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또 하나의 사회이다.
필자가 초등학교를 다닌 1980년대는 군사정부 시절이었다.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초등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 아닌, 예비군인을 양성하고 사회시스템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드는 곳으로 그린다. 영화적인 상상이 첨가되었지만 분명 사실과 다르지도 않았다.
당시 아이들에게 교사는 절대권력이었다. 일부 교사의 감정적 체벌도 가능했다. 영화 <친구(2001)>에서는 선생님(김광규 역)이 손목시계를 풀고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고 소리치며 준석(유오성 역)의 따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은 교사가 학생 따귀를 때리는 것은 상상도 못하지만 그때는 가능했다. 필자도 억울하게 맞아본 경험이 있다.
요즘은 반장선거도 많이 바뀐 듯하다. 들어보니 일부 초등학교는 반장을 돌아가며 지정한다고 한다. 교사의 절대권력을 등에 업고 친구들 앞에 군림하던 반장이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는 방법과 대표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21세기에 필요한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봉사하는 자세로 구성원들을 후원하고 지지하는 리더십 이론)을 배울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9년 만의 재회
22살 가을 입대를 앞두고 매일 밤 세워 친구들과 술을 마셔댔다. 그날도 밤 세워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다. 대학교는 가지 않았고 다리 때문에 군 면제를 받았다고 했다. 다리 때문에 취업도 어려웠는데 다행히 인근 초등학교에서 경비로 일한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나 학교 다닐 때 너 정말 싫었어.”
초등학교 때 반장이었던 필자를 싫어하는 친구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말의 이유가 궁금했다.
“정말? 왜 나를 싫어 한거야?”
“그때 넌 정말 재수 없었어. 반장이면 반장이지 자기 마음대로 청소당번 정하고, 떠든 아이 이름 적어 내고…그때 넌 정말 재수 없었어.”
할 말이 없었다. 그 친구가 말하는 동안 선명하게 그 장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친구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내가 철없었던 시절 행동 때문에 니가 상처를 받았다면, 만약 너무 늦지 않았다면 날 용서해주라. 정말, 진심으로 미안하다.”
친구가 필자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 잊었다며, 그것도 추억이라며 용서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지만 그 날 그 새벽에 일은 여전히 생생하다.
마음의 부담을 토해낼 수 있는 용기 에너지가 있는가?
그때 이후 필자는 잘못이 있다면 빨리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려고 노력한다. 사과는 내 마음의 부담과 상대방 마음의 아픔을 토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사과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존심 때문이다. 내가 잘못한 것을 인지한 그 순간 내 위치는 상대방 아래로 내려간다. 그런데 그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자존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사과하는 그 순간 나는 내가 괜찮은 인간이라는 자존감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끼지 않았던가? 자존심은 긴 인생에 있어 정말 무의미 하다는 것을…
글ㅣ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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