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환경 오염과 블랙홀, 미지의 행성을 소재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연출해내며 SF 영화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이지만 인류의 생존을 짊어진 아버지와 딸의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 3시간에 걸친 상영시간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단어가 있다. “Stay”
다시 볼 수 없을 딸 머피와 미래를 알지 못하고 딸을 떠날 준비를 결심중인 과거의 자신을 블랙홀 속에서 마주한 쿠퍼는 회한을 담은 “Stay”란 단어를 딸에게 전달하고, 수십 년 후 이미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어버린 딸은 자신의 방 책장너머에 우주 속 아버지가 존재함을 인지하고, 그들은 전 인류를 구원하게 된다.
우리 역시 영화 속 쿠퍼처럼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내렸던 성급한 결정들로 인해 자신의 인생의 항로가 180도 바뀌었음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고 후회한다. 특히 직장 퇴사와 취업 선택 관련한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인기 웹툰 미생의 “회사 안은 전쟁터이지만...맞아, 밖은 지옥이었어‘라는 명대사를 정작 나에게 닥치기 전에는 우리는 남의 일로 생각하고 흘려듣기가 다반사이다.
채용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2020년 한국경제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수립한 대기업 비중은 25.8%로, 이마저도 채용규모가 작년보다 감소하거나 비슷한 기업이 대부분(77.4%)이었다. 2019년 대비 채용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22.6%에 불과했다.
대기업들의 채용에 소극적인 이유는 코로나19의 장기화가 결정적으로 보인다. 대기업 10개사 중 7개사(69.8%)는 대졸 신규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이유로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국내외 경제 및 업종 경기 악화'를 지적했다. 이어 ▲유휴인력 증가, TO 부재 등 회사 내부수요 부족(7.5%)을 꼽았으며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5.7%) ▲정규직 인력 구조조정의 어려움(5.7%)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확보의 어려움(5.7%)을 이유로 들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상 최악의 취업난 속에서도 신입사원들이 입사 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조기 퇴사하는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인크루트와 알바콜이 직장인 1831명을 대상으로 첫 직장 재직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직장인의 87.6%가 첫 직장을 퇴사했으며, 퇴사 시기는 ‘1년 미만’ 근무자 비율이 30.6%로 가장 높게 조사됐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는데 최근 1년 동안 신입사원을 채용한 기업 416개사를 대상으로 ‘입사 1년 미만 신입사원 중 퇴사자 발생 여부’를 조사한 결과 74.8%가 ‘있다’고 조사되었다. 전체 입사자 대비 조기퇴사자 비율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31.4%로 집계되었으며, 조기퇴사자들은 입사 후 평균 4.6개월을 근무하고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중 3명이 바늘구멍보다 뚫기 힘들다는 취업 전쟁에서 승리해 보무도 당당하게 입사한 직장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있는 것이다.
조기퇴사자들이 회사에 복수로 밝힌 퇴사 이유는 ‘적성과 안 맞는 직무(59.2%)’가 가장 많았다. 그 외 이유로는 ‘대인관계 등 조직 부적응’(26.4%), ‘낮은 연봉’(23.8%), ‘담당 업무 불만족’(23.2%), ‘타사 합격’(15.8%), ‘높은 업무 강도’(13.2%), ‘적응 힘든 조직 문화’(12.2%) 등 순으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기성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 십상이다. 풍족하게 태어나고 자란 탓에 근성이 부족하다고 혀를 차기도 하고, 기성세대가 겪은 ‘조직의 뜨거운 맛’과 ‘냉혹한 시대의 터널’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젊은 세대의 나약함을 비웃는 이들도 있으며, 한 보수 언론에서는 한 칼럼을 통해 이 모든 원인을 젊은 층에 쏟아지는 과도한 복지 정책을 원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신입사원들의 조기 퇴직이 젊은 세대의 유약함에서 비롯된 것일까?
2021년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세대는 90년대 생들이 대부분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90년생이 온다’에서 저자 임홍택은 90년대 생을 간단, 재미, 정직의 3가지 키워드로 규정하면서, ▶짤모티콘(짤방과 이모티콘의 합성)의 사용 ▶참을 필요가 없는 세대 ▶삶의 목적보다 삶의 유희를 더 중요시 ▶오늘의 행복 추구 ▶신뢰의 시스템화 등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고 있다.
장황하게 돌려 말하는 것보다는 간단명료하면서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고, 미래를 위한 고통 감내 보다는 오늘의 즐거움을 중시하고, 공정성의 가치를 그 어떤 세대보다 우선시하는 90년대 생들은 이전 세대보다 부유하지 못한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미래의 성장을 약속하지 못한다. 아니, 최악의 취업난을 통과해 어렵게 입사한다 해도, 이후 허리띠를 아무리 졸라매며 검소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루에 다르게 치솟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내 집 마련은커녕 퇴근 후 편히 쉴 방 한 칸 마련이 막막한 현실이다.
90년대 생들은 IMF 외환위기(1998년)와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를 겪는 앞 세대를 보면서 회사에 충성하거나 아무리 조직에 충성하고 노력해도 상황에 따라 헌신짝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걸 먼저 학습한 세대이기도 하다.
대학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열심히 살아가기만 한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은행 잔고가 늘어날 것이고, 때가 되면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단란한 행복을 만들어 갈 것이며 언젠가는 남들처럼 버젓한 집 한 칸은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50대 이상의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인생 경로는 IMF 외환위기 이전에나 가능했던 특혜라 할 수 있다. 기성세대들의 인생 계획에 있어 회사의 성공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기성세대들에게 회사 또는 조직의 성공은 목적이 될 수 있었다.
