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R(목표 및 핵심 결과지표)의 창시자로 알려진 앤디 그로브(Andrew Grove) 전 인텔 CEO는 단순한 경영 기법 개발자를 넘어, 실리콘밸리의 역사와 반도체 산업의 판도를 바꾼 전설적인 경영자였다. 공산주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한 난민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했는지 그의 삶을 돌아본다.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난민에서 엔지니어로
1936년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앤디 그로브는 제2차 세계대전과 헝가리 혁명 등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1956년, 20세의 나이에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단돈 20달러만을 가진 무일푼 난민이었다. 그러나 그는 낯선 땅에서 화학 공학을 전공하며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인텔의 창업 공신으로 합류하며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로브는 인텔의 세 번째 직원으로 입사한 뒤 1987년 CEO에 올라 1998년까지 인텔을 이끌었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서 일본 기업에 밀려 위기를 겪던 인텔을 그는 과감한 결단으로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으로 전환시켰다. "인텔 인사이드" 전략을 통해 모든 PC에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되는 시대를 열었고, 인텔은 PC 시장을 장악하며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OKR, 실리콘밸리의 표준이 되다
그로브는 혁신적인 목표 관리 프레임워크인 OKR을 개발하고 인텔에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목표(Objective)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핵심 결과(Key Results)를 통해 목표 달성 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인텔의 성과를 극대화했다. 이후 벤처 투자자 존 도어(John Doerr)가 이 OKR을 구글에 도입하면서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이 OKR을 활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경영 철학은 "오직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라는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끊임없는 위기 의식과 변화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만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는 '전략적 변곡점(Strategic Inflection Point)' 개념을 제시하며, 리더들에게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것을 주문했다.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다
그로브의 리더십과 성공적인 경영 성과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1997년에는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며, 헝가리 난민 출신 이민자가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이 된 성공 신화의 주인공으로 조명받았다.
앤디 그로브는 2016년 3월,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경영 철학과 OKR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기업과 리더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