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인터뷰] "장점에 집중하라는 말에 다시 힘을 냈죠"

-한문경 전 SM엔터테인먼트 리테일 총괄실장 (1편)

신동훈 기자 승인 2019.02.25 00:00 | 최종 수정 2022.03.29 00:46 의견 0

머스트뉴스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셔 이야기를 듣고 취업, 이직,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독자들께 유익한 정보와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첫 인터뷰엔 한문경 전 SM엔터테인먼트 리테일 총괄실장을 모셨습니다. 한문경 실장은 Life Style Creator로서 유무형 컨텐츠의 상품화와 세일즈에 특화된 전문가입니다. 리테일 공간의 기획부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하신 분입니다. 기획력과 수익성의 밸런스에 대한 중요함을 강조하는 실무형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인터뷰는 요즘 날씨답지 않게(?) 포근하면서도 미세먼지없이 맑았던 지난 14일, 서울 강남의 작은 카페에서 진행됐습니다. 2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였기에 두 편으로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주>

반갑습니다. 실장님의 경력을 살펴보니, 커머스와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각각 MD로 10년, 브랜드매니저로 5년을 숨가쁘게 달려오셨더군요. 지난 15년을 돌아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서였습니다. 한동안 일하다가 퀼트나 손뜨개 등 여성 DIY 재료를 유통하는 크래프트하우스란 회사로 옮겼습니다. 사실, 유통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사회 초년생이었지만, 주어진 작은 일들을 맡아 꾸준히 일하다보니 사장님께 칭찬도 받고 인정도 받게 됐습니다. 그런 과정이 기쁘기도 하고 일하는 즐거움도 알게돼 스스로 신이 나서 일했던 것 같습니다.

크래프트하우스는 대형마트에 입점해서 제품판매와 강습을 운영하는 형태로, 오픈과 런칭행사를 담당하며 지방 출장도 자주 다녔습니다. '신입의 패기'로 가장 열정적으로 일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런 저런 성과를 내면서 자존감도 높아졌고 꾸준히 일을 하다보니 전문성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15년 남짓 직장생활을 하며 제대로 쉬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온라인 편집몰 '텐바이텐'에서 SM엔터테인먼트로 옮겨 일하다가, 최근에는 29cm store 오픈을 했고 현재는 잠깐 휴식기를 가지며 정말 오랜만에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걱정하는 마음이 들 법도 한데, 전 오히려 앞으로 주어질 기회와 변화들이 기대됩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들을 토대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기도 하고, 제가 자존감이 좀 높은 편이기도 하고요." (웃음)

텐바이텐에 처음 입사하실 때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떤 과정과 생각을 거쳐 입사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셨던 만큼, 디자인 소품이나 아이디어 상품 등을 판매하는 회사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론 순수미술(한국화) 전공자로서 고민도 없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대학 시절, 함께 미술을 전공하던 친구의 아버님께서 "순수미술로는 먹고 살기 힘들테니 인테리어 분야를 배워두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처음 인테리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처음 들어갔던 작은 인테리어 회사에선 도면 그리는 일도 하고, 지금으로 치면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같은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열심히 일은 했지만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회사가 입주한 건물이 조금 특이했는데, 1층에 플라워샵, 2층 베이커리, 3~4층에 퀼트(손뜨개) 가게들이 들어서 있었어요. 거기서 퀼트 회사 크래프트하우스의 대표님이 저를 눈여겨 보셨나봐요.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회사를 옮기게 됐습니다. 신입사원에 불과했지만 부지런히 대표님을 따라다니며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때가 스물 일곱살 무렵이었으니 욕심과 의지도 많았고, 자신감이 충만한 시절이었지요.

그 무렵 온라인쇼핑몰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을 좀더 배우면 창업을 할 수 있겠다 싶어 몇 군데 회사를 다녔는데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텐바이텐을 알게 됐습니다.

텐바이텐은 처음엔 온라인MD로 지원했었는데 떨어지고 말았죠. 한 달 뒤, 대신 오프라인 매장에서 MD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연락이 오더군요. 앞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할 계획인데, 원래 오프라인 MD였던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연히 간다고 했죠. 일하다보면 온라인 분야에서 일할 기회도 생길테고요.

