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는 계속 변한다. 이제 그 속도는 무섭게 빨라져 어느 순간 뒷북을 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반짝거리는 MZ세대에겐 새로운 세상이였던 Y2K 패션…에 지친 우리에게 클래식한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 혹은 조용한 럭셔리)은 말 그대로 조용히 다가왔다. 물론 트렌드는 매년 속삭인다. 올해는 ‘인디슬리즈’라는 그런지룩이라고, 아니 그랜드 맘, 그랜드 파 룩이 더 대세라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 받고 중요해진 세상처럼 이제 트렌드는 나에게 맞는 것을 골라 즐기면 된다. 물론 전혀 무시하기 쉽지 않고 기본적으로 스며들어 있겠지만…트렌드에 휘둘리긴 싫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티나지 않길 바라는 조용한 럭셔리 룩엔 다재다능하며 시대를 초월한 특성을 가진 이 슈즈가 적격이지 않나 싶다. 그래서 오늘은 로퍼(loafers)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로퍼의 시작에 대한 2가지 이야기
‘로퍼’란 끈이나 버클이 없는 슬립온(slip-ons) 스타일로 굽이 낮고 플랫하며 심플한 디자인의 신발을 말한다. 신발의 윗부분은 가죽이나 스웨이드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고 밑창은 고무로 만든 경우가 많다.
이런 로퍼의 시작에 건축적인 영감을 준 신발이 있는데, 바로 초기의 모카신(moccasin)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이 땅 위의 위험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혹은 버팔로 사냥을 위해 신었던, 가죽으로 된 잠금 장치가 없는 단순한 신발을 말한다. 그들은 이것을 ‘마카신(makasin)’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언어로 ‘신발(shoe)’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노르웨이로 넘어간다. 19세기 연어 낚시로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들은 유명한 곳이 되었고, 영국 스포츠맨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테서(tesers)’라고 불리는 마을 사람들의 튼튼하고 기능적인 가죽 슬립온을 발견하고 매료되었고, 특히 1930년대 노르웨이를 방문한 미국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여기에 한 소년의 이야기도 존재하는데, 보스턴에서 신발 제조 기술을 배운 소년 닐스(Nils Gregoriusoon Tveranger)은 고향 노르웨이의 Aurland 마을에 작업장을 세우고 1926년 그곳에서 노르웨이 선원들의 작업화를 기반으로 한 모델을 개발한다
닐스(Nils)은 여기에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 모카신에서 영감을 받은 커트 유형(a type of cut)을 사용했으며, 뱀프(vamp:구두의 ‘앞부리 가죽’이라는 뜻) 상단을 장식 마스크(mask)로 마무리하고, 고향의 이름을 따서 ‘Aurland Moccasin’이라고 하였다. 이 ‘Aurland Moccasin’은 전간기 무렵 노르웨이를 방문한 유럽과 미국인 여행객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들은 신발의 편안함에 감탄했고 기념품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한편, 1920년대에 영국의 제화공인 레이먼드 루이스 와일드스미스(Raymond Lewis Wildsmith)가, 조지 6세(King George VI)가 자신의 시골 영지를 배회(loafing)하면서 신을 수 있는 캐주얼 신발을 요청하면서 노르웨이 슬립온 디자인을 도입해 캐주얼 하우스 슈즈(casual house shoe), 현재 와일드스미스 로퍼(Wildsmith Loafer)로 불리는 로퍼를 디자인하였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이렇게 노르웨이 슬립온이 인기를 얻자 기업들이 상업적으로 생산에 참여하게 되는데, 처음으로 생산한 회사는, 미국에서의 인기를 예상한 에스콰이어(Esquire)의 창립자 Arnold Gigrich가 유명한 유통업체인 Rogers, Pete & Co와 협력하여 샘플을 의뢰한, 미국 제조회사(1876년 George Henry Bass에 의해 설립) G.H. Bass 이었다. 이 회사가 생산한 최초의 로퍼는 1936년 ‘베이스 위준(Bass Weejuns)’이었는데, 이 초기 디자인은 매우 초보적으로 뱀프 상단 스트랩에 컷 아웃이 있고 더 두꺼운 밑창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름은 창립자 Bass와 신발의 영감이 유래된 Norweigan이라는 단어를 미국식으로 해석한 Weejun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베이스 위준(Bass Weejun)에 대한 첫 번째 광고는 1936년 New York Herald Times에 게재되었고, Rogers, Pete & Co. NYC 매장에서 판매되었다. "원래 노르웨이 농부들이 만들고 착용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남성들이 sports shoes로 신는 것”이라는 브랜딩을 통해 미국의 부유하고 옷을 잘 입는 남성으로 인식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페니 로퍼’의 여정, 그리고 아이비리그
장인정신과 좋은 품질로 인해 미국 엘리트들이 선택하는 신발이자 "Made in America"라는 핵심 문구가 추가된 Weejun은 아이비리그 학교로 진출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교실에서 운동화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1950년대 미국 대학생들은 아침에 급히 수업 받으러 갈 때 딱 좋은, 쉽게 신고 벗을 수 있으며, 거기에 저렴한 가격(초기 Weejun은 6,50달러에 판매되었다)까지 가진 로퍼에 매료되었다. 특히 흰 양말을 신은 페니 로퍼는 5, 60년대 청소년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아이비리그(Ivy League)’스타일의 일부가 되었다. 반면, 대학생들은 양말 없이 로퍼를 신은 최초의 학생들이기도 하여, 양말 없이 페니 로퍼를 신는 것이 당시 멋진 트렌드가 되었지만, 이것이 존 F. 