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순간] 준비된 이직

박지순 발행인 승인 2019.03.10 00:00 | 최종 수정 2138.07.02 00:00 의견 0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주변의 누군가 이직을 했다는 소문을 들으면, "뭔가 직장에서 문제가 생겼구나"하고 쉽게 추측한다.

예를 들면, 상사와의 불화, 업무 과다, 낮은 연봉 및 미흡한 복지 등의 문제가 있겠거니하게 마련이다. 필자가 구직자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이력서의 이직 사유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긍정적인 문구로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솔직한 속내를 들어보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 중에 한두 가지 이상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이렇듯 이직사유는 현 직장에서의 탈출에 무게감이 실리는 것이 현실이다.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쓰는 심정은 이직을 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조금만 더 참으면 힘든 상황이 끝나리라는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 생각이 오락가락하다가 결국엔 사직서를 제출한다.

#공 대리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서로의 연봉을 공개하게 되었다. 본인의 경력에 비해 매우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직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던 선배들의 조언이 머리를 스쳐가고, 생각보다 적은 금액의 인센티브로 회사가 원망스럽다.

공 대리는 고민 끝에 친한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얘기를 듣다가 협력사에서 공 대리 정도의 경력자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주었다. 추천받은 기업의 사업규모는 현재 직장과 유사하지만 업계 평균보다 높은 연봉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했고 1 차 면접이 잡혔다. 개인 사정이라고 팀장에게 보고하고 휴가를 냈다. 면접 대기장소에 앞에 선 공 대리는 현 직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더욱 긴장이 됐다. 먼저 도착한 경력자들이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이내 면접이 시작됐다.

1 차 면접을 무사통과한 공 대리는 최종 면접을 위해 휴가를 또 냈다. 팀장이 어디에 면접이라도 가냐고 농담 삼아 건넨 말에 가슴이 뜨끔하다. 태연하게 웃으면 손사래를 쳤지만 왠지 들킨 느낌이다.

최종 합격 메일이 도착했고 공 대리는 하늘을 날듯이 기뻤다. 잠시 후 지원 기업의 인사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현 직장의 연봉과 관련한 자료를 제출하고 희망연봉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기쁨이 체 가시기도 전에 고민의 시간이 왔다. 현재 연봉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얘기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인상된 합리적인 수준으로 제시를 할 것인가?

공 대리는 선택했다. '만약 합리적인 수준이면 이직하려는 직장의 평균 연봉보다 낮을 것이다. 기왕 이직을 하는 김에, 좀 무리일 지 몰라도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자.'

보통 경력자들은 첫 이직 시 연봉에 대한 기대치가 크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원자의 최근 연봉을 기준으로 합리적인 오퍼를 준다. 어느 소비재 기업의 회장은 "지원자의 본실력을 모르는데 무슨 근거로 파격적인 연봉을 주어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기다리던 메일이 왔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은 개인 메일이라 비번 입력에 애를 먹던 공 대리는 오퍼를 확인하곤 실망감에 빠졌다. '내가 이 정도 연봉을 받으려고 이 고생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본인을 알아주지 않는 지원 회사가 싫어지고 자존심이 상한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공 대리는 아침 일찍부터 팀장에게 불려 갔다. 육감적으로 불길한 예감이 든다. 팀장은 심각한 얼굴로 공 대리에게 물었다. "공 대리 면접 봤다며?"

팀장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공 대리와 친한 몇몇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 상황에서 거짓말을 해서는 본전도 못 건지리란 생각에 솔직하게 모두 털어놓았다.

이직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것은 월급쟁이의 권리이다. 팀장 혹은 임원들도 이직을 고민하고 면접을 본다. 공개적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것은 때로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스스로에게 당당해야 한다. 현재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누구나 때가 오면 퇴사한다.   

팀장은 공 대리에게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공 대리, 우리 회사가 그쪽 기업보다 연봉이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장점들도 많이 있어. 우리같은 직장인들이 연봉을 조금 높여서 이직하는 건 가능해. 하지만 원하는 연봉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야. 그러려면 그쪽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야 해. 그때까지 여기서 실력을 키워보면 어떨까? 아마 거기보다 더 좋은 직장으로 스카우트될 걸. 공 대리, 어떻게 결정할 건가?"

단순히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 답답한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등 '탈출'이 이직사유라면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다. 이직이 잦은 경력자들을 기업에서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있다.

준비된 이직은 업계에서 본인을 알아주는 순간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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