미술과는 동떨어진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면, 순수미술 전공자들은 흔히 "디자인 공부할 껄"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 경영 분야에 관심이 더 생겼습니다. 사실, 제가 브랜드 론칭 기획이나 MD 관련 일을 하다보니, 사업을 알고 수익을 내야하는 상황이 더 중요했거든요. 자연스럽게 경영 공부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지더군요. 브랜드를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수익을 내야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한편으론, 미술을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획의 개념을 설명할 경우, 말이나 글보다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직관적이잖아요? 파워포인트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면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쉽게 되곤 했습니다. 종종 파워포인트로 투시도를 그리기도 했어요. 원래는 CAD(컴퓨터를 이용한 도면 작성 시스템)로 해야할 일이었으니 동료들이 신기해하더군요." (웃음)

텐바이텐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일하셨더군요. 한 직장에 오래 일하시다보면, 많은 경험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요? 즐거웠던, 힘들었던 혹은 변화나 성장의 계기가 되었던 일들이 있으시면 들려주세요.

"텐바이텐은 제게 '친정' 같은 곳입니다. 이직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직속상사이셨던 이사님께서 붙잡지 않으시더라고요. 만류하실 줄 알았는데. 내심 섭섭한 마음에 왜 안잡으시냐고 여쭤봤더니, "10년 동안 한번도 그만두겠다는 얘기를 안했던 사람이 그만둔다는데 내가 어떻게 잡겠나?" 하시는거에요. 감사하면서도 정말 멋진 분이시구나 생각했죠.

텐바이텐은 지금으로 치자면 톡톡 튀는 스타트업 같은 회사였는데, 복리후생이 참 좋았어요. 당시로선 업계에서 드물었던 조식제공, 근속휴가 등을 이미 도입했으니까요. 제가 근속휴가를 떠난 첫 케이스였는데, 오사카 여행을 함께 갔던 동료들과 관광 대신 현지 스토어들을 실컷 돌아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전직원들과 함께 포상휴가를 떠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고요. 회사를 오래다니다보니, 일반 직원이었지만 경영진 같은 마인드로 일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할때도 많았고요. 그만큼 즐겁게 다녔던 회사입니다.

성장의 계기를 들라면, 그만두기 한 두 해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잠깐 설명을 드리면, 텐바이텐은 규모가 큰 회사는 아니지만,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핵심성과지표) 등 평가시스템이 명확했고, 평가요소나 평가과정들에 대해서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졌던 조직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상향식 평가(부서원이 부서장을 평가하는 방식)를 하게 됐는데, 하루는 인사팀장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저희 팀원들 대부분이 "권위적이고 무섭다, 카리스마가 너무 강하다, 의견조차 내기 힘들다"며 팀장에게 부정적 평가했다는 얘기를 전하더라고요. 말그대로 충격적이었죠. '회사를 그만둘 때가 된 거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었고요.

알아보니 옆 부서 팀장은 상향식 평가에서 저와는 정반대로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더라고요. 답답하기도하고 부러운 마음에 비결을 물어보니, "공부 잘하는 사람은 공부 못하는 사람 마음을 이해 못하죠"란 답이 돌아왔어요. 처음엔 이해를 못했죠. 공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가 학창시절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팀원들에게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라는 의미였습니다. 제 자랑 같지만, 전 회사 다니며 일 못한다는 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어요. 소위 '일머리'는 좀 있었던거죠. 제 기준으로만 팀원들을 밀어 붙이며, 업무에서 다소 부족한 팀원들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겁니다.

며칠 지나 상사와 면담을 하루 앞두고 우연히 TV에서 한 강연을 보게됐습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교수의 강연이었는데, "단점을 만회하기 보다는 장점을 더 살리는 데 집중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치 저를 두고 하는 얘기처럼 들렸어요.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제게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면담에선 상사께서 "호불호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 팀원들 입장에선 부담스럽게 느끼지 않았을까"란 의견을 주시면서 "그래도 잘하고 있다, 남들이 못한 일들을 많이 해냈다"며 저를 북돋워 주시더군요. 용기를 내 팀원들과 일대일 면담을 가졌습니다.

막상 면담을 해보니, 예상밖으로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았어요. 나중에 받아 본 평가서도 마찬가지였고요.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마음고생했던 걸 생각하니 화가 나더라고요. 인사팀장에게 따져물으니 뭐라는 줄 아세요? "인사팀은 원래 그런겁니다"하더군요. 일부러 '쎄게' 얘기를 했다나요. (웃음)

여하튼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계기도 됐구요. 지금껏 회사에 다니는 동안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2편에 계속)

[머스트뉴스 신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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