90년대 생들에 회사와 직장의 개념은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더 이상 이 사회는 평생직장을 보장하지 않으며, 젊은 세대들 역시 애당초 이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많은 20대들과 취업 준비생들의 공감을 얻어낸 책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에서 저자 하완은 좋아하지 않는 노를 억지로 젓는 것은 무의미 한 행동이며,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열심히 살아봤자 결과가 달라질 건 없으니 차라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그때 닥쳐서 엄청 후회하면 된다고 쿨한 답변을 내놓으며 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왜 계속 달리느냐며 멈추는 게 우선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그럴싸한 얘기이다. 특히 앞서 얘기한 90년대 생들의 성향을 생각해 보건데 그들에게 이 제안만큼 솔깃한 내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우왕좌왕하면서 지나가 버린 커리어 출발의 가장 유리한 시간에 대해서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철새처럼 이 회사 저 회사 옮겨 다니며 망가져가는 커리어패스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앞서 언급했듯 시대가 달라진 만큼 자신의 적성과도 맞지 않고, 미래도 보이지 않는 직장에서 기계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직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음을 항상 명심해야 하며, 경솔한 선택으로 인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제발 그때 “Stay”라고 후회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조기 퇴직을 고민하거나 입사할 회사 직무가 적성에는 맞지 않지만 좋은 조건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성급한 결정을 하기 전에 다음의 몇 가지는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1. 회사는 적성을 찾는 곳이 아니다
회사에 입사해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불만을 갖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시대가 바뀌어 회사가 직원의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 만큼 구직자도 절대로 어떤 회사를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오히려 회사가 아닌 직업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것인지 단기로는 3년, 중기로는 10년, 장기로는 평생에 걸친 커리어패스를 준비해야 한다.
월급이 많고 적고, 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좋고 나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며, 난 어떤 30대, 40대, 50대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막연하더라도 항상 고민하며 살아가야 한다. 정작 많은 회사들이 채용 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스펙 쌓기와 본인의 적성과는 무관하게 이력서 한 줄을 위한 형식적 인턴 경험으로 소중한 대학 4년과 졸업 후 1~2년을 낭비할 시간에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직업이 무엇인가 성찰하고, 학습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하자.
2. 나이든 신입사원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은 대졸 신입 사원 채용에서 남성은 28세, 여성은 26세를 상한선으로 보고 있다. 최근 어학연수와 인턴 등으로 취업 시기가 늦어지는 것을 감안해 일부 기업들이 나이 제한을 완화하고 있다지만 대부분의 기업들 사이에서 여전히 남성은 32세, 여성은 30세가 넘으면 채용이 안 되는 마지노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이 나이든 신입 사원을 좋아하지 않는 핵심 이유는 조직 적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연공서열의 문화가 아직도 잔재하는 대한민국 기업에서 직장인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아무리 업무 경력이 많고 성과를 잘 내도 나이 어린 사람이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마찬가지로 상사들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 직원과 일하는 것을 거북해한다.
아무리 자신을 깍듯이 대해도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업무 결과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것이 불편하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같은 값이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직원이 와주길 기대한다.
신규 채용 적정 연령의 시간은 고작 1~2년에 지나지 않는다. 운좋게 대학 졸업 후 바로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면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다시 찾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지만, 상당수의 경우 새롭게 졸업 후 취업시장에 뛰어든 후배들에 밀려 신입도 경력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로 몰리기 십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학입시도 재수나 삼수가 훨씬 악조건 속에서 경쟁해야 하지만, 취업시장은 아예 경쟁을 못할 수도 있다.
3. 조기 퇴사는 커리어패스에 빨간 줄을 긋는 것이다
조기 퇴사는 본인의 경력 관리에 치명적이다. 회사에 지원하는 이력서에 짧은 기간 일한 전 직장의 경력을 3~4개씩 자랑스럽게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이력서는 채용 담당자가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이력서가 된다. 한 가지 일을 차분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성향이 아니라 싫증을 잘 내는 사람을 선호할 회사는 없기 때문이다. 짧은 기간의 경력은 깊이가 없는 수박 겉핥기 식의 경험이기 때문에 아예 없는 것만 못하다.
이직할 때 이력서에 경력이 한 줄이라도 더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진정한 경력으로 인정받으려면 한 직장에서 최소 3년 정도는 한 가지 직무로 일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참아내고 인내해서 동일 직무 경험을 더 많이 쌓을수록, 더 높은 직급을 경험한 사람일수록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도, 새로운 직장의 조건도 유리하게 협상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4. 꼰대와 쓰레기 같은 동료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개인 사정은 들을 생각도 안하고 끊임 없이 야근을 강요하는 팀장, 자신의 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툭하면 업무 떠넘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나 몰라라 내빼버리는 선배사원에 치여 퇴직의 유혹을 받고 있다면 이거 하나만 생각하자. 저런 쓰레기와 꼰대는 어느 회사, 어느 조직을 가나 항상 존재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나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멋진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후 하이파이브를 건넬 수 있는 멋진 상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저들이 아니라 언제나 본인 자신이다. 복수하고 싶다면 인내하고 인내해서 나의 커리어를 쌓은 후 저들보다 직장 내에서 더 높은 위치에 도달하거나, 내 커리어를 바탕으로 더 좋은 조건을 보장하는 괜찮은 회사로 이직을 함으로써 보여주면 된다.
제발 쓰레기 같은 주변 인물들 때문에 떠밀려 직장을 떠남으로써 내 인생을 망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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