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ck, Knock, Knocking on Heaven’s Door
자동차 내연기관은 정확한 시점에 연료를 분사하고 불꽃을 붙여주면, 연료가 폭발하면서 동력을 전달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만약 연료를 분사하거나 불꽃을 붙여주는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내연기관 안에서 망치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나는데, 이것을 노킹(knocking)이라고 한다.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엔진 때를 벗겨준다는 <불스원샷> 같은 연료첨가제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료첨가제는 엔진에 묻어있는 그을음 같은 때를 벗겨주고, 연료 안에 들어있는 수분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앞에서 설명한 노킹 방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이 노킹에 얽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노킹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토머스 미즐리의 노력
1920년 미국 기계기술자이자 화학자인 토머스 미즐리는 자동차 엔진의 노킹을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 자동차들은 노킹 때문에 연비가 좋지 않았다. 연비가 좋지 않다는 말은 엔진이 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뜻이다. 언제 석유 매장량이 바닥날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노킹은 자동차 산업발전에 큰 문제였다.
토미스 미즐리는 노킹의 원인을 연료에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연료에 어떤 물질을 첨가하면 노킹현상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붉은 색을 첨가하면 노킹현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어이없는(?) 결론을 내리고, 기름에 잘 녹고 붉은 빛을 띠는 요오드를 휘발유에 넣는다.
어떻게 되었을까? 효과가 있었다.
이렇게 어이없이 탄생한 노킹방지 신기술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용화 할 수가 없었다. 요오드가 너무 비싸고 대량생산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미즐리와 그의 동료들은 요오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을 찾기 위해 몇 년 동안 몇 만 종류의 화학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결방법을 찾았다.
바로 납이었다.
유연휘발유의 탄생(Leaded Gasoline, 가연가솔린)
슈퍼맨 영화를 보면 슈퍼맨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크립토나이트>가 등장한다. 크립토나이트는 슈퍼맨의 고향 크립톤(Crypton)에서 온 녹색 결정물질로서, 슈퍼맨을 약화시키는 특이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런데 슈퍼맨을 무력화 할 수 있는 크립토나이트 조차도 납에 둘러 쌓이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납은 그만큼 무서운 물질이라는 것이다.
1923년 수많은 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납을 첨가한 휘발유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느려터진 자동차는 납이 들어간 휘발유 덕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자동차 산업은 끝없이 성장하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인정(?)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납이 들어있는 유연휘발유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더 빠른 더 멋진 자동차가 팔려나갈수록 인류는 점점 더 많은 납을 몸 속에 쌓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크립토나이트 앞에서 슈퍼맨은 힘을 잃는다. 그러나 납 앞에서 사람은 힘을 잃지 않는다. 차라리 힘을 잃으면 피하면 되는데 납은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한다. 공기 속에서, 땅 속에서, 사람의 몸 속에서 납은 분해되지 않고 계속 쌓인다. 그래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납중독은 느낌이 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차라리 그 순간만 영향을 주는 크립토나이트가 몇 천 배는 낫다.
유연휘발유의 퇴출
미국 지구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클레어 패터슨. 그는 지구 나이를 측정하기 위한 연구가 왜 실패하는지 이유를 찾던 중 대기 중에 있는 납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조사를 하던 중 1923년 이전에는 대기 중에 납 성분이 별로 검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23년, 어디선가 많이 본 년도이다. 그렇다. 바로 유연휘발유가 판매되기 시작한 해가 1923년이다.
오랜 노력 끝에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고, 1986년 비로소 미국에서는 유연휘발유의 판매가 법으로 금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유연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늦었지만 정말 다행이다. 만약 지금까지도 유연휘발유가 계속 사용되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영화 <X-Man>처럼 한 사람당 한가지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로 진화했을지 모른다.
다행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슬프다.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유연휘발유가 금지된 1992년 이전 태어난 세대다. 그래서 몸 속에 얼마나 축적되어 있을지 모를 납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글 | 정천(靜天), 직장인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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