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잃어가는 자존감 에너지를 찾아서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0.05.23 12:38 의견 0

글쓰기를 통한 자기효능감 확보

13살 생일날, 소녀는 일기장을 선물 받았다. 사춘기 소녀인 그녀에게 친구와의 우정, 남자친구와의 사랑, 흔하디 흔한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다. 오직 생존과 두려움만 가슴 속에 가득했다.

대신 소녀는 선물 받은 일기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숨소리 조차 낼 수 없는 환경 속에 있는 소녀에게 희망이었다. 곧 이 상황이 끝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며칠 후 누군가의 밀고에 의해 소녀와 가족은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죽어갔다.

소녀의 아버지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왔고 숨어 지내던 그 곳에서 소녀의 일기장을 찾았다. 다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녀의 가녀린 목소리는 <안네의 일기>가 되었고 지금도 전 세계인이 읽고 있다.

안네 프랑크 소녀상 (출처 : 저자)

안네 프랑크의 가족이 숨어 지내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집은 현재 <안네 프랑크 박물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 인근 <안네 프랑크 소녀상>에는 지금도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놓고 간 꽃들이 놓여있다.

독일의 유명한 저널리스트 울리히 슈나벨(Ulrich Schnabel)은 그의 저서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인플루엔셜, 2020)>에서 글쓰기의 효능을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재앙도 그걸 소재로 글을 쓰다 보면 한결 견디기 쉬워진다. 글을 쓰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미래의 독자라 할지라도 연대감은 느껴진다.

글쓰기는 자기효능감을 경험하는 한 방편이다. 자기효능감은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매우 중요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적어도 한 가지라도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효능감을 발휘한다면 이미 그 어려운 상황의 절반은 이겨낸 셈이다.

이 책은 글쓰기의 장점을 확인한 텍사스 대학교 제임스 페니베이커(James Pennebaker)의 연구를 이야기 한다. 제임스는 50명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실험군> 학생들은 감정, 생각, 마음의 상처에 대해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통제군> 학생들은 일상적, 피상적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했다. 연구과정에서 <실험군> 학생들은 북받치는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혈압이 상승하기도 했다고 한다. 6개월 후 추적연구 결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썼던 <실험군> 학생들이 병원에 가는 비율이 낮았다고 한다.

이 실험결과가 글쓰기의 자기효능감이 절대적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감정을 승화하고, 두려움이나 공포를 이겨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자기 효능감을 넘어 자존감을 찾아…

자존감 [self-esteem]

자신에 대한 존엄성이 타인들의 외적인 인정이나 칭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 내부의 성숙된 사고와 가치에 의해 얻어지는 개인의 의식을 말한다. (사회복지학사전, 2009. 8. 15., 이철수)

[Deepwater Horizon (2017)]

2010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앞바다 멕시코만 석유 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호’ 화재폭발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8년 7월,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유전에서 석유시추선 폭발사건으로 168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의 생존자 중의 한 명인 앤디 모칸(Andy Mochan)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잠결에 엄청난 폭발음 소리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거대한 불기둥이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다. 바다로 뛰어 내리기 위해 배의 난간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러나 바다 역시 새어 나온 기름으로 이미 불바다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故 구본형 소장은 그의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유문화사, 1998)>에서 앤디 모칸의 선택을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먼저 <확실한 죽음(Certain Death)>이다. 불타는 석유시추선은 곧 폭발할 것이다. 그대로 남아서 구조를 기다리는 것은 확실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대신 앤디 모칸은 <죽을지도 모르는(Possible Death)> 상황을 선택했다. 불타는 바다로 뛰어들면 조금의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구조대가 언제 올지 모른다. 그러나 앤디 모칸은 확실한 죽음 보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선택한 것이다.

과연 앤디 모칸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저 앉아서 구조를 기다리지 않고 무모하지만 실낱 같은 희망을 선택했고 자신의 선택을 믿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진정한 자존감은 자신의 성숙하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올바른 신념과 가치를 가지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안네 프랑크가 글쓰기에서 찾았듯이 사소하게만 느껴졌던 방법들이 이미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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