(Cambon)에 위치한 그녀의 하우스 본사를 재오픈하면서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다.

그러나, 샤넬이 새로운 트위드 재킷을 발표했을 당시, 오트 쿠튀르를 지배한 것은 신인 디자이너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여성미를 강조한 잘록한 허리와 풀 스커트(full skirt), ‘뉴 룩(New Look, 1947년)’이었다. 비록 30년전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샤넬이었지만, ‘뉴 룩’과 반대방향에 서버린 샤넬의 당시 컬렉션은 좋지 않은 반응을 얻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샤넬은 상처를 받았지만 ‘뉴 룩’을 보고 “디올은 여성에게 옷을 입힌 것이 아니라 덮개를 씌웠다.”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디자인 정신을 굽히지 않았다.

<출처> New Look by Christian Dior. 1947 / Vogue France


그러나,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실망스러운 과거를 보았다”라고 혹평한 프랑스 언론의 냉대와는 달리 샤넬의 자유롭고 현대적인 수트에 찬사를 보낸 것은 실용성으로 대표되는 ‘편안함’을 사랑하는 미국의 언론과 미국 여성들이었다. 그녀의 재킷은 거의 박시하고 다트가 없었으며, 소매는 가늘게 자르고 어깨 높이로 설정하여 편안한 움직임을 최적화하였다. "내부가 외부와 일치해야 한다”는 샤넬의 의도대로 안감까지 외부 원단과 동일한 구조를 반영하여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없앴다. 거대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유럽 언론들도 ‘고유하고 영원한 한결같음’이라는 부드러운 찬가로 옮겨지게 만들었다.

또한 종전 후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남성적 실루엣에서 벗어나 과거의 코르셋 시대의 실루엣으로 회귀했던 패션계도, 몇 해 지나지 않아 여성 해방과 함께 유연하고 편안한 실루엣의 샤넬의 트위드 수트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사실 샤넬은 패션계로 복귀하면서 규모가 작은 오트 쿠튀르 셰계가 아닌 ‘우아하고 편안한’ 옷을 열망하는 대규모 기성복 군단을 겨냥했다. 복제품에 민감했던 디오르와는 달리 샤넬은 오히려 자신의 제품이 복제되어 거리를 휩쓰는 것을 즐겼다. 확실한 샤넬 스타일의 창시자로서 군림하면서 말이다.

1961년 로마 공항에서 샤넬 재킷을 입은 잔느 모로(Jeanne Moreau)가 포착되면서 패션계에 혁신을 일으켰고, 결국 프랑스에서도 성공을 이루며 Brigitte Bardot 또는 Romy Schneider와 같은 영향력 있는 여성들, 많은 여배우들에게 선택 받게 된다. 또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바로 1963년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암살되던 날, 영부인 재키 케네디(Jackie Kennedy)가 착용한 분홍색 샤넬 트위드 수트였다.

<출처> Jeanne Moreau wearing a suit and the 2.55 bag at Rome airport in 1961© CHANEL(좌) / Getty Images(우)

샤넬의 아이콘, 트위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려면 늘 달라야 한다”

1920년대 중반 샤넬은 여성을 위한 트위드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의 연인들의 옷장은 그녀에게 영감이 되어 주곤 하였는데, 그녀는 애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공작의 스포츠웨어가 주는 절제되고 여유로운 우아함에 이끌려 자주 빌렸다고 한다. 사냥, 낚시, 크리켓 등 각각의 스포츠에 알맞게 디자인된 영국 남성의 클래식한 의상은 편안함을 추구하던 샤넬에게, 또한 이미 여성적과 남성적이라는 경계를 흔들고 있었던 그녀에게, 남성복에만 사용되었던 트위드 직물의 다양성과 실용성,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안락하고 편안해지는 움직임은 그녀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샤넬의 아이콘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1920년대 중반 소개된 샤넬의 첫 번째 트위드 수트는 비록 소박하였지만, 심플하고 미니멀한 샤넬만의 새로운 스타일의 초석이 된다.

<출처> Chanel with her friend near Lochmore(좌) / Chanel wearing a men's coat(우) / vinvoy.com

트위드는 사선의 능직과 느슨한 조직으로 확실히 평직보다 유연하고 가벼워 샤넬이 원하던 인체의 형태를 따라 감싸주는 편안한 실루엣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 당시 트위드(tweed) 원단의 대부분은 스코틀랜드 능직(twill) 공장에서 제조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트위드는 해리스 트위드(Harris Tweed)로 스코틀랜드 아우터 헤브리디스(Outer Hebrides) 지역에서 전통적인 수작업으로 생산되고 있었다. 샤넬이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컬렉션을 위한 최초의 트위드 수트를 만든 것도 바로 이 해리스 트위드였다.

