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꿈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선택했든, 억지로 하게 되었든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 그러나 쉽지 않다. 보직변경을 요청하면 배신자 낙인이 찍힌다. 제도적으로도 여전히 대부분 조직은 보직변경이 막혀있다. 보직변경 제도가 있다고 해도 직원의 자유의지는 허락되지 않는다.
경영지원본부장이 중요한 발표를 했다. 한 부서에서 4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본부 내 보직변경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누구는 새로운 기회를 반겼다. 반면 누구는 절망에 휩싸였다. 지금 너무 편하고 좋은데 다른 부서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다.
대상자 선별에 들어갔다. 필자가 속한 부서에 과장 한 명이 대상이 되었다. 한 부서에서만 8년을 근무한 사람이었다. 그 과장의 후배 직원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는 고지식했고 엄격했다. 게다가 워커홀릭(Workholic)이어서 늘 일거리를 만들어 몰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며칠 후 직무순환 가닥이 잡혔다. 그 과장과 바로 옆 부서 과장을 서로 맞바꾸기로 했다. 옆 부서는 난리가 났다. 필자 부서의 과장이 워낙 악명 높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옆 부서 후배직원들은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며칠 후 갑자기 직무순환 제도가 취소되었다.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직무순환 제도 도입이 취소되기 며칠 전, 옆 부서 직원들과 대표이사의 점심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대표이사는 직원들에게 건의사항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다. 옆 부서에 말이 좀 많은 대리가 있었다. 그 대리가 대표이사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최근 본부 내 직무순환을 실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 대해서 직원들의 불만이 많습니다.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다른 부서로 보내지기 때문에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업무에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식사를 마친 대표이사는 경영지원본부장을 불렀다. 엄청나게 질책했다. 질책을 받은 경영지원본부장은 인사부서장에게 직무순환을 없었던 일로 하라고 지시했다.
꼰대 같은 상사가 오는 것이 싫어 거짓말을 한 직원,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화부터 낸 대표이사, 제도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한 경영지원본부장. 10년도 넘은 이야기다. 그러나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 직원들이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처럼* 오늘도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다.
* 이상(李箱) 소설 <날개> 인용
현대카드, 현대캐피탈의 커리어마켓(Career Market)은 조직행동, 인사시스템에서 Best Practice로 손꼽힌다. 부서이동을 원하는 직원이 자신을 등록하고 마케팅하는 <오픈커리어 존(Open Career Zone)>, 인재를 찾는 부서장이 직원을 찾는 <잡포스팅 존(Job Posting Zone)>'으로 나뉜다. 선(先)전출, 후(後)충원 원칙이 적용되며 부서이동 방해는 엄격하게 금지된다.
코브라 이펙트
독일의 경제학자 호르스트 시버트(Horst Siebert)는 2002년 그의 저서 <코브라 이펙트(Der Kobra-Effekt)>에서 코브라 이펙트라는 용어를 처음 선보였다. Next Step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기 결과만 바라보며 실속 없는 대책을 계속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단편적으로만 판단하는 문제점을 꼬집은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당시 이야기다. 당시 코브라 때문에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영국은 코브라가 없어지면 사망사고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효과를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포상금을 노린 사람들이 코브라를 사육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코브라의 수는 급증했다. 결국 영국은 포상금 제도를 폐지했다. 포상금을 노리고 코브라를 사육했던 사람들이 필요 없어진 코브라를 내다 버렸다. 그 결과 코브라 개체 수는 포상금 제도가 도입되기 전보다 훨씬 더 늘어나버렸다.
코브라 이펙트 이론이 만들어진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지긋지긋한 코브라 이펙트를 열심히 경험하고 있다.
Game Changer
새해가 밝으면 많은 리더들이 새해 각오를 들려준다. 그들의 각오에서 <소통>, <혁신>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리더들의 틀에 박힌 각오를 듣고 보는 직원들은 마음 속에는 다짐 보다는 불신이 쌓여간다.
“소통의 장(場)을 만들어 리더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겠군.”
“혁신이라는 명목 하에 우리를 계속 채찍질하면서 피곤하게 만들겠군.”
소통과 혁신을 <고민>과 <성찰>로 대신하면 어떨까? 현실에 대해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는지 “함께” 돌아보자는 이야기가 훨씬 진정성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진성성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고민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리더는 불신을 받겠지만, 적어도 그런 노력을 해왔던 리더라면 직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필자가 속했던 한 부서에서는 그런 리더가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우리는 “요즘 우리 팀장님 힘들어 보이시는데, 우리가 더 열심히 일합시다.” 하면서 각오를 다지곤 했다. (거짓말 같은 실화!!)
리더 혼자서 하는 최선(最善) 보다는 직원들과 함께 하는 차선(次善)이 보다 값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속한 조직도 천천히 코브라 이펙트를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지금 감히 기대해본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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