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복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기능은 몸을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고 배워 왔다. <머스트 아이템>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하는 클래식 아이템들의 유래는 정말 우리를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에 충실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클래식 아이템의 대부분은 거친 환경과 싸워야 하는 어부나 노동복, 군대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빅 히트 이후 일명 ‘떡복이 코트’로 불리우며, 눈 내리는 겨울 날 벙어리 장갑과 함께, 우리에게 따스한 복고 감성으로 돌아 온 더플 코트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최초의 더플 코트
더플 코트의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그 진실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종류의 직물, 즉 거칠고 두꺼운 모직 원단의 제조 공정이 시작된, 벨기에 앤트워프(Antwerp)지방의 더플(Duffel)이라는 마을에서 생산된, 더플(Duffel) 원단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이 마을은 15세기에 유럽 전역에 원단을 수출하는 제조 도시로 알려졌으며, 두꺼운 벨기에 모직물은 방수 기능이 있어, 바다의 거친 바람과 폭풍에 대한 장벽을 제공하여, 원래 바다 사람들이 입었다고 한다.
이 중량감 있는 더플 원단은 John Partridge가 만든 첫 번째 버전의 영국 더플 코트에 사용된 것과 매우 유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Gentleman's Gazette>의 편집장인 Sven Raphael Schneider에 따르면, 더플 코트 자체는 그 이름을 딴 더플 도시에서 생산된 적이 없으며, 더플 원단으로 만들어 진 것도 아니라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첫 번째 버전의 더플 코트는 1887년에 영국의 아우터 웨어 제조업체인 John Partridge에 의해 생산되었다. Partridge가 만든 더플은, 1820년경에 개발되고 1850년대에 유럽 대륙에서 인기를 얻었던 폴란드 군용 프록 코트(Polish Frock coat)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 프록 코트는, 비록 실루엣은 매우 넓고 짧았던 Partridge의 더플 코트보다 약간 피트되는 형태였지만, 대형 ‘버킷 후드(Bucket hood)’와 넓은 수평 토글 여밈이 매우 유사함을 보여 준다.
더플 코트 디자인에 담긴 밀리터리적인 매력
왕실 영국 해군은 1880년대에 선원들을 위한 튼튼하고 안전한 코트를 찾고 있었고, 더플 코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90년대에 영국 해군은 여러 제조업체로부터 왕립 해군을 위한 코트를 대량으로 구입했으며, "콘보이 코트(convoy coat)"라고 불린 최초의 군용 더플 코트는 카멜(camel) 색상으로 출시되었다.
더플 코트는 얼어붙은 환경에서 긴 항해를 떠나는 해군의 필요성에 맞는 고유한 기능을 개발함으로써, 군사적으로 더 매력적인 디자인을 갖게 되었다.
첫 번째, 압도적으로 넉넉한 박스 핏(Box fit)은 행동의 자유로움과 유니폼 위에 겹쳐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너무 남는 공간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기에 어려움을 주었다. 후에 피드백을 통해 몸통은 초기보다 좁게 직선으로 재단되었으며, 넉넉한 오버랩으로 활동의 여유분을 제공하였다.
한편, 흥미롭게도 원래의 코트에는 몸 판 안쪽 아래에 허벅지 끈이 있어서 코트를 다리에 고정할 수 있게 하였는데, 이는 너무 넉넉한 품이 오히려 움직임에 거추장스러울까 봐 생겨난 디테일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더플의 가장 큰 특징인 토글(toggle) & 로프(rope) 여밈은 차가운 겨울 선상에서 두꺼운 장갑이나 얼어붙은 손으로도 쉽게 잠그고 풀 수 있게 해 준 두 번째 매력 포인트이다. 원래 황마 로프(rope)와 나무 토글로 만들어졌던 토글 여밈은, 후에 더플 코트의 대표 브랜드 Gloverall이 이를 보다 세련되게 보이는 뿔 토글과 가죽 끈으로도 대체하였다.
세 번째 매력, 뾰족한 해군 모자 위에 쓸 수 있게 설계된 특대형 버킷 후드(Bucket hood). 후에 스터드(stud)가 부착되고, 코드를 사용하여 더욱 얼굴에 맞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후드에 두 개의 버튼이 달린 스트랩(strap)이 부착되어 목을 바닷바람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어깨 부분은 원단을 덧대어 두 겹의 스퀘어 숄더 요크(square shoulder yoke)를 만듦으로 물을 더 잘 밀어내고, 어깨에 물건을 짊어졌을 때 빨리 마모되는 것을 방지하게 하였다.
다섯 번째, 대형 패치 포켓(patch pocket)은 쌍안경 및 기타 해군 장비를 쉽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기에 조밀하게 짜여진 모직 원단은 자연적으로 방수 기능이 있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이 아프리카를 횡단할 때 낮에는 방석의 역할을, 추운 사막의 밤에는 피난처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모든 수병이 지위에 관계없이 같은 코트를 입었고, 이는 유니폼 역할을 하면서 동등한 팀으로서 연대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도 해주었다.
