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유재석은 트로트 가수 및 기획사 사장 등 다양한 부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캐'는 두번째 캐릭터라는 말로 단순 취미활동이 아닌 본캐 정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번 숨은고수는 맛있는 요리로 혀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요리 고수이자 살사 댄스 고수로 활동하면서 음악과 춤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계신 배한언 고수님을 소개합니다.
현재 직장과 직무를 말씀해 주세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담당하는지)
저는 주로 대사관 행사 케이터링을 진행하고 있고, 살사댄스 레슨도 10년 넘게 가르치고 있어요.
케이터링은 고객이 요청한 상황에 맞는 요리를 내어드려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요리들을 보고, 먹고, 요리해봐야 해요.
저는 미국 호텔 주방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다양한 국가의 요리사 친구들이 많아요. 각국의 요리사 친구들이 보내준 레시피를 바탕으로 요리 연구를 했어요. 유튜브도 보고, 책도 보고 하면서요.
그리고 1년에 한두 번은 꼭 해외에 나갔어요.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식당을 가서 먹어보는 거죠. 20년 동안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케이터링에 적합한 요리 연구를 해왔어요. 케이터링에 나가는 음식들은 전부 제가 개발한 것들이에요.
어떠한 계기로 현재 직무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저는 원래 국제법을 전공했어요. 국제법 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걸 하고 싶더라고요.그래서 석사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갔어요.
미국은 여행을 자주가서 익숙하기도 했고, 넓고 자유롭잖아요. 그리고 저에게 편안한 느낌을 줬어요. 미국에 가서도 일은 해야 하니까 J1 비자를 받아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죠.
호텔에서 처음에는 스튜어드로 갔어요. 열심히 일하면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를 했고, 주방에서 일하게 됐어요. 식자재 관리, 조리기구 관리, 음식 종류에 따른 칼 사용 방법 요리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어요.
4~5년 정도 미국 호텔 주방에서 일하면서 요리의 기초를 탄탄히 다질 수 있었어요. 근무시간에는 호텔 주방에서 기본을 익히고, 퇴근하고 나서는 남미 친구들이랑 놀았어요.
남미 친구들과 놀다보니 자연스럽게 살사 댄스를 배우게 됐죠. 그때 처음 춤이란 걸 접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미국에 있었을 때, 살사 댄스가 취미이자 스트레스 돌파구였고, 지금까지도 그래요.
사람은 인생에 한 번은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터닝포인트를 만난다고 하잖아요. 그게 저는 미국행 비행기였어요. 미국에 가지 않았다면 요리와 춤을 시작할 수 없었을 거니까요.
본인의 직무에서 가장 요구되는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식당에서 먹어본 음식이 맛이 있어도 그대로 카피한 적은 없어요. 왜냐면 케이터링으로 나갈 수 있는 요리는 또 다르거든요.
하나의 예를 들자면, 케이터링 요리에 소고기 스테이크는 나갈 수가 없어요. 요리를 한 순간엔 부드럽지만 케이터링으로 나가면 이미 질겨져 있거든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여 케이터링에 최적화된 요리 메뉴들을 구성하고 추가시키는 거죠.
케이터링에 나갈 요리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못해도 100번은 요리해보는 것 같아요. 내가 추가하고 싶은 음식의 최적의 맛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요리해봐요.
아무리 간단한 음식이어도 100번 이상은 시도를 해봐야 최고의 맛을 내는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의 조리법 차이가 맛에서는 큰 차이를 가져오거든요.
어려운 미션을 주는 고객을 만족시켰을 때, 희열은 배가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언제 요리에 대한 열정이 생기는지 생각해봤어요. 어려운 미션을 주는 고객님을 만날 때가 그러더라고요. 새로운 걸 해야 되니까요. 물론 준비할 때는 배로 힘들어요.
어떻게 구성을 할까, 어떤 음식들로 조화를 맞출까 치열하게 고민하거든요.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케이터링에 만족해하는 고객님을 보면 배로 뿌듯해요.
저는 대사관 행사 케이터링을 많이 해요. 대사관 행사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참석하는데, 그만큼 다양한 알레르기를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처음에 대사관에서 케이터링 요청이 들어왔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다양한 알레르기를 고려해서 최고의 케이터링 요리를 보여드려야 됐으니까요.
지금은 이것이 제 강점이 되었어요. 한국에서 알레르기를 다 고려해서 케이터링을 해주는 곳이 많이 없거든요. 처음에 까다로운 요청을 한 대사관을 요리로 만족시켜드렸더니 입소문이 났어요. 그래서 이제는 다양한 대사관에서 케이터링 요청을 많이 주세요.
어려운 미션을 주는 고객님들을 만족시킬 때, 희열은 배가 되죠. 하지만 어려운 미션을 완벽하게 완수했을 때, 그것이 결국 제 무기가 된다는 것도 배웠어요.
저에게는 수 만 명의 살사 제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살사 1세대입니다. 살사도 요리와 함께 시작했으니 20년 췄네요.
미국에서는 취미로 살사를 췄는데 추다보니 전문적으로 추고 싶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사도 요리만큼 연구를 했던 것 같아요. 살사를 알아가다 보니 요리처럼 종류가 참 많더라고요. 식빵도 우유식빵, 버터식빵, 옥수수식빵이 있는 것처럼요. 각 나라마다 추는 방법도 다르고요.
한국에서 살사를 추는 외국인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살사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똑바로 출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음악에 맞는 스텝을 밟을 수 있는지 등을요.
10년 이상 살사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게 됐어요. 그리고 10년 이상 살사를 가르치다 보니 이젠 수 만 명의 살사 제자를 둔 살사 고수가 되었습니다.
본인의 직무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로 한 분야의 고수가 되려면 10년 이상이 걸리는 것 같아요. 노력 여부에 따라 기간은 차이가 나겠지만, 저는 10년이 걸렸어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핸들링을 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연구를 해야 되거든요. 저는 10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마음이 좀 편해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연구는 지금까지도 게을리하지 않아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요리든, 춤이든 트렌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고수가 됐다고 해서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고수가 아니죠.
무엇이든 꾸준히 해보세요.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꾸준함이 정말 중요합니다. 이제 저는 요리와 살사의 전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딜 가서도 직업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 코로나 19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더욱 필요한 자세 같아요. 꾸준하게 지속할 수 있는 힘을 통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는 것이요.
저는 확신해요. 꾸준히 하면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이어도 고수가 될 수 있다는 거를요. 저도 케이터링 고수이면서 살사 고수로 활동하고 있잖아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다양한 분야의 고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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