케네디의 영향 때문인지 아니면 학생들의 게으른 성격 때문인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Esquire와 같은 패션 잡지는 이러한 대학의 동향을 포착하였고, 여기에 제임스 딘(James Dean)이나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 캐리 그랜트(Cary Grant), 캐서린 헵번(Katherine Hepburn) 같은 헐리우드 영화 배우 뮤즈로부터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도움까지 받은 로퍼는 미국 전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들로 인해 로퍼는 프레피 스타일(preppy style)의 상징부터 더욱 우아함과 세련된, 권력,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페니 로퍼는 나중에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신발 앞쪽에 가죽 스트랩 밴드(strap band)가 있고, 스트랩에 특정 모양의 컷 아웃(cut out)이 있다는 점이 원래의 로퍼와 다르다. 일명 페니 슬롯(slot)으로 알려진 컷 아웃의 용도로 인해 생긴 페니 로퍼라는 이름에도 몇 가지 이야기가 존재하는데, 공중 전화 사용이 일반적이던 시절 학생들이 긴급 전화를 걸 경우를 대비해 로퍼 슬롯에 페니를 넣어두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공중 전화 요금이 5센트미만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신발 속에 동전을 넣어두는 것이 행운의 상징이었다는 설, 단지 패션을 표현하기 위한 트렌드였다고 주장하는 설까지…
페니 로퍼의 대안 : ‘태슬(tassel) 로퍼’
페니 로퍼는 심플하고 세련되었지만, 너무 큰 히트를 쳤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디자인 차별화가 필요했고, 1940년대 Alden Shoe Company에서 처음 선보인 이 스타일은 페니 로퍼에 대한 좀 더 공식적인 대안이었다. 변호사와 학자들의 대명사가 되었고, 존경 받는 남성용 아이템으로 더욱 확고해졌다.
1943년 오스카 상을 수상한 헝가리 배우 폴 루카스(Paul Lukas)는 스타일적으로도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는 끈에 술이 달린 옥스퍼드화를 샀었는데, 그 디테일이 맘에 들어 미국의 신발 제작자에게 술이 있고 신발 바깥쪽에 끈이 달린 새 모델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뉴잉글랜드 워크숍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로퍼에 담았다. 때는 1949년이었고 이 새로운 모델은 "태슬 로퍼(Tassel Loafer)’라고 불렸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60년대, 70년대로 가면서 페니 로퍼와 태슬 로퍼 모두 사무용 신발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미국과 일본에서 사무실의 정장 구두로 자리 매김을 한다. 1980년대부터 페니 로퍼는 월 스트리트 은행원들이 양복과 함께 입었고, 주말에는 청바지와도 함께 했다. 또한 펑크족에게도 낯설지 않은, 낡은 로퍼에 찢어진 데님과 가죽 재킷을 매치해 로퍼 스타일이 다양한 문화 집단에 의해 받아들여졌음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구찌(Gucci)와 로퍼 이야기
192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탄생한 브랜드 Gucci는 미국으로 이주하는데, 미국에서 사랑 받는 신발, 로퍼에 주목하여 자신만의 방식을 적용하기로 한다.
Gucci는 급속히 확장하던 시기, 1953년 맨해튼 부티크 오픈과 동시에 비트 로퍼(bit loafer)를 출시하는데, 이 신발에는 Gucci스러운 이탈리아 감각이 담겨 있다. 당시에는 갈색이 캐주얼해 보였기 때문에 모두 검은 색이었지만, Gucci만의 진정한 차별점은 회사의 뿌리인 승마,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the equestrian bridle)에서 영감을 받은 금속 홀스빗(horsebit) 장식이었다. 홀스빗은 오랫동안 구찌의 가죽 제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아이콘 모티브였으며, 창립자 구찌오(Guccio)가 런던의 사보이 호텔에서 일하던 시절 영국 승마 세트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당시 이 홀스빗 로퍼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신발로 브랜드 이미지에 충실했으며, 소피아 로렌(Sophia Loren),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부터 1970년대 당시 CIA 국장이었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 회의에 참석할 때 착용하기까지…유명 인사들로 인해 초기 it 아이템이 되면서 인기를 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디자인은 글로벌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사랑 받았으며, 70년대 사업가들이 착용하여 거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 유니폼이 되었고, 80년대는 여피족(Yuppies)의 업무용 필수 아이템이였다. 운동화가 등장하기 전 기업 회의실과 컨트리 클럽 모두에서 허용되는 몇 안 되는 캐주얼화 중의 하나였으며, 이 홀스빗 로퍼(Horsbit Loafer)는 198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쉽게 구매하고 쉽게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Z세대의 가치관이 맞물리면서 ‘지속 가능성’도 마치 트렌드 마냥 대세가 되어버린 요즘.
캐주얼한 슬립온 신발(slip-ons)로 시작되었지만, 변화된 착용 방식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한 스타일,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그리고 편안함까지 갖춘, 그래서 정장부터 캐주얼 룩까지 소화 가능한 아이템…그리고 남성 캐주얼화로 시작되었지만 여성용 캐주얼화의 첫 번째 옵션 중 하나로 이어진 이 로퍼는 이제 ‘지속 가능한 착용’으로 인해 더욱 매력적인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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