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처음에는 그저 그런 물질의 하나
석유는 자연에서 온 ‘액체 탄화수소 혼합물’이다. 탄화수소는 가공하면 거의 무한대로 분자구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다른 물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다. ‘석유=등유’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석유제품이 등유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유는 석유가 아니라 엄연히 석유제품의 한 종류이다.
석유가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6000년경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보면 배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아가 틈새에 석유제품의 하나인 역청을 발랐다고 한다.
정설은 아니지만 원시인들이 석유를 치료제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나라 때 반고가 쓴 한서(漢書)를 보면 5세기 남북조시대에 노인들의 이를 다시 나게 하는 만병통치약으로 석유를 이용했다고 하니 약으로 쓰였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아는 바세린을 석유로 만드니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내연기관 개발에도 여전히 석탄에 밀리는 석유
내연기관이 개발된 19세기부터 석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당시 석유의 주산물은 등유였고, 휘발유, 경유는 부산물이었다. 그래서 등유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휘발유, 경유를 사용하기 위한 기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885년 독일다임러가 휘발유 내연기관을, 이어 7년 뒤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개발했다.
내연기관이 개발되었지만 주력연료는 여전히 석탄이었다. 연료 효율성이 좋은 내연기관과 석유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여기에는 딜레마가 있었다. 산업혁명은 석탄을 기반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석탄을 버리고 석유로 바꾸면 수많은 광부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며, 석유는 수입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이러한 논쟁은 산업혁명이 처음 일어난 영국에서 가장 치열했다고 한다.
전쟁을 거치면서 열린 석유 시대
스페인 무적함대를 물리쳐 해상권을 장악하고,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을 통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영국은 1911년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이 독일을 능가하기 위해 해군함대에 석탄이 아닌 석유를 사용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부피가 작고 열 효율이 높은 석유를 사용하는 영국 해군함대는 석탄을 사용하는 독일 해군함대보다 더 빨리, 더 멀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석유는 인류 역사에서 떨어질 수 없는 에너지원이 된다. 자동차 연료, 항공기 연료로까지 확대되면서 본격적인 석유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 석유 이야기
석유는 생활과 뗄 수 없는 에너지원이다. 우리 주변에 석유제품이 아닌 것이 없다. 자동차용 연료인 휘발유, 경유는 물론이고, 플라스틱, 비닐, 섬유까지 석유제품이 아닌 것이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석유를 너무 모른다. 교육과정에서도 석유에 대한 내용은 기술시간(석유를 끓이면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로 나눠진다)과 역사시간(1970년대 오일쇼크 등)가 거의 전부였다.
전기자동차를 시작으로 이제는 탈(脫) 석유시대가 열릴 거라고 한다. 앞으로 석유는 더 이상 고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한다. 2020년 초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아래로 깨지기도 했다. 석유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영향까지 겹치면서 이제 석유와는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석유에 대한 관심을 버리자. 절대 아니다.
석유를 빼고는 특히 20세기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유럽 성장, 자본주의, 미국 부상, 냉전, 중동 등 역사의 키워드들은 20세기 모든 키워드가 석유와 관련이 있다. 금융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석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석유와 석유제품을 쓰고 있기 때문에 경기나 나빠지면 석유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경기가 좋아지면 석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 석유의 가격, 국제유가는 경제를 이해하는 바로미터이다.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는 석유 때문에 일어난다. 바로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석유에 대한 관심은 필요하다.
우리가 산유국이 아니기 때문일까? 교육과정에서 석유에 대한 내용은 너무 부족하다. 석유를 구성하는 탄화수소 화학식을 공부하고, 가공해서 다른 화학식을 가지는 과정을 배우자는 것이 아니다. 석유가 어떻게 휘발유, 경유가 되고 어떤 유통경로를 거쳐 우리가 사용하는지 배우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바탕에 석유 때문에 일어난 사실과, 석유가 주는 영향을 배우자는 것이다.
* 추천도서
오일의 공포 (손지우, 이종헌 저 | 프리이코노미북스 | 2015)
에너지 혁명 2030 (토니 세바 저 | 교보문고 | 2015)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최지웅 저 | 부키 | 2019)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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