해군에서 성공한 더플 코트는 곧 모든 군의 표준 품목이 되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참전한 영국의 존경 받는 장군 Bernard Law Montgomery(또는 Bernard "Monty" Montgomery) 육군 원수가 착용한 것으로 유명해지면서, 더플의 일부 모델은 몽고메리 경의 작은 이름을 따서 ‘몬티 코트(Monty coat)’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Gloverall의 더플 코트
제2차 세계대전 후 군은 잉여 더플 코트를 대중에게 제공했고, 이를 통해 일반인들의 패션으로 발전하게 된다.
1950년에 이미 생산직 근로자를 위한 글러브 제작 및 전반적인 사업을 하고 있던 M&F Morris Industrial은 1950년대 초 더플 코트의 도매 의류를 대량 구매했고, 이로 인해 영국 아우터 브랜드인 Gloverall(‘장갑gloves’+’작업복overall’)이 탄생하였다. 저렴한 가격의 더플 코트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1953년 재고 물량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Gloverall은 몇 가지 디자인을 변경한 대중용 더플 코트를 최초로 출시하였다. 여성에게도 잘 어울리는 슬림 핏 개발과 가벼운 원단을 선택하였고, 후드와 주머니는 더 작고 유용하게 만들었으며, 1954년 안쪽에 체크 패턴이 있는 이중직 원단으로 자체 버전의 더플 코트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전후 더플 코트의 상징적 의미
한편, 나치-독일 점령에서 영국군에 의해 해방된 국가에서 더플 코트를 입는다는 것은, 전쟁에 참전한 모든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시민의 자유를 선언하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전후 몰아친 사회 변화의 시대에 자유롭고 학문적이며 파격적인 신세대를 위한 새로운 유니폼으로 어필했다.
1950~60년대 더플 코트는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반베트남 전쟁 시위대와 보헤미안, 예술가들에 의해 반체제 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는 물론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선택하는 코트가 되었으며, 미국의 비트족(beatniks)과 영국의 모즈(Mods)에게도 채택되었다.
1976년 뮤직 비디오 ‘The Man Who Fell to Earth’에서 David Bowie의 외계인 캐릭터는 자신의 타자성, 초현실성을 나타내기 위해 더플을 입었고, 반체제 및 반대론자, 오아시스의 모든 멤버는 1995년 싱글 'Roll With It'의 커버에서 더플 코트를 입었다.
1950년대와 60년대 사상 전쟁의 유니폼으로 사용되었던 이 코트는, 현재의 우리는 잊고 있었지만, 오늘 날에도 여전히 상징적인 혹은 잃어버린 그 무언가, 다른 생각의 방식을 표현하는 시그니처 아이템으로 누군가에게는 기억되고 사용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한편, 모든 반문화적 경향과 함께 그 후 더플은 매우 패셔너블해지기 시작했다.
더플 트렌드의 성장
전후 더플 코트에 대한 인기는 영화 스크린에도 반영되었다. 해군이 나오는 모든 영화에 반드시 출연했으며, 1949년 영화 ‘The Third Man’에서 Trevor Howard는 영화 내내 육군 표준 더플 코트를 입었고, 4년 후, ‘The Cruel Sea’의 Jack Hawkins에서도 더플 코트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더플 코트의 가장 상징적이며 사랑스러운 이미지 중 하나는 1958년 작가 Michael Bond가 만든 캐릭터 ‘패딩턴 베어(Paddington Bear)’이다. 첫 번째 패딩턴 이야기에서 패딩턴 베어는 런던 기차역에서 자신의 네이비 더플 코트에 쪽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곰을 돌봐주세요. 감사합니다.”…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피난한 영국 어린이들의 목에 걸고 있던 갈색 라벨에 대한 미묘한 언급이었다. 패딩턴 베어의 분실물 이야기는 전후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이후 이 캐릭터는 영국 문화에서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낡은 빨간 모자와 여행 가방, 네이비 더플 코트를 입은 패딩턴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은 100권이 넘는 책과 두 편의 장편 영화로 증명되고 있다.
추운 겨울 비바람을 막아주는 방수 코트의 역할을 해 주던 더플 코트는 세계 대전 중에 지위에 관계 없이 착용하면서 동등한 팀이라는 연대 의식을 부여해주었고, 전후 해방된 국가에서는 자유를 의미했다. 이 후 변화의 시대에 이르자 자유롭고 학문적이며 파격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유니폼이 되어 갔다. 여기에 전쟁 중 피난 가는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한 패딩턴 베어 첫 번째 이야기는 연민을 넘어 애정으로,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 온 동지애마저 느끼게 해준다.
진정한 클래식 아이템들의 디자인에는 그들이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우리의 몸을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고, 우리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조정되었으며, 우리가 해내야 할 일들을 수행할 수 있게, 우리의 생각을 말 없이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탄생한 클래식 아이템들은 그래서 이렇게 우리 곁에 유산처럼 남아서 같이 살아 가고 있는 것 같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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