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서 이어짐)
이제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엔터) 얘기를 해볼까요? 10년 간 다닌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신 셈입니다. 이직의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0년 가까이 근무하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헤드헌터로부터 SM엔터 이직제안을 받았어요. 처음엔 고사했습니다. 텐바이텐에서 일할 때 SM엔터와 슈퍼주니어 공연 프로젝트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고생했던 기억이 나서요.
사진과 그래픽 등 아티스트 콘텐츠를 활용해 컨셉에 맞는 공연 굿즈(공연그래픽이나 연예인의 초상을 활용해 공연장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출시하는 기획 상품)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SM엔터 디자이너분들이 하나하나 아주 꼼꼼하게 체크를 하시더라구요. 작은 것 하나 컨펌 받기도 쉽지 않았죠.
무엇보다 그동안 텐바이텐에서 해왔던 일들과는 처리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많이 달라 이해가 안가는 점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SM엔터에서 일하며 왜 그렇게 까다롭게 체크해야하는지를 이해하게 됐지만, 당시엔 저나 저희 팀원들 모두 정말 힘들어 했거든요. 그 기억이 떠올라 거절했던 것인데, 헤드헌터를 만나 얘기를 나누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막상 얘기를 나눠보니 저와 잘 맞는 일이라 자신감도 생겼구요.(웃음)
SM엔터 면접과정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신규사업이라 팀의 셋팅부터 모두 도맡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 하는건데, 다행히 제가 그런 상황엔 익숙한 편이거든요. 대표님과 면접을 하는데 너무 유쾌하신 분이시더라구요. 느낌이 좋았습니다. 좋은 기회란 생각에 회사를 옮기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리고 이직을 결심한 데는 한 가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사실, 전 아이돌이나 연예인엔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SM엔터 이직제안을 받고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던 중에 눈길을 확 끄는 기사가 있었어요. 제안받은 그 해가 2013년이었는데 같은 해 1월인가 진행된 명동 롯데영플라자에서 소녀시대 팝업스토어에서 열흘 만에 매출 6억 원을 기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텐바이텐도 같은 매장에 입점해 있었는데, 잘 나오는 경우가 한 달에 2억5000만 원 정도였거든요.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이런 매출이 나오는 지 호기심이 생겼고, 직접 경험해 보고싶다는 욕심도 생겼어요.
그렇게 이직을 하게되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습니다. 텐바이텐을 그만두고 SM엔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주일이라도 쉬었어야했는데, 새 회사로 거의 바로 출근을 한거에요. 처음 이직하는데다 주변에서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죠.
일하던 회사에선 좀더 있어달라고 하고, 옮길 회사에선 하루 빨리 오라고하고. 혹시 이직을 준비하시 분들이 있다면 잠깐이라도 꼭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특히 쉼 없이 달려오신 분들이라면 더욱.”
서울 코엑스에 위치한 SM타운 코엑스아티움 준비에도 참여하시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일하시며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맡은 주업무는 SM엔터의 아티스트 콘텐츠를 활용한 부가사업이었습니다. 리테일(소매)과 F&B 카페 (Food & Beverage. 식음료) 사업을 총괄했는데, SM엔터로 옮기던 무렵에 엔테테인먼트 산업이 업계에서 많이 주목받았던 시기였죠. 그 덕분에 운좋게 여러 경험들을 해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기업과의 콜라보를 통해 재미있는 결과물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특히 입사한지 얼마 안되 코엑스아티움을 준비했던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규모가 가장 큰 프로젝트기기도 했구요. SM타운 코엑스아티움은 극장과 뮤지엄(초기엔 체험 스튜디오), 리테일숍, 카페 등으로 구성되는데, 아티스트의 컨텐츠를 활용해 극장에선 홀로그램이나 실황공연 등을 통해 고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콘텐츠를 곳곳에 배치해 고객이 경험하고 좋아하는 아티스트 관련된 굿즈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획됐어요. 팬들을 위한 성지같은 곳이죠.
저를 포함한 오픈을 준비 하는팀 모두가 오픈전날까지도 밤을 새워가며 일을 했습니다. 이대로 오픈 못하겠다 싶었는데, 어떻게 되더라고요. 집중력과 실행력에 놀랐습니다. 프리오픈 행사날 리테일 매장은 일반인에게 가오픈을 했는데, 고객이 갑자기 몰리는 바람에 은행 대기표 장비를 급하게 구해 정리에 나섰던 기억도 나네요.
돌이켜보면, SM엔터에서 일하는 동안 대표님 회장님 등을 직접 대면하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동료들에 비해 많았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주인의식을 갖고 남들보다는 더 치열하게 일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만, 경영진의 방향성을 직접 파악하며 일하는 기회가 흔치 않은 만큼, 역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한일이죠.”
