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n anxiety reflex to a success model with risks
불안 반사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성공 모델로
When individual organisms of relative intelligence join together to form a larger organism to increase their collective chance of survival, we speak about a superorganism. The collective, networked action of a superorganism is called swarm intelligence.
각각의 지능을 가진 개별 유기체가 결합하여, 더 큰 유기체를 형성하며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증가시킬 때, 우리는 이를 슈퍼 유기체라고 부른다. 그리고 슈퍼 유기체의 집단적이고 네트워크화 된 행동을 집단 지능이라고 한다.
Apparently, there is no coordinator or a brain in such a system. The coordination takes place through the collective understanding of the final objective. This can simply be the desire for survival, as can be observed in schools of fishes. A predator finds it harder to catch a pray out of a crowd than to identify a single individual.
분명 슈퍼유기체에는 조정하는 개체나 뇌 같은 시스템이 없다. 조정은 최종 목표를 위한 집단적 이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어류집단에서 볼 수 있듯이, 단순하게 생존에 대한 욕구라고 볼 수 있다. 포식자는 홀로 떨어진 하나의 개체를 잡는 것보다 군중 속에서 먹이를 잡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The motivation to create a superorganism can also be to create a large structure, as it occurs in termites’ colonies, which build meters high residential towers. These residential towers are masterpieces of architecture. There are various sectors for supplying the termite population. The buildings are even designed to work like an air conditioner, using capillary thermic, which provides fresh air without any mechanics and dissipate used air.
슈퍼 조직을 만들려는 동기는 더 큰 구조를 만들려는 것일 수 있다. 이는 높은 주거용 탑을 짓는 흰개미의 서식지에서 시작한 듯 하다. 그들이 사는 타워는 건축의 걸작이다.
이 타워는 흰 개미들에게 편리한 구조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건물들은 기계장치 없이 모세관 현상을 이용하여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사용한 공기를 내보낸다. 마치 에어컨처럼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The walls of these insect castles are extremely hard and weather resistant. Again, only highly specialized predators succeed in overcoming these barriers. Termite castles are so successful that some of them survive a thousand years.
흰개미의 성벽은 극도로 단단하고 궂은 날씨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직 고도로 전문화된 포식자들만이 이러한 장벽을 넘는데 성공했다. 흰개미 성은 매우 견고해서 그들 중 몇몇은 천년 이상을 살아 남는다.
There are no blueprints for build it, but the animals in the collective, without knowing, do the right thing in the right way. Scientists are on the trail of this phenomenon because what works exquisitely since ancient times is also the basis of modern developments in the digital age. In the animal world we speak about superorganisms. In the human world about super states and high cultures.
이것을 짓기 위한 청사진은 없지만, 집단 속의 생물들은 무의식 중에 올바른 방법으로 일을 한다. 고대부터 정교하게 작용하는 이러한 현상은 현대 디지털 시대 발전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인간 세계에서 슈퍼 국가들과 문명에 대해 논하듯이 동물 세계에서 우리는 슈퍼 유기체에 대해 연구한다.
In the digital world about networks and algorithms, humanity is in the process of forming new superorganisms were often the border between human intelligence and artificial intelligence merge and blur. Digital global networking brings people from different cultures to pursue the same goals, find themselves online and collectivize their behavior.
네트워크와 알고리즘으로 구성된 디지털 세계에서 인류는 새로운 슈퍼 유기체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다. 종종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이 합쳐지고 경계가 모호해졌다. 디지털 글로벌 네트워킹은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고, 온라인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그들의 행동을 집단화 하도록 한다.
Ostensibly, the will for only surviving plays a subordinate role. What sets people apart from their animal swarm models is the motivation through appreciation. The appreciation of our opinions that may be rejected or even opposed by the immediate environment. Like-minded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come together and mutually reinforce each other's opinions. And humans can get addicted for receiving positive feedback. A virtual bubble is created. A bubble in which other opinions are perceived as threats, as hostile and harmful.
표면적으로는 단지 살아남는 것만을 위한 ‘의지’가 주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동물 무리 모델과 구별되는 것은 공감을 통한 동기 부여다. 미시적인 환경에 의해 거부되거나 심지어 반대될 수 있는 우리의 의견들에 대해 공감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의견을 상호 보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간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에 중독된다. 또한 가상의 거품이 만들어지고 이 거품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위협적이며, 적대적이고 유해한 것으로 인식한다.
There have always been societies where, because of their historical development, have developed strong collective connections within the own state. Often this was done under the influence of a dictatorial system, which subordinated deviant opinions and prosecuted them. Social norms were justified by political ideology, religion or external dangers. The individual was only part of the whole and as such, had to function exclusively.
시대를 거듭하면서 국가 내에서 강력한 집단적 연계가 발전하는 사회는 항상 있었다. 이러한 집단적 연계는 반대 의견을 묵살시키며 반대자를 감옥에 보내는 등 독재체제의 비호 하에 행해졌다. 사회 규범은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 또는 외부의 위험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개인은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조건 집단을 따라야 했다.
Each was meant to have a role. Men had to fight, women had to give birth to children, and children had to work as little adults. That we have overcome much of this today is one of the achievements of modern civilizations.
사회구성원 각각은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남자들은 싸워야 하고, 여자들은 아이를 낳아야 하고, 아이들도 나름의 일을 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상당부분 이러한 상황을 극복했다는 것은 현대 문명의 업적 중 하나이다.
