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트 아이템 / Must Item] 뜨거운 폭염을 이길 해결책으로 개발된, 사파리 재킷(safari jacket) 이야기

김은영 전문위원 승인 2024.08.11 14:48 의견 0

우리가 사랑하고 꾸준히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들, 바머 재킷(bomber jacket), 트렌치 코트(trench coat), 피코트(pea coat) 등…상당수의 아이템들이 군대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옷’이라는 것의 탄생 중 제일 큰 이유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르겠다. 군대만큼 이러한 옷의 기능에 충실해야만 하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전투에서의 생존을 위해 특히 미국과 영국군은 20세기 가장 목적이 분명한 의류들을 개발해 냈다.

오늘 이야기할 사파리 재킷(safari jacket)도 그 기원이 더운 기후에서 복무한 군인들을 위한 유니폼으로 시작되었고, 아프리카의 뜨거운 열기를 견딜 해결책으로 개발된 덕분에, 35도 이상의 폭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이 한여름에 유용한 일상복이 되었다.

사파리 재킷의 기원과 기능

‘사파리 재킷(safari jacket. 부시 재킷bush jacket이라고도 불림)’은 원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아프리카 야외 탐험에 사용하기 위해 디자인된 일종의 오버 셔츠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사파리’의 어원은 스와힐리어로 본디 ‘여행’이란 뜻의 단어이다. 이 용어는 1935년 미국 신문에 소개된 후 ‘사파리 슈트(safari suit)’로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최초로 등재되었다.

사파리 재킷은 일반적으로 가벼운 면 드릴(cotton drill) 혹은 포플린(poplin), 리넨(linen)으로 만들어지며, 전통적으로 카키색(khaki. 먼지dust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에서 파생된 단어)을 가진다. 세부적인 특징으로 제원단 벨트(self-belt), 견장(epaulets), 4개 이상의 확장 가능한 벨로즈 포켓(bellows pockets)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카트리지 루프(cartridge loops)가 있기도 하다.

사파리 재킷의 기원은 실제로 아프리카,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1899~1902년 남아프리카 보어공화국과 전투를 벌이던 제2차 보어전쟁(Boer War) 당시, 남아프리카에 주둔한 영국 육군이 입은 카키색 면 드릴 군복이다. 가혹한 조건, 타오르는 남아프리카의 열기를 견뎌내기 위해 가볍고 통기성이 좋으며, 내구성이 뛰어난 견고한 면 드릴로 만들어졌고, 당시 카키색 염료는 저렴했으며 건조한 숲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위장색이 되어주었다. 일반적으로 허벅지 길이의 유니폼 상의에는 박스 주름(box-pleated)이 있는 4개의 버튼 달린 큰 유틸리티(utility) 포켓이 있었고, 넓은 리비어 칼라(revere collar), 벨트, 그리고 계급과 휘장을 달 수 있는 어깨 견장이 있는, 사파리 재킷의 전신이었다.

군대가 아프리카를 떠난 후에도 이 스타일은 유지되었으며, 디테일한 특징은 나중에 출시된 미 육군의 M-1943 필드 재킷의 상징이 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벨로즈 포켓은 운반 능력을 10배 증가시켰고, 넓은 리비어 칼라는 가슴을 가로질러 편안하게 펼쳐져 냉각에 도움을 주었으며, 허리 주위의 벨트는 모든 것이 고정되도록 도와주어 험난한 지형을 헤쳐 나갈 때 유용했기 때문이다.

사파리 재킷을 애정한 사람들

1930년대부터 아프리카에 대한 유럽의 식민 권력이 정점에 이르고, 사냥과 탐험이 부유층의 인기 오락이 되면서, 아프리카의 자연과 문화에 매료된 부유한 유럽인과 미국인들은 군용 카키 드릴 유니폼의 대중 버전인 고급스러운 사파리에 집중했다. 누가 최초의 사파리 재킷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디자인은 영국군 면 드릴 카키 군복의 확실한 진화 버전이었다. 일부 초기 사파리 재킷은 어깨 견장이 제거되어 더 깔끔한 일반인 스타일을 제공했으며, 딱딱한 가죽 벨트는 허리의 편안함을 위해 제원단 면 드릴 벨트로 제작되었다. 또한 넉넉한 주머니는 총알과 칼의 휴대 뿐 아니라 쌍안경, 지도, 말 수 있는 챙이 넓은 사파리 모자, 시가 한두 개 정도는 충분히 넣을 수 있어 사파리 여행을 위한 기능에도 역시 충실했다.

따라서 20세기 초 사파리를 타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일반인들도 이 재킷을 입기 시작했는데, 1909~1910년 동부와 중앙 아프리카에서 1년여를 보낸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전 대통령이 대표적 유명인이다. 루즈벨트는 Abercrombie & Fitch에서 Ben Willis가 디자인한 의류를 구입해 입었다. 1939년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소매업체인 Abercrombie & Fitch는 자사의 사파리 재킷을 “비를 내리기 위해 발수 처리된 부드럽고 유연한 수입 영국 면 드릴 소재로 만든 것으로 가볍고 여름 착용에 탁월하다”고 광고하면서 도매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편 작가이자 모험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1933년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이 재킷을 착용하였고, Willis & Geiger Outfitters와 함께 1936년 맞춤형 ‘부시 재킷’을 만들었다.