전세계적으로 K-pop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BTS(방탄소년단)은 아티스트의 노래와 퍼포먼스도 훌륭하지만, SNS를 적극 활용하며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로도 꼽힙니다. 서점에 가보니 이를 분석한 책까지 나왔더군요.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소속 아티스트들의 브랜딩을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브랜드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텐바이텐에서 SM엔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해못하다가 SM엔터로 옮긴 후에 이해를 한 점이 있다고 말씀드린 부분이 답이 될 거 같네요.
아시다시피, 엔테테인먼트 회사의 핵심은 아티스트입니다. 아티스트가 창의적인 활동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획, 관리, 지원 등의 매니지먼트를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저는 매니지먼트 역할은 아니지만, 아티스트를 활용한 상품을 최고의 품질로 만들고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건, 단순히 상품을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바로 사람(아티스트)을 관리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과하다싶을 정도로 아티스트 컨텐츠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확인을 했던 것이란 점을 알게됐습니다. 어쩌면 제가 연예인에 관심이 있거나 팬덤을 경험해봤으면 당연히 알고 있었을텐데, 그렇지 못해 나중에야 깨달알았던거죠.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보통 브랜드나 기업이 연예인을 ‘활용’한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활용한다는 생각보다는 브랜드나 기업이 연예인을 파트너로서 생각하고 진정성 있게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팬(고객)들도 열광하고 아티스트도 만족하는 좋은 결과가 있다고 봐요."
최근 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인턴을 뽑는 과정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는데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해 보신 입장에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해야 할 점이나 갖춰야 할 역량에 대한 힌트를 좀 주세요. 회사 분위기, 조직문화, 업무의 특성, 유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서도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는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발신하는 과정이 폐쇄적이고 조심스럽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업종 특성상 관련내용이 유출되면 곤란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람(아티스트) 자체를 활용해 비즈니스를 만들어가는 일이라 초상권 등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철저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안되기도 하고요. 외부에서 보시기엔 다소 답답하시거나 의아해하시는 점들도 있을텐데, 이런 이유들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조직문화도 폐쇄적이거나 하진 않습니다. 사내에선 ‘님’으로 호칭하고,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와 혜택이 있어요. 그러고보니 처음 입사했을 때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생각나네요. SM엔터로 옮긴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거기는 다들 멋부리느라 한여름에도 가죽재킷 입고 다닌다더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얘길 듣고, 입사 후 한동안 나름 잔뜩 멋을 부리며 다녔는데, 그렇게 하고 다니는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웃음) 엔터테인먼트회사도 일반회사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수만 SM엔터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항상 강조하시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타이밍’ ‘경제성’인데요, 각각의 단어는 직관적이라 구체적으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이 부분은 비단 SM이 아니더라도 모든 상황에서 참 중요한 가치라 아직도 늘 기억하고있어요.
그 밖에 해외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하니 외국어 능력도 갖추면 좋겠죠. 팬덤까진 아니더라도 팬으로서 아티스트를 좋아해본 경험이나, 기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어야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더 잘 맞을 것 같아요.”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에는 변화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되고 있습니다. 브랜드매니저라는 직업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도 함께 들려주세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직업의 세계에 대해 소개하는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하고 있던 브랜드매니저라는 일을 새삼 정의해본 적이 있어요. 브랜드 매니저는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기획, 홍보, 마케팅 등의 업무들이 잘 진행될 수 있게 조율하는 역할이에요. 비유하자면, 버드뷰(Bird view)로 브랜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업무를 한눈에 파악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크고 작은 개인과 기업의 브랜드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브랜드매니저라는 직업은 계속 존재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플랫폼과 고객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계속 바뀌고 있기 때문에, 브랜드매니저는 트렌드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트렌드를 맹신하거나 좇아가려고 해서는 안되고, 꾸준한 관심을 갖고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브랜드매니저는 트렌드를 통해 파악한 키워드들을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와 ‘진정성’ 있게 매칭할 수 있어야합니다. 다양한 키워드들을 모두 흡수하긴 어렵겠죠, 하지만 자신이 관심 있고 담당하는 브랜드와 잘 어울리는 핵심 키워드들을 선별해 반드시 연결고리를 찾아두고 있어야합니다. 이는 저 스스로에게도 항상 다짐하고 당부하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브랜드매니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들려주세요.
“브랜드매니저가 되려면 관심과 끈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관심에만 그쳐선 안되겠죠. 관심을 발전시키고 구체화시킬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해요. 또한, 유연성을 갖추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봐요. 일을 하다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피드백을 받게 마련인데요, 유연성이 없으면 그때마다 부러지게 되거든요.
요즘 진정성이란 말이 더 많이 와 닿아요. 제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진정성있게 전달돼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머스트뉴스 신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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