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모델의 기본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온 비즈니스 모델링 방법론은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환경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시장의 변화는 점진적이었고, 고객의 행동 패턴은 일정한 주기를 가졌으며, 경쟁사의 역량 발전도 선형적이었다. 하지만 AI가 경영 일선에 도입되면서 이런 기본 가정들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

많은 기업의 CEO들이 "우리 회사는 창업 때부터 이렇게 해왔는데 왜 갑자기 바꿔야 하나?"라고 묻는다. 이는 마치 20년 전 종이 지도만 가지고 현재의 서울 시내를 운전하려는 것과 같다. 길이 바뀌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는데, 옛 지도로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변화의 속도다. 과거에는 시장 환경이 바뀌어도 몇 년의 적응 기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몇 개월, 심지어 몇 주 만에 게임의 룰이 완전히 달라진다. 넷플릭스가 개인 맞춤형 추천으로 고객 이탈을 혁신적으로 줄이고, 아마존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미리 예측해 매출의 35%를 창출하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런 환경에서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링으로는 시장 변화와 경영 전략 사이의 간격을 줄일 수 없다.

가치 창출의 핵심 동력이 바뀌었다

비즈니스 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포착할 것인가'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AI 시대에는 가치 창출의 핵심 동력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고 효율적으로 생산하며 잘 마케팅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면, 이제는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새로운 경쟁 우위가 되었다.

월마트가 계절 트렌드, 날씨, 지역 행사까지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것, UPS가 AI 기반 배송 최적화로 연간 수백억 원을 절감하는 것, 의료 분야에서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미리 감지해 생명을 구하는 것 - 이 모든 사례의 공통점은 '변화를 미리 읽고 대응'하는 것이다.

고객도 이제 이런 수준의 서비스를 당연하게 여긴다. 개인화된 경험을 기대하고, 실시간 반응을 요구하며, 자신의 니즈를 미리 파악해 솔루션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고객이 "이 회사는 내가 뭘 원하는지 미리 알고 있네"라고 느끼게 만드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업 경계가 무너지면서 경쟁의 양상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우버는 택시회사가 아닌 데이터 플랫폼으로, 테슬라는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업종 분류에 기반한 경쟁사 분석으로는 진짜 위협을 놓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2024년 12월 AI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AI 기술 및 관련 산업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 체제가 수립되었고, 2025년도 초거대 AI 서비스 개발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제3 판교 테크노밸리에는 AI·반도체·바이오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들이 대거 몰리고 있으며, 사업비 1조7000억원을 들여 2029년 준공 예정이다. 이런 정책 변화는 단순한 인프라 구축을 넘어 비즈니스 생태계 자체를 바꾸고 있다.

<Chat GPT 생성이미지>

시장과 함께 진화하는 경영을 위한 동적 비즈니스 모델링

경영진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동적이고 적응적인 모델로의 전환이다. 이는 단순히 AI 도구를 도입하는 것을 넘어, 비즈니스 모델링의 근본적인 접근 방식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질문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의 시장점유율은 얼마인가?"가 아니라 "다음 분기에 우리 고객들의 니즈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어떤 신기술이 우리 업계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와 같은 미래 지향적 질문을 비즈니스 모델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지속적인 모델 업데이트가 필수다. 시장 환경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비즈니스 모델의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클라우드 기반 AI 분석 플랫폼들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런 도구들은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를 자동으로 분석해 시장 트렌드 변화, 고객 행동 패턴 변화, 경쟁 환경 변화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연간 계획 수립이 아닌 분기별, 월별 모델 재검토가 새로운 표준이 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AI 관련 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AI 기본법 시행과 함께 제공되는 정부 지원 사업, 초거대 AI 서비스 개발지원, 생성AI 선도인재양성 사업 등은 기업의 AI 역량 강화에 중요한 기회다. 판교·용산 등 AI 단지 조성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도 비즈니스 모델링에 반영해야 할 핵심 요소다.

셋째, 조직 전체가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데이터의 양보다 정확성과 시의성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고, 모든 의사결정에 시장 트렌드 분석이 자연스럽게 포함되도록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변화의 시대, 선택의 기로에 선 경영진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지금은 기초를 다지는 단계를 넘어 기하급수적 도약의 시기다. 중소기업도 자신의 비즈니스에 맞는 AI 도구를 활용하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링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미래는 변화를 미리 읽고 대응할 수 있는 자에게 유리하다. 지금 비즈니스 모델링을 재정의하지 않으면, 시장 변화와 경영 전략 사이의 간격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반대로 동적 비즈니스 모델링을 통해 시장과 함께 진화하는 기업은 변화를 기회로 만들며 다음 시대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선택은 경영진의 몫이다.

[ 필자소개 ]

심준규. 경영학박사.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 ESG로 성과내는 사람들>,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