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SALE’ 광고와 소셜미디어에서 소개되는 ‘지금 사야 하는 쇼핑 리스트’ 등 소비를 부추기는 콘텐츠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침투해 있습니다. 특별히 쇼핑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할인’이란 문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죠. 평소 눈여겨보았던 상품의 할인율을 면밀히 살피다 보면 ‘1 피스 남음’이란 구매를 재촉하는 문구를 발견하게 될 때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은 소유욕은 재빨리 구매 버튼을 누르게 만듭니다.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강박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구매한 경험도 적지 않죠. 그렇게 산 옷과 신발들은 몇 번 입고 옷장 한편에 가만히 모셔 두기도 부지기수입니다.
모든 기업이 할인 쿠폰을 뿌리고 소비자의 소유욕에 불을 지펴 ‘더’ 많이 파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 때,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을 내세운 패션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의류 브랜드가 자신의 상품을 사지 말라고 외치는 아이러니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은 패션 브랜드이지만, 환경을 위해 자신들의 옷을 사지 말라고 말합니다. 튼튼하고 오래 입는 옷을 지향하며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죠. 구매를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다면 사지 말라’는 이 역설적인 문구는 오히려 매출 40% 상승과 더불어 소비자에게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브랜드로 확실하게 각인시킨 효과까지 얻었습니다.
혹자는 파타고니아의 캠페인이 환경 마케팅을 이용한 고도의 상술인 ‘그린 워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슈나드가 자신과 가족들이 보유한 회사의 소유권 모두를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본 슈나드의 행보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을 비롯한 파타고니아의 다양한 환경 캠페인과 환경 보호에 대한 그들의 진정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했죠.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패션 산업은 파타고니아처럼 리사이클링, 업사이클링 등 여러 가지 친환경 캠페인을 내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연간 이익보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치를 우위에 두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들은 ‘그린’, ‘에코’, ‘친환경’, ‘천연’ 같은 키워드 뒤에서 그들의 본심을 교묘히 감추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Fast-Fashion’, ‘Fast-Food’ 등 ‘쉽고 빠르게’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시스템을 만들어냈습니다. ‘패스트 패션’은 저렴한 가격으로 시즌 트렌드의 모든 것을 충족하는 컬렉션을 발 빠르게 선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저렴한 가격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대량 생산 시스템과 합성섬유. 가격 경쟁력을 가진 대량 생산은 ‘패션 민주화’를 가져왔고 사회적,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나’ 패션쇼 런웨이에 올라간 디자이너 브랜드 못지않게 세련된 스타일로 꾸밀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누구나’ 살 수 있다는 것은 소유 가치를 떨어뜨리고,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너무 많이 생산해서 혹은 유행이 지나서 버려지는 옷들은 어디로 갈까요? KBS ‘환경 스페셜’에서 버려지는 옷들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현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됩니다. 영상에 따르면 1년 동안 지구에서 만들어진 옷들은 1,000억 벌, 그중 약 33%인 330억 벌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고 합니다. 버려진 330억 옷 중 80%는 가나, 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되고 15%는 쓰레기로 분류되며 나머지 5%만이 중고 의류로 다시 판매됩니다. 그런데 헌 옷을 수입하는 개발도상국은 이 옷들이 마냥 반가울까요? 환경운동단체 더 올 파운데이션(The OR Foundation) 엘리자베스 리켓 대표는 "(수입돼) 중고 시장에 들어온 헌 옷의 40%는 쓰레기가 된다. 지역 폐기물 처리 시스템은 이 모든 쓰레기를 처리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많은 쓰레기가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처리된다"고 말합니다.
글로벌 패션 기업들은 값싼 노동시장을 가진 개발도상국에 자신들의 공장을 지었습니다. 봉제 공장에서 그들은 우리의 편리함과 욕망을 위해 밤새도록 옷을 만들어냈습니다. 옷은 버려질 때뿐만 아니라 만들어지는 순간에도 지구를 위협합니다. 의류 생산 과정에서 매년 12억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엄청난 양의 물을 소비합니다.
특히 패스트 패션에서 주로 사용하는 합성섬유는 일반 면 소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필요하고 썩지도 않습니다. ‘생계’를 위해 봉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옷에 뒤덮인 채 ‘생존’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패션 산업의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의 결과를 오롯이 개발도상국에서 책임져야 할까요? 죄책감 없이 일회용품처럼 하루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우리의 목을 점점 조여오고 있습니다. ‘집이 불타고 있는데 방관할 주인이 있을까요?’ 옷 무덤이 개발도상국을 넘어 지구를 뒤덮기 전에 우리의 일상에 작은 용기를 내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작은 실천을 넘어 기업과 정부에 목소리를 더 많이, 자주 내어 개인이 할 수 없는 것들을 개선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옷’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의식주’ 중의 하나이죠. 아예 소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패션과 환경의 합의점을 찾아야 합니다. 무엇을 소비하지 않을지 고민하고, 꼭 소비해야 한다면 구매 자체가 환경 운동이 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소비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디자이너이자 환경 운동가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덜 사고, 잘 고르고, 오래 입어라.’고 말합니다.
쇼핑을 나가기 전, 조금 더 깊고 현명한 고민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의 소비가 꼭 필요한 것인지, 잘못된 소비가 불러일으키는 고통은 누가 짊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 우리가 사랑하는 패션도 지속가능한 지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것을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사려고 하는 그것. 10년 뒤에도 소장할 가치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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