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면접 팬데믹
2000년대 중반, 많은 기업들이 유행처럼 채용과정에 <압박면접>을 도입했다. 구직자들에게 압박면접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유명 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스트레스에 강한 직원을 뽑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컨설팅 기업의 위상이 높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유행처럼 압박면접을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면접을 망쳐버린 돌+아이
2004년 가을, 나는 면접 대기장소에 앉아 있었다. 2차 임원면접이었다. 1차 면접에서 같은 조였던 친구들과 2차 면접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 네 명은 첫 만남부터 마음이 잘 맞았다. 1차 면접이 끝나고 술 한잔 하면서 더 친해졌다. 원래 면접 대기장소는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긴장감을 잊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떠들다가 채용담당자에게 지적을 받고서야 수다를 멈췄다.
2차 임원면접은 압박면접이었다. 1명씩 면접실로 들어가 10분 정도 면접하는 방식이었다. 면접 분위기기 궁금했다. 압박면접을 겪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업마다 압박 수위가 서로 달랐다. 면접관이 소리지르고 화내는 기업도 있었다. 압박면접을 버텨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누구는 담담했다. 누구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누구는 울상이었다.
친구 한 명이 제일 먼저 면접실로 들어갔다. 10분쯤 후 문을 열고 나왔다. 울상이었다. 우리 곁으로 오더니 갑자기 테이블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서러움이 느껴졌기에 그냥 손을 잡아 주며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거든. 그런데 10분 만에 내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인생이 되어 버렸어. 너무 억울해… 왜 내가 이런 평가를 받아야 하는지…”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들 중 내가 마지막으로 면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쳐보이는 면접관들과 이산화탄소 가득한 답답한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공격이 시작됐다. 지방 출신인 것이 잘못이었다. 재수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 학비를 벌며 대학을 다니느라 학점관리를 남들만큼 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해외연수 다녀오지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공격은 계속 되었다. 어느 순간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이 담담해졌다.
“자 이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세요.”
반격할 기회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일까?
“태어나서 이렇게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순간은 처음입니다. 지방 출신이고, 재수를 했고, 학점관리 못했고, 해외연수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모두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인생을 잘못 살아온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저도 면접관님들께 묻고 싶습니다. 이 면접이 끝나고 나중에 제가 이 회사 제품을 만났을 때 저는 어떤 생각이 들까요? 반가울까요? 또 묻고 싶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뽑은 직원들이 정말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던가요?
회사만 저희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 구직자들 역시 청춘을 바쳐 일 할 회사를 선택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면접실을 나왔다.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덤덤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온 나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면접…완전히 망쳤어”
조직을 망치는 압박면접
잘 짜여진 압박면접 방식은 원래 목적대로 임기응변과 자제력, 순발력, 상황대처능력 등을 평가하여 좋은 인재를 뽑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신공격만 가득한 압박면접은 조직을 망칠 가능성이 높은, 시한폭탄 같은 사람을 인재로 착각하여 조직에 들이게 될 것이다.
압박면접과 같은 지독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냉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상황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표정관리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능한 사람이거나,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조직의 성과에 기여할 수 있을까? 조직은 생물체와 같이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전체를 이루고 있다. 따로 떼어낼 수 있어 보이지만 떼어낼 수 없는 유기적인 존재가 바로 조직이다. 감정을 숨기는데 능한 사람이거나,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은 사람은, 서로 도와가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는 방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압박면접은 스트레스에 강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조직에서 동료들과 갈등을 유발하는 방해자를 골라주는 수단일지 모른다.
성공한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란, 혼자서 할 수 있는 최선(最善)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차선(次善)을 선택하는 사람이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5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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