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생각 에너지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0.11.02 17:55 의견 0

클릭 앤 모르타르 (Click & Mortar)

1998년 여름,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를 방문한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에게 대한민국이 경제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질문했다.  두 사람의 대답은 같았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

다음해 1999년 대한민국은 초고속 인터넷 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콘텐츠, 속도에서 세계최고 수준이 되었다.

출처 : e영상역사관

당시 사업구상 중이던 나는 초고속 인터넷 망 확대를 지켜보면서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결론은 <전자상거래>였다. 곧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을 압도할 것이고, 온라인 상품을 전달하는 택배는 엄청난 성장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만나 이 이야기를 했다. 인터넷 비즈니스와 미래, 나의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소주 한 모금을 입에 탁 털어 넣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됐어. 그런데 말이야. 정말 오프라인 매장들이 모두 문을 닫고 온라인 매장만 남을까? 오프라인 매장도 뭔가 살아남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친구의 말이 맞았다. 오프라인 매장은 줄어들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렸다.

약 40만년 전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호모사피엔스 등장부터 지금까지 기간을 100으로 본다면, 인류가 온라인을 사용한 것은 전체 기간의 1%도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인류의 유전자, 습관에는 99%의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쌓아온 원시시대 생존본능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이 주장한 <조망-피신 이론>이다. 숨어서 살펴보고 도망치거나 사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시시대 생존원칙이 지금도 우리 본능에 남아 있다. 그래서 카페를 가면 구석진 창가에서 창 밖을 관찰하려고 한다. 버스에서 창가에 앉으려고 하고, 지하철에서 양쪽 끝 좌석에 앉으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출처 : 티스토리 블로그

1%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얻은 온라인 경험이, 99%나 되는 기간 동안 쌓아온 생존본능을 억누르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할지언정 우리는 창가 자리에 서로 마주앉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은 언택트 시대가 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 하나 더

필자는 독특하고 참신한 제품이 많아 클라우드 펀딩에 자주 참여하는 편이다. 오래 전 필자의 눈길을 끈 제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여행지도였다. 이제는 국내 여행지도에서 최고 자리에 오른 이 여행지도는, 큰 전국지도 한 장에 지역별로 추천하는 여행지가 그림과 함께 표시되어 있다.

물론 모바일 지도가 훨씬 더 편리하다. 확대, 축소되고, 블로그와 연결되고, 가족, 친구에게 링크도 보내줄 수 있다. 그런데 왜 이 여행지도가 클라우드 펀딩에서 대박을 친 것일까? 온라인 경험이 어쩌지 못하는 <조망-피신 이론>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국 모든 여행지를 한 눈에 아우를 수 있고, 여행 동선을 계획하기에도 편리하다. 엉뚱한 생각이지만 손에 지도를 쥐면 내 땅이 된 것 같은 착각도 든다. 혹시 종이지도에 대한 향수 또는 레트로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변화에 빠르게 따라가는 사람은 살아남고 따라가지 못하면 죽는다고 강요받는 시대다. 그러나 변화에 정신없이 따라가면 소용돌이에 휘말려 나를 잃고 만다. 오히려 한 걸음 떨어져 깊이 생각하고 넓게 바라보는 사람은 변화에 휘말리지 않고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만약 20년 전에 오프라인 매장이 다 사라질 것이라고 착각했던 내가 생각의 폭을 넓혔다면 어땠을까? 무척 궁금해지는 가을 밤이다.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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