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도전 이야기] 50대 엑스세대 아재의 일상도전 : 이커머스 기업 물류센터 알바

박준상 디렉터 승인 2022.12.27 20:37 | 최종 수정 2022.12.30 09:22 의견 0

결핍, 나의 새로운 동기

2022년 여름의 마지막 순간, 결핍을 동기 삼아 생각만 해보고 못해 본 일들에 대한 작은 도전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번째 도전은 2022년 현재 우리의 일상에 '편리'라는 키워드로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모 이커머스기업. 그 기업의 물류 알바 도전이다.

조금이나마 돈을 어렵지 않게 벌 수 있어야 한다는 도전의 전제조건을 만족시키면서, 항상 우물쭈물하는 필자를 쉽게 움직이게 한 것은 해당 기업의 마케팅이었고, 역시 알바를 구하는 것 하나까지 사람의 '편리 심리'를 잘 이용하는 회사인 것 같다.

필자는 손재주가 뛰어난 어머니의 능력을 가장 강력하게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뭔가를 조물조물 만들어 내는 일에 탁월했고, 사실 아직도 집안의 이런저런 것들을 고치고 손보는 것부터 향초, 제빵, 목공예 등 손으로 세심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제법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작한 첫 직장은 기업 기술연구소였는데 사실 필자는 공대를 간 것 부터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생각 했었고, 너무도 쉽게 첫 직장에 입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입에 퇴사라는 단어를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그 흥미 없던 연구개발 업무에서 그래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들은 플라스틱 시제품을 조립하고 부품을 갈아내고 붙이고 하는 단순하고 머리를 많이 쓸 필요가 없는 업무였던 것 같다.

각설하고, 필자는 서른 후반의 나이에 직원도 실무경험도 없이 패션 유통사업을 시작하면서 혼자서 수백장의 청바지를 정리하고 분류하고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까대기' '노가다'를 일상처럼 해왔고, 모든 직원들은 이것이 숙명이구나 받아들일 정도로 까대기 강도가 높았던 패션회사의 사장이었다.

작은 물류팀을 두기도 했고, 넘쳐나는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 3자물류를 사용하기도 했고, 사업이 어려워지면서는 100평 창고를 구해서 한 켠에 사무실과 회의실을 두고 물류관리를 병행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포장, 분류, 택배업무 등 모든 물류와 관련된 일을 정말 쉽게 봤었고 50대 초반의 여름을 보내면서 계획했던 알바 중 첫 시도는 이렇게 만만하게 봤던 물류였다

과거 내 매장과 물류창고의 알바를 채용하기 위해 자주 활용했던 **몬은 역시 구직자인 나에게는 몬스터였다. 앱 설치 후 3분 안에 해당기업 물류센터 채용공고들은 나의 검색리스트 첫 페이지에 익숙한 로고들과 함께 다양하게 노출이 되었다.

믿고 사용하는 이커머스기업 답게 채용 공고 페이지까지 아주 심플하고 쉽게 인포그램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잘못하면 주문 버튼을 누를 뻔했다.

출처: 픽사베이

누구나 쉽게 하는 물류알바.

일 최대 20만원 / 원하는 날 근무 / 익일 지급가능

누구나 쉽게 하는 ** 로지스틱스, 하지만 그 누구나가 나는 아닐 수도 있었다.

사실상 카톡으로 채용링크를 받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나이와 주소, 근무희망일 등 아주 간단한 기본정보를 입력하고 기다리면 끝.

역시 시스템이 편리하게 잘 되어 있군. 나에게 물류업무는 껌이니 우선 해보자!

결국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센터가 아닌 채용이 있는 시흥캠프로 첫 출근을 하게 된다.

저녁 6시 반부터 새벽 1시반까지 야간 근무를 고려해서 주 초부터 업무들을 조정해 놓았고, 부담 없이 당일 사무실에서 일찍 나와 집 앞에 도착하는 기업버스를 타고 첫 출근길을 떠났다.

40분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엄청난 규모의 물류캠프. 대기장소에 도착해 보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래저래 물어본 결과 첫 근무자에 대해서 간단한 안내와 함께 출퇴근 앱 설치, 그리고 바로 작업반장에게 인도가 된다.

처음부터 소분조 업무라 들었는데 나를 데리고 현장으로 간 반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 쳐다보고 결국 상하차 업무로 배정한 것 같다. (솔직히 무슨 조다 이런 설명은 없었고, 눈치로 알게 되었다)

창고 상품 관리와 물류 출고작업 까대기 모두 익숙한 나는 무슨 업무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솔직히 소분조에 배정된다 하더라도 중년 여성작업자 열댓 명 속에 50대 아재 한명으로 버틸 자신이 없기도 했다.

자 이제 컨베이어가 바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 앞에 도착한 팔레트들을 풀고 이 안에 있는 박스들과 비닐 포장된 제품들을 유형에 맞춰 컨테이너에 송장이 보이도록 계속 올려주면 된다. 참 쉽고 단순하다.

그런데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가 참 빠르기도 하다. 40분 정도 익숙해지니 속도가 좀 더 빨라진다.

나와 함께 상품을 올리고 있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담당자는 그냥 말이 없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기계처럼 상품을 올린다. 물한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 같고 무슨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군인처럼 일을 하고 있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한시간, 두시간… 생각해보니 처음 설명할 때 휴식시간이 딱 한 번 있다고 했었다. 한번… 맙소사... 허리가 뻣뻣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나의 손은 무의식 중에 더 빨리 적응하고 있다. 농땡이를 잘 피우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몸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결국 네 시간 정도의 작업시간 후 반장님이 휴식을 외치신다. 뭔가 작업 일정에 문제가 있어서 30분 휴식이란다...