<출처> Theodore Roosevelt(left of the American flag) during his African expedition in 1909, Smithsonian Magazine /

Ernest Hemingway, www.thegentlemansjournal.com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국군과 독일군은 물론 많은 패셔너블한 이탈리아인들도 이 재킷을 변형하여 입고 있었는데, 이는 견고한 소재와 기능적인 포켓과 같은 실용적인 디자인을 소유한 이 재킷을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한편 1940년대 들어서면서 헐리우드는 정글 영화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사파리 재킷은 견고하고 남성적인 재킷의 매력과 모험과 여행의 의미에 매료된 헐리우드에 의해 여러 영화의 스타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1940년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주니어(Douglas Fairbanks Jr.)가 사파리Safari 에서 이 재킷을 입었고, 그레고리 펙(Gregory Peck)은 1952년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The Snows of Kilimanjaro을 각색한 영화 주인공으로 이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1953년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이 모감보Mogambo에서 이 옷을 입었다.

여기에 1974년,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The Man with the Golden Gun부터 1979년 문레이커Moonraker까지 다섯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서 007로 반복해서 등장했던 로저 무어(Roger Moore)의 가장 유명한 흰색 사파리 재킷 착용은 이러한 추세에 도움을 주게 된다.

<출처> Clark Gable and Grace Kelly in Mogambo, 1953, The Rake /

Roger Moore in a white safari jacket in The Man with the Golden Gun , BAMF Style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사진을 많이 찍힌 남성 중 한명일 찰스 왕세자(그 당시)도 맞춤형 앤더슨 앤 셰퍼드(Anderson & Sheppard) 사파리 슈트를 즐겨 입었으며, 1983년 다이애나와 함께 호주 여행 중 에어즈 록(Ayers Rock)을 방문했을 때 반팔 사파리 슈트를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파리 재킷과 이브 생 로랑의 사하리엔(Saharienne)

1968년부터 사파리 재킷에게 있어 중요한 해가 이어진다. 바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파리 부티크에서 아프리카 테마 컬렉션을 발표하면서 사파리 재킷의 면 개버딘 버전을 선보이며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폭풍을 일으킨 해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파리 재킷의 현대화된 버전을 특징으로 하는 컬렉션을 선보였는데 이를 ‘사하리엔(Saharienne)’이라고 불렀다. 이브 생 로랑의 사하리엔은 모로코 여행과 베르베르족(the Berber people)이 입는 견고하고 실용적인 의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브 생 로랑의 사파리 재킷은 이전 버전보다 더욱 피트되고 유선형으로 이루어져 더욱 우아하고 세련된 룩을 선사하였다. 이로써 이브 생 로랑은 사파리 재킷에 혁명을 일으키고 이를 하이 패션으로 승격시킨 디자이너가 된다. 남성복 스타일을 차용해 여성 패션에 혁명을 일으키던 이브 생 로랑은 아프리카 군인이 입는 유니폼과 더 광범위하게는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서양 남성들이 입는 사파리 재킷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의 스타일을 계속해서 이어나간 것이다.

1969년 초, 사파리 재킷은 SAINT LAURENT 리브 고슈 부티크(the SAINT LAURENT rive gauche boutique)에서 기성복 버전으로도 출시되었고, 그것도 즉각적인 성공을 이루었다.

<출처> Saharienne jacket in 1968, museeyslparis.com & getty image / safari jacket in 1969, getty image /

safari jacket in 2002 Yves Saint Laurent collection, getty image


이브 생 로랑의 사파리 재킷 버전은 패셔너블했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문화적, 정치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1960년대 후반, 세계는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물결을 겪고 있었고, 사하리엔 재킷의 실용성과 유니섹스 디자인은 실용성과 평등에 대한 열망, 그리고 자유의 정신을 반영했다. 이렇게 이 재킷은 자유와 모험의 상징이며, 새롭고 이국적인 장소를 탐험하는 여행자의 이미지를 불러 일으켰다.

이브 생 로랑의 사파리 재킷은 패션을 선도하는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 아이템이 되었으며, 오늘 날까지 이브 생 로랑의 혁신적인 접근 방식과 실용성과 럭셔리함을 혼합하는 능력을 상징하며 브랜드의 지속적인 시그니처로 남아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사라진 듯 보였던 사파리 재킷은 2010년대 들어 힙스터 서브컬쳐(hipster subculture)에 의한 빈티지 작업복의 대중화로 인해 많은 브랜드들이 면 드릴부터 리넨, 데님(denim), 시어서커(seersucker), 코듀로이(corduroy)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재로 이 제품을 제작하면서 다시 부활하였다.

기능성 군복을 뛰어넘어, 다양한 환경에 착용할 수 있는 모험과 탐험의 상징이 되고, 지금의 스타일리시하고 고급스러운 형태에 이르기까지 사파리 재킷은 실용적이면서도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한 세기 넘게 지속되어온 클래식 아이템이다. 이 재킷은 전통적인 블레이저를 대체할 정도의 고급스런 테일러링과 흰 티셔츠와 청바지 위에 가볍게 걸쳐 입을 수 있는 스트리트웨어라는 어쩌면 상반된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하이브리드 아이템이다. 또한 가볍고 통기성이 좋아 시원하게 착용할 수 있으며, 휴대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넉넉한 주머니 공간이 있는 리넨 사파리 재킷은 오버셔츠처럼도 활용이 가능해 봄부터 한여름, 가을까지 착용할 수 있는 따뜻한 혹은 뜨거운 날씨에 탁월한 선택이 되어준다.

글 ㅣ 김은영

<필자 소개>

연세대 의생활학과 졸업하고 이랜드 여성캐쥬얼 브랜드 더데이,2Me 실장을 거쳐 로엠 실장 시 리노베이션을 진행하였다. 2008년부터 이랜드 패션연구소에서 여성복 트렌드 분석과 브랜드 컨셉을 담당하였으며, 여성복 SDO를 역임하였다.
현재 트렌드 분석과 메가 스트림 현상, 복식 이야기를 연구,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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