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모든 인간의 감정 및 인지 활동을 관장하는 대뇌, 운동을 관장하는 소뇌, 생존에 필요한 기능을 하는 뇌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뇌는 전체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하는데, 이 중 전두엽은 계획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하고 논리적 사고를 하는 이성을 주관하는 부위이다. 측두엽에 있는 변연계는 식욕, 성욕 등 감정과 욕망의 분출구이다. 전두엽은 뒤쪽 뇌와 변연계에서 들끓는 감각, 욕구들을 파악해 판단한 뒤 적절한 명령을 내린다. 전두엽이 손상된 치매환자들이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 이 때문이며, 사이코패스도 전두엽의 이상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보훔 루르 대학의 연구팀은 2018년 8월 심리과학 저널에 264명 여성의 뇌 MRI 분석을 통해 ‘미루는 습관’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분석 결과 미루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변연계 내의 편도체(amygdala) 크기가 큰 경향을 보였고, 일반인보다 불안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배측 전대상피질의 반응이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은 방해가 있거나 불안해지면 이를 조절하는 힘이 부족하며, 이는 편도체와 배측 전대상피질의 연결 능력이 다른 일반인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오랫동안 미루는 습관에 대해 연구한 캐나다 칼턴 대학의 티머시 비킬 교수는 “해당 실험은 미루는 행동이 감정 조절과 관련이 있다는 심리학적 증거다"라고 언급하였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준 뇌 관련 실험이 있다.
2007년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새뮤얼 맥클루어 교수팀은 실험참가자들에게 5달러에서 40달러 사이의 다양한 금전적 보상을 지급 시기를 달리하면서(지금 당장, 1개월 후, 1년 후처럼) 해주겠다고 제안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이 때 실험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성 MRI로 스캔한 결과, 다음과 같은 뇌 활동을 발견했다.
지금 당장처럼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질 때 감정을 다스리는 대뇌 변연계가 활성화되는 반면, 돈의 지불이 미래로 지연될 경우에는 이성적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피질 부위가 활성화된 것이다.
두 실험 결과를 통해 우리는 ‘미루는 습관’ = ‘현재의 즉각적 보상’의 뇌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미루기’라는 행동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버리고 당장의 현실을 선택한 미래 할인(future discount) 효과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미래 할인 효과의 기원은 원시수렵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렵과 채집을 하던 원시시대에는 지금 당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이 곧 생존의 열쇠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무리 많은 식량이 한 달 혹은 일 년 후에 주어진들 지금 먹지 못한다면 생존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현재보다 미래가치를 할인하려는 미래할인효과는 곧바로 손실회피성향(loss aversion)으로 나타나는데, 손실회피성향이란 동일한 크기의 기대손익일지라도 이익에 따른 기쁨보다 손실에 따른 괴로움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심리이다.
행동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을 소개하면서 의사결정자의 대부분의 선택 상황에서 현재를 미래보다 더 가치 있게 평가하고 있어 미래의 가치를 선택하려면 현재보다 확연히 높은 가치가 보장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미래 가치가 할인되지 않는 예외적 상황에 대해서는 카네기멜론대학의 행동경제학자 조지 뢰벤슈타인의 ‘좋아하는 영화배우와의 키스’, ‘한순간이지만 불쾌한 전기쇼크’라는 주제로 할인율을 측정한 연구가 있다. 영화배우와의 키스는 지금 당장이 아닌 3일 후에 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 반면 전기 쇼크는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가치가 높다고 측정되었다. 기분 좋은 일은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고, 공포감은 최대한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보여주며, 현재 가치보다 미래 가치가 마이너스 할인, 즉 역으로 상승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여러 연구를 통해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사실은 미루는 습관은 ‘내가 서둘러 일을 마치나 뒤로 미루나 마감 전까지 끝내면 그만 아닌가? 어차피 할 고생인데 서두를 필요가 있나?’ 하는 현재의 편안함과 도피를 강조하는 감정의 속삭임에 일을 온전히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미래에 겪게 될 수많은 난관을 걱정하며 서둘러 일을 마칠 것을 종용하는 이성적인 마음의 소리가 패배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루기’란 뇌 속에서 벌어진 현재의 가치와 미래의 가치간의 전쟁에서 미래 가치가 더 낮게 평가되어 패배하는 것이다. 미래 가치의 패배가 일상화 되어간다면 ‘미루기’는 ‘미루는 습관’이 된다.
연세휴클리닉의 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노규식 박사는 "미루기'를 감정 중추(변연계)가 이성의 뇌(전두엽)를 이겨서 생기는 일시적인 충동조절장애로 볼 수 있다."며 "내일로 미루면 더 잘 할 것 같고, 내일부터는 열심히 할 거라 생각하면 그 순간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노는데 대한 죄책감과 부담감, 실패감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결국 ‘미루는 습관’을 해결하기 위한 열쇠는 어떻게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당장의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현재 가치보다 즉시 일을 마무리함으로써 얻게 되는 미래 가치가 더 큰 가치를 얻게 할 것인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여기서 일을 미룸으로써 발생하는 현재 가치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신속히 일을 마무리할 때 얻게 되는 미래 가치는 접근 방식에 따라 더 작아지거나 혹은 더 커질 수 있기에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다음에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미루는 습관’을 없애기 위한 다양한 행동 전략해 대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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