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0.08.20 12:56 | 최종 수정 2020.08.20 13:02 의견 0

고해성사

2005년 12월 오피스텔 월세계약을 체결했다. 태어나서 처음 내 이름으로 체결한 계약이었다. 하숙집을 떠돌던 나에게 오피스텔은 신천지였지만, 월세 살면 저축하기 힘들다는 선배들의 말 역시 사실이었다. 1년 후 집주인은 월세를 25%나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월세 압박이 버거워 대출이라도 받아서 전세로 옮기겠다는 생각에 전셋집을 알아봤다. 대부분은 반지하였다. 그렇게 고민하는 나에게 공인중개사가 한 마디를 던졌다.

중개사 A : “전세 물건이 하나 있는데…”

나 : “드디어 찾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중개사 A : “그런데 이 물건에 대출이 좀 있네요.”

나 : “문제가 되나요?”

문제가 되나요 라니…지금 생각해도 정말 멍청한 질문이었다.

중개사 B : “역세권이라 대출은 별 문제 안됩니다. 그리고 오피스텔은 대부분 대출을 끼고 사는 경우가 많아요.”

부동산 거래에 일자무식이었던 나는 공인중개사 말만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5개월 후 출장 중이었던 그 날 임대인에게 전화가 왔다.

“바쁘지 않으면 오늘 저녁에 좀 만났으면 해요.”

섬뜻한 기분이 들었다. 상사에게 말하고 일이 끝나자마자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임대인은 법원 판결문을 내밀었다. 결론은 임대인 명의 재산을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전세보증금은 내 전 재산이다. 게다가 대출도 포함되어있다. 이 돈이 날아가면 그 동안 모은 돈을 다 날리고 대출만 갚아야 한다. 5개월 후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혼자 똑똑한 척 했던 나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내 돈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부동산 거래에서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등기부등본은 어떻게 읽는 지, 경매에 넘어가면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소액임차인 보호제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임대차보호법은 어떤 내용인지 공부했다.

이대로 두면 내 돈 절반이 사라질 위기였다. 선배를 찾아가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한 끝에 그냥 이 오피스텔을 사기로 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집주인 은행대출금을 내 명의로 돌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바보같이 부동산을 사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며칠 후 계획에 없던 집주인이 되었다. 통장은 바닥나고 그 동안 고생으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오피스텔 1층 편의점에서 맥주캔을 따는데 눈물이 흘렀다. 너무 병신 같았다. 세상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더니…정말 병신 같았다.

아는 것은 힘, 모르는 것은 (독)약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단다. 미친 소리다. 살아있는 자체가 고생인데 굳이 사서 할 필요 없다. 오히려 고생을 줄이기 위해 공부하고 배우고 또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전문가가 참 많다. 공인중개사, 회계사, 변호사, 자산관리사 등 전문가가 넘친다. 하지만 결국 판단은 내가 해야 한다. 그래서 결과도 내 몫이다.

요즘 부동산 시장이 시끄럽다. 정부는 부동산을 잡겠다고 시장과 싸우고 있다.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해되지 않는 정책마저 내놓는 분위기다. 당연히 세입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주는 보증금은 세입자에게 전 재산이다. 이 보증금에 세입자는 물론 세입자 가족의 생존이 달려있다. 세입자들은 전문가, 정부만 믿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생기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무료법률상담? 무료구제제도?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모르는 것은 약이라고 한다. 그런데 독약이다. 모르면 전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

6개월 후 오피스텔을 팔았다. 빨리 팔기 위해 조금의 손해는 있었다. 그래도 내 소중한 재산을 대부분 지킬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때 그 전세계약서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가끔 내가 정신 못 차릴 때 그 계약서를 꺼내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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