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속은 것일까?
1994학년도부터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학능력시험과 본고사가 도입되었다. 3년 후 본고사는 폐지되고 논술시험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필자 역시 논술시험을 준비했던 세대다. 그러나 아무도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조차 글쓰기 교육이 없었다. ‘신문사설을 많이 읽어라’, ‘책을 많이 읽어라’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실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으면 ‘공부 안 하고 논다’는 이유로 맞기도 했다.
왜 신문사설을 읽어야 하는지 물었다. 배경지식을 쌓고, 서론-본론-결론 프레임을 익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배경지식 없이는 성인도 이해가 어려운 것이 신문사설이다. 서론-본론-결론이 아니라 본론으로 시작하는 사설도 많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물었다. 어휘력을 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어휘력이 이유라면 고등학교 교과서 만으로도 충분했다. 만약 어휘력 때문이라면 차라리 어휘력을 높여주는 책을 읽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런 주제의 책은 왜 나오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수학의 정석 이후 최고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아빠에게 9살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을 한다.
“아빠, 책은 왜 읽어야 하는 거야?”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던데…
필자는 매주 아이를 데리고 서점을 간다. 어릴 때부터 의도적으로 아빠의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덕분인지 아이도 (요즘은 축구에 빠져 뛰어 노는 시간이 많지만) 책을 좋아한다. 아이를 둔 대부분 부모들이 같은 고민을 한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독서습관을 갖게 할지 말이다. 집에서 직접 아이에게 읽어주기도 하고, 독서 전문기관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도 할 것이다. 요즘은 IPTV 채널에도 TV 화면에서 선생님들이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어릴 적 부모님과 선생님은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다. 세종대왕,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모두 독서광이었다.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링컨 대통령도 독서광이었다. 그러나 독서광이었던 나도, 나보다 독서광이었던 고등학교 친구도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상관관계는 있어도 인과관계는 없다.
대한민국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0.8권이라는 통계가 있다. 일년에 한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서점에는 사람들이 많다. <트레바리>와 같이 독서모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리하면 읽는 사람은 열심히 읽고, 안 읽는 사람은 열심히 안 읽는 것이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답을 찾기 위해 서점에서, 독서모임에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그들의 대답은 단순했다. “책이 재미있어서요..”
우리가 책을 읽지 않는 이유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책을 찾아 자리로 돌아왔다. 머그잔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여자 후배가 물었다.
“매일 그렇게 책을 읽으면 다 머리에 들어와요?”
이해되지 않는다는 후배의 표정에서 그 동안 고민하던 답을 찾았다.
우리는 책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책에서 길(정보, 지식, 해답)을 찾으라는 말이 아니다. 책을 통해 고민해보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뭔가를 얻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래서 두렵다. 책을 읽고 난 후에 머리에 뭔가 지식 같은 것이 남지 않으면 두렵다. 교과서 행간에 사로잡혀 배우고 기억해야 했던 기억 때문에 책 열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반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즐긴다. 저자가 들려주는 소설 속 스토리를 즐긴다. 저자가 들려주는 에세이 속 생각과 경험을 즐긴다. 저자가 들려주는 실용서적의 트렌드와 정보를 즐긴다. 그들은 뭔가 남겨야 한다는 목적보다 그저 즐기고 있는 것이다.
아들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할 시간
그러나 어린 아들에게 즐기라는 답을 들려줄 수는 없었다. 아들이 공감할 수 있게 바꾸어야 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지만 아빠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일단 서점에 가서 어떤 주제의 책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지를 보면, 요즘은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단다. 그걸 트렌드라고 하지.
그리고 책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다녀올 수 있단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상상을 통해 전천당 과자가게에도 가볼 수 있고, 책 먹는 여우도 만날 수 있고, 1800년대로 가서 셜록 홈즈도 만날 수 있단다. 물론 TV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겠지. 그러나 네 상상 속에서는 TV가 주는 모습이 아니라 네가 글로 읽으며 직접 그린 너만 알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장면을 만들어 갈 수 있단다. 책은 그런 즐거움을 준단다. 바로 세상에 너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주는 거지.”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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