스포츠웨어 외에 잘 활용되지 않았던 직물에 새로운 색상, 소재, 질감을 실험하여 트위드를 새롭게 여성화하려는 샤넬의 열정은 1930년대에 공장을 프랑스로 옮기고 실크 및 양모, 면, 심지어 셀로판과의 혼합물을 개발하여 그녀가 원하던 더 가볍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나는 트위드를 만들어 냈다. 샤넬이 선택한 트위드는 그녀의 집착과 무한한 창작욕을 만족시켜 줄 만큼 무제한의 가능성을 가진 직물이었다. 이러한 샤넬의 트위드는 패션계를 강타하였고, 다른 프랑스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1928년 발표한 「보그」 기사는 “트위드로 만든 옷은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실용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트위드는 샤넬 수트의 근본이 되었다.

또한, 샤넬의 트위드 재킷에는 가장 귀한 면을 은근하게 보여주는 ‘숨겨진 럭셔리(Luxe cache)’이라는 개념이 숨겨져 있었는데, 이 철학은 샤넬의 미니멀한 외관을 가진 의류 안쪽에 숨겨진 금박의 체인이나 고급스러운 모피, 화려한 무늬의 실크 안감으로 표현되었다. “럭셔리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저지에서 시작하여 전통적으로 남성복에만 사용되던 트위드까지, 혁신적인 그녀의 선택은 편안하게 여행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활동적인 여성들을 위한 복식을 창조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샤넬이 바로 그런 여성이었으며, 그녀 자체가 샤넬 브랜드의 광고 모델 역할을 하였다. 그 당시 여성들은 샤넬의 짧은 단발 머리를 포함하여 그녀처럼 보여지기를 열망하였고, 샤넬은 마침내 그녀만의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컨템포러리’ , 샤넬이 창조하고, 라거펠트가 이어 가다.

1971년 샤넬이 사망한 후, 샤넬 브랜드는 여전히 유명했지만, 후계자가 없었던 브랜드는 창작없이 계속 복제되는 제품으로 인해 특유의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희미해지고, 특정 연령층의 품위 있는 여성들만이 애용하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다 1983년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면서, 샤넬의 트위드는 레퍼토리를 확장하며 더욱 컨템퍼러리함을 꽃 피우게 된다. 라거펠트는 샤넬 하우스의 전통과 고유성을 유지하면서도 샤넬 재킷의 아이콘적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출처>Spring 2008 CHANEL Haute Couture show set

/ courtesy of CHANEL

라거펠트는 샤넬 트위드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아이코닉함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그는 그녀의 재킷을 끊임없이 재해석하여 우아함과 유머를 융합하며 경쾌하게 현대적인 정신을 이어 나갔다. 이는 샤넬이 생전 젊고 건강하며 활발한 여성을 추구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하였다. 그는 데님, 가죽, 레이스, 루렉스(lurex), 스팽글(sequins), 심지어 고무와 같은 신소재를 도입하면서 혁신적인 트위드를 선보였다. 이러한 라거펠트의 트위드, 그것들은 혁신적이었지만, 정말 묘하게도 그가 말한 대로 충분히 샤넬스러웠다. 라거펠트는 Claudia Schiffer를 비롯한 90년대 핫한 슈퍼모델과 뮤즈들을 패션쇼와 캠페인에 내세워, 고급스러우면서 우아한 여성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젊음과 섹시함까지 가미시켰다. 이는 샤넬이 성숙하고 우아한 고객들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세대의 젊은 여성들까지 환호하는 ‘잇 브랜드(It Brand)가 되게 하였다.

<출처> Karl Lagerfeld. yahoo.com / Vogue.co.uk

샤넬의 최초의 트위드 이후, 하우스는 그것을 자르고, 늘리고, 넓히고, 새로운 색상, 현대적 소재를 추가했지만, 그것의 매력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고,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와 패스트 패션이라는 여성복 세계에서 샤넬의 트위드 재킷은 범접할 수 없는 1인자로 남아 있다. 60년 전 데뷔한 이후 샤넬 재킷은 시대를 초월하는 클래식함과 현재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컨템포러리함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며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며 무심한 듯 우아한 그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러 아이콘 아이템들을 다루었지만, 샤넬은 그녀가 만들어낸 모든 창조적인 아이템들을 제치고 그녀 자체가 단연 아이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녀가 샤넬이라는 브랜드 그 자체였다. 그녀가 말한 대로…

”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_코코 샤넬.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저작권자 ⓒ 머스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