문제는 휴식 후 3시간을 더 이렇게 일해야 한다는 사실. 잠시 컨베이어 벨트 옆에 주저앉아 버렸다. 사람이 무서운 것이,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더니 30분을 쉬고 음료수를 마시고 간식을 먹고 하니 또 그 다음 3시간은 조금 쉬워진다.

결국 이 페이스로 3시간을 더 일하고 티셔츠는 땀에 절었고 나의 심신을 휘몰아친 오늘의 노동은 마무리된다. 도망치듯 퇴근 버스에 올라타고 집 근처에 도착하니 노동으로 주린 배와 타는 갈증에 편의점을 지나칠 수가 없다.

결국, 7시간의 물류업무와 약 두시간의 출퇴근 시간, 편의점에서의 맥주와 컵라면까지 계산하니 오늘의 시급은 9000원이었고, 다음날 아침 평소와 같은 이른 시간에 사무실로 출근을 할 수 없었고 출근 후 업무 집중도는 정말 극악으로 낮아진 상태였다.

머리를 쓰는 일들이 진절머리 난다고 느꼈고, 큰 고민 없이 몸을 좀 쓰면서 효율적으로 부수입도 챙기자고 시작한 스마트하고 플렉스한 일자리...

이날 나는 50대가 되었음을 처절하게 깨 달았고, 스마트와 플렉스라는 트렌디한 단어에 우리는 낚였다고 결론을 내렸고,

언제든 마음 내키면 쉽게 하면 된다고 내 리스트에 올려 놓은 배송아르바이트 등등 모든 일련의 소일거리들에 대한 희망이 도미노처럼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사업을 하면서 나와 직원들에게 제공했던 물류 업무환경이 참 나쁘지 않았다고 자위했다. 사실은 그래서 망했구나 싶었다.

중년의 육체, 하룻밤의 노동 - 새로운 시선

별거 아닐 수 있는 하룻밤의 알바경험, 그 누구에겐 가는 지속적인 생업의 현장이라 평가하기 조심스럽지만 갓 50대 엑스세대 아재에게 많은 생각과 새로운 시선을 선사해 주었다.

덕분에 앞으로의 소일 계획에 방향을 다시 잡긴 했다

젊은 사람들이 지원하는 쉬워 보이는 일자리에 철없이 무턱대고 덤비지 말자.

그리고 생각보다 어떤 이유로든 지금 알바나 소일거리를 찾아보고 있는 당신이 책상위에서 머리를 써서 쿠팡 알바정도의 수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좀 있을 것 같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더 늦기 전에 지금 최선을 다해 머리를 써보고, 주위 선후배 지인들과 이야기할 시간도 가져라. 머리를 잘 쓸 여력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이니 오늘 바로 시작해라.

밝은 시선

항상 원할 때 단기로 9만원 정도를 벌 수 있는 일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단 나이가 20~30대라면. 40대라도 오래 서있을 체력과 허리가 튼튼할 경우에 한해서.

지원부터 출퇴근, 급여 지급까지 최소한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으니 알바비 못 받을 걱정은 붙들어 매도된다.

자신의 쓰임새에 대한 심리적 안도감과 도전했다는 자신감. 성취에 대한 최소의 효능감, 그리고 어쨌건 수입.

휴게실 자판기의 음료수 가격이 100원이다.

어두운 시선

정말 높은 노동의 강도. 적어도 50대 아재에게 상하차 업무는 소중한 노동의 대가이지만, 그 대가로 받게 되는 돈이 얼마 되지 않는다. 다음날 다른 업무 컨디션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래도 쇼핑 앱으로써 초기부터 장기간 꾸준한 쇼핑과 월회원결제까지 응원해주고 칭찬해줬는데 자꾸 그들의 돈벌이에 현혹된 것 같은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고객이자 단기 알바 직원 입장 모두에서

누군가에게 작지만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한다면?

50대 이상의 아재들은 가능하다면 몸을 쓰는 새로운 기술과 노동에 희망을 걸지 않는 편을 추천합니다.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시간 기업에서 직장인으로 근무 했었고 열심히 고민하고 살아온 당신이라면, 당신의 오랜 기술들과 연계해서 부수입을 만들 수 있을 만한 2022년의 일거리를 서치해 보세요.

주위 지인들 과도 함께 고민해 보고 상의해 보세요. 어쩌면 당신의 아이들이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어요. 물류센터 상하차 알바는 꼭 필요하시다면 경험삼아 한번은 해 보세요.

저요? 저는 앞으로 어쩔 수 없이 단돈 9만원이 필요한 어떤 결핍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또 한 번 쉽게 할 수 있겠지만, 그 때는 현장에서 일이 서툴고, 손재주가 별로 없는 좀 짜증나는 50대 아재로 코스프레 할 예정입니다.

글 ㅣ 박준상 디렉터

[필자소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고, 기업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패션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 채 경영학 학사와 패션관련 공부, 그리고 온라인쇼핑몰 투잡까지 해가면서 결국 유럽 패션브랜드 총판사업을 15년 넘게 해오면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다시 재기를 노리며 끊임없이 브랜드와 관련된 프로젝트와 사업을 벌려보고 있습니다.

학력: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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