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신을 닮은 소중한 존재들
우연히 발견한 책이 한 권 있다. 특이한 제목의 그 책은 <더불어 사는 자본주의>였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거나 교과과정에서 자본주의를 배운 사람이라면 ‘더불어 사는’과 ‘자본주의’가 함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고전 자본주의가 자유의지와 경쟁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더불어’ 산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렵다. 독특한 제목의 이 책이 갑자기 기억난 것은 바로 소름 돋게 만들었던 첫 번째 챕터 때문이다.
신은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흙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 신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간은 소중한 존재이다.
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은 각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처해있는 상황에 어려워도 가지고 있는 부와 지위가 없어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가치 있는 존재인지 판단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은 아니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들
2020년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2020년 5월 11일 오후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실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최희석씨를 추모하는 주민들의 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문제로 주민과 갈등을 빚은 고인은 전날 오전 자신의 집 주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억울하다는 유서가 발견되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서울 강북구 모 아파트 경비원 최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파트 주민 등에 따르면 최씨는 주차문제로 A씨와 다툰 뒤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최씨는 “A씨에게 상습적으로 폭행당하고 협박을 받았다”면서 A씨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유서를 음성녹음으로 남겼다. 최씨는 2개의 음성 파일을 통해 A씨에게 당한 폭행을 직접 증언하면서 “억울한 일로 죽는 사람이 다시는 없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필자 각색, 출처 : 서울신문, 2020. 5. 19)
오래 전 필자가 살았던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종이가 붙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한다는 주장이었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면 지구온난화가 심해져서 수명이 단축된다는 어이없는 논리였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인근에 행복주택아파트가 들어와도 집값 떨어진다고 그 흔한 현수막 하나도 걸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역시나 다음날부터 이 글을 반박하는 게시글과 쪽지들이 붙기 시작했고 이 게시글은 곧 사라졌다. 역시 대부분 주민들은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아파트 경비원에게 상습 폭언과 폭행을 일삼은 사람과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삐뚤어진 피라미드
(출처 : 매경Economy)
매슬로우(Maslow) 욕구단계설은 가장 유명한 동기부여 이론이다. 제일 아래 생리적 욕구부터 제일 위 자아실현 욕구까지 단계적으로 욕구가 충족된다는 이론이다.
고려대학교 김학진 교수는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네 번째 단계 인정욕구가 지나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인정욕구가 너무 강한, 삐뚤어진 피라미드를 가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과하고 무분별한 인정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며, 평범한 사과 정도로는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로 ‘인정중독’에 빠진다고 한다. 인정중독은 분노로 이어지고 폭언, 폭행 또는 지나치게 무리한 욕구를 하는 갑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갑질을 ‘자존감’과 ‘자존심’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해석한다. 자존감은 성숙한 사고에 근거하여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않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는 마음이다. 자존감은 내가 가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하지만, 자존심은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자기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은 포기하거나, 자기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행동을 하게 된다. 이때 성숙한 사람은 노력을 하겠지만, 미성숙한 사람은 남을 괴롭히면서 내가 남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이 미성숙한 사람이 벌이는 행동이 바로 갑질인 것이다.
돌고 돌고 돌고
tvN ‘코미디빅리그’ 코너 ‘갑과을’ 문규박, 미키광수, 손민수 (출처 : 이데일리)
어떤 가게에 한 손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직원 한 명이 그 옆에서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고 있었다. 손님은 왕이라며 직원에게 갑질을 하고 있던 그 손님의 행태를 보다 못한 한 남자가 다가갔다. 남자는 손님에게 적당히 하라며 다른 손님들 보기 민망하지 않냐고 그 손님을 나무랐다.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은 왕이라며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 손님에게 남자가 소리쳤다. “같은 왕끼리 한 번 붙어볼까?”
코미디빅리그 ‘갑과을’ 코너를 무척 좋아했다. 갑질로 물든 대한민국 사회에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다는 멋진 일침을 날린 영상이 또 있을까. 내가 갑질하는 저 거래처 사장님이 내 제품을 사줄 고객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내가 갑질하는 우리 아파트 경비원이 우리 회사 고객이라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공기업 정년퇴직 후 파견직 경비원의 고된 경험을 그린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드라마 <미생> 대사처럼, 회사가 전쟁터라면 저 밖은 지옥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보는 내내 찜찜했다. 준비 없는 은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게 되었지만, 그보다 경비실, 관리실에서 일하는 분들께 나 편하자고 불편을 드리거나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반성했다.
날도 더운데 퇴근 길에 시원한 것 좀 경비실에 계신 분들께 사다 드려야겠다. 아들과 함께 가서 인사도 시키고 이 분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분들인지 가르쳐야겠다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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