But there are also roll back tendencies to the dark age of collective heteronomy. And that is just because of our tendency to personal display in the opinion bubbles of social networks.
그러나 이 또한 집단적 이질 주의인 암흑시대로 돌아가려는 경향이다. 비근한 예로 소셜 네트워크에 개인의 의견을 내보이며 거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성향이기도 하다.
Let's just use an example from the animal kingdom again: Because on the one hand, single fish collect to enormous swarms together and thus to defy their enemies like sharks, but they become just an easy prey for other predators like human fisher men because they go to the nets so easily and collectively.
동물 왕국의 예를 다시 한번 들어보자. 왜냐하면 한편으로 하나의 물고기는 거대한 떼로 모여들어 상어처럼 큰 적을 물리치지만, 그들은 너무 쉽고 집단적으로 그물에 다가가기 때문에, 어부들과 같은 다른 포식자들에게 쉬운 먹잇감에 불과해진다.
A society, even by crossing borders, is susceptible to manipulation and exploitation. The norms of behavior are reinforced and affirmed within the bubbles of opinion. The net becomes a monoculture of mind mining through exclusively group-relevant contents. Fake news feeds these systems, often deliberately spread out by the manipulators who wait with their fishing boats until the swarm is only big enough to become a lucrative prey.
사회는 국경을 넘어도 조작과 착취에 취약하다. 행동의 규범은 의견의 거품 안에서 강화되고 확증된다.
사회 망은 독점적인 그룹이 주도하는 콘텐츠를 통해 단일 문화가 된다. 가짜 뉴스는 이런 시스템을 살찌우고 그들의 어선과 함께 물고기떼가 돈벌이가 될 만큼만 클 때까지 기다리는 포획자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퍼져나간다.
We can observe this development everywhere. Especially on the internet and in social networks, different opinions are no longer openly and factually discussed, but imposed to the doctrine that all swarm members have to submit.
우리는 어디에서나 이러한 발전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더 이상 공개적, 사실적으로 서로 다른 의견이 논의되지 않고, 모든 무리들은 복종해야 한다는 교리를 전파한다.
Otherwise exclusion threatens. The consultative qualities of a mixed, plural society get lost. We no longer listen to each other, do not reflect, judge too easily, do not forgive. We are less careful with the opinions of others, which, when we adapt them, have an immediate effect on our personal lives. In every society we find tipping points of opinion formation.
그렇지 않으면 소외되며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적 협의는 상실된다.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말을 듣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며, 너무 쉽게 판단하며, 용서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덜 주의하는데, 만약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 들이면, 우리의 사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사회에서 의견 형성에 있어서 티핑포인트가 있다.
Tipping points are to be understood as a turning point, at which the critical mass is reached in favor of an opposite development and this potentially harmful development becomes irreversible. There are currently two major tipping points in observation.
티핑 포인트는 악영향을 주는 사회적 성장이 거스를 수 없으며 반대의 발전적 의견이 관철되는 전환의 포인트다. 현재 두 가지 주요 티핑포인트가 있다.
On the one hand, this is the political climate. A climate that has been significantly poisoned worldwide. On one side are the destroyers of our ethical perception. Politicians who split our societies by lying and society groups who believe these lies unchecked. On the other side there are the passive silent masses who avoid every political expression and decision
첫째는 ‘정치 풍토’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현저하게 물들어있다. 한쪽에선 우리의 윤리적 인식을 파괴하려는 자들이 있다. 거짓말로 우리 사회를 갈라놓는 정치인과 이런 거짓말을 믿는 사회단체들에 대한 견제는 없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모든 정치적 표현과 결정을 회피하려는 소극적인 침묵의 대중들이 있다.
The second tipping point is the question of the earth's climate. There is blind ideology on both sides. Those who completely ignore the existential problem (climate deniers) and others (climate activists) who are radicalizing themselves out of despair.
두 번째 포인트는 ‘지구의 기후’에 대한 질문이다. 양쪽에는 맹목적인 이념이 있다. 실존적 문제(기후변화거부자)를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들, 절망한 나머지 자신을 급진주의자로 만든 사람들(기후적 활동가들)이다.
When faced with the opinions or fears of others, we tend to take refuge in the space of our personal comfort zones. Can we build a better future in this way? That remains to be doubted. So, what can we do? Basically, there is only one possibility. Just go out from our opinion routine and listen to others with a taboo-free mind. Less online, but more personal. Share with people some communication outside of our beaten path of thoughts.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개인적인 안락한 공간으로 피신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그냥 우리의 일상적인 의견에서 벗어나 진실된 마음으로 남의 얘기를 들어보자. 온라인은 자제하고, 인간적으로 더 많이 관계해야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라.
I am not naive. I will not expect what I write here to be fruitful. However, I am also hopeful. Because somewhere out there, there is someone who sees it in the same way. In the sense of a plural opinion. Analogous.
필자는 그리 고지식하진 않다. 이 글을 여기에 쓴 것이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희망은 항시 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 같은 방식으로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원적 의견의 의미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을 위해서.
글ㅣ헨드릭 황, 칼럼니스트
번역ㅣ이윤숙 기자
<필자 소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성장한 뒤, 이탈리아에서 패션 브랜딩 전문가로 일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해 연세대 의류환경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 패션 산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업들 대상의 브랜드&마케팅 컨설팅과 크로스 컬쳐 트레이닝 경험을 갖고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및 한국문화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관련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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