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꿈
요즘도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하는 필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문득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공부하면 기계화면에 % 숫자가 올라가고, 공부안하고 놀면 % 숫자가 내려가는 거지. 기계화면 숫자는 대학에 합격할 확률을 보여주는데, 100%가 되면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 만큼 공부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지. 그런 신비한 기계 어디 없을까…”
그 후로 오랫동안 이 상상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YouTube에서 필자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보았다.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김경일 교수였다. 김경일 교수는 세바시 강연(1241회)을 통해 피드백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인간을 동기부여 할 수 있으며, 필자가 상상한 신비한 기계를 모바일 앱으로 만들면 학생들은 공부한 만큼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YouTube 세바시)
애나 어른이나
2020년 코로나 악재 속에서 Zoom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교육은 언택트(Untact) 분위기를 타고 성장을 거듭했다. 이제는 <랜선 교육>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아이들에게는 온라인 교육은 일상이 된 것이다.
초등학생인 필자의 아들도 원격수업 날에는 종일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로 수업을 듣는다. 하루는 아들이 수업이 끝났는데도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길래 궁금해서 물었다.
(필자) “아들, 수업 끝났는데 좀 놀지 뭐하고 있어?”
(아들) “아 그게 영어숙제를 하고 있는데 지금 정신이 없어. 다른 애들이 계속 따라붙고 있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 보았다. 아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게임처럼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한 과정이 끝나면 점수를 주는데, 과정이 끝나면 바로 참여한 학생들의 순위를 확인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1등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아들은 계속 간발의 차이로 따라오는 아이들과 점수차이를 벌이려고 그 좋아하는 축구도 안하고 온라인 영어공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드백은 이렇게 어린 아이들까지도 움직이게 하는가 보다. 2003년 출간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켄 블랜차드, 21세기북스)>에서 작가가 말한 칭찬이 그냥 잘했다는 칭찬이 아니라, 결국 긍정적 피드백이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사진 출처 : YES24)
우리는 이미 플랫폼 피드백에 노예였던 것을…
한편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르는 사이 어느새 피드백의 노예로 살고 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저작권 개념이 희미했던 그때 용산 전자상가 길거리에는 MS-Office, 아래아한글, Adobe Photoshop과 같은 비싼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CD 한 장에 담겨 만원에 팔렸다. 이후 CD에 담겼던 프로그램들은 <와레즈>라고 불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랜선을 타고 공짜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진 <와레즈> 메인 화면에는 누적 방문자 수를 계산하는 Widget이 있었다. <와레즈>를 만든 사람들은 방문자 수가 올라가는 피드백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그런 사이트를 만들어 온 것이다.
와레즈(WAREZ), 컴퓨터 소프트웨어, 영화, 음악, 사진 등의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취득, 양도, 교환하는 행위나 그러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인터넷 상의 가상 공간을 의미하는 속어(출처 : 위키백과)
한때 도토리를 가상화폐로 사용하며 방문자 수가 곧 인기 척도였던 <cyworld>부터, 좋아요 숫자가 인기 척도인 <Facebook>까지,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 수를 늘리고 사용자들끼리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피드백을 사용하고 있다. 요즘 <YouTube>에서는 좋아요 수가 곧 수익이 되고 있어 일부 크리에이터들이 좋아요 수 때문에 위험한 영상을 만들기도 하니 플랫폼의 피드백 사용은 어디까지 진화할지 자못 기대된다.
(사진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필자는 플랫폼의 피드백 사용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장하면서 돈, 외모, 공부, 운동 외에는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외롭고 소외된 현대인들에게 인정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온라인 플랫폼에서 좋아요 버튼을 눌러주는 것도 좋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박수나 엄지척을 보여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피드백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피드백은 좋아요 보다는 댓글 한 줄이, 박수나 엄지척 보다는 눈 앞에서 들려주는 격려의 한마디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글 | 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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