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에게 #1
J군은 전국 고등학생 퀴즈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의 목표는 S대학교 입학. 그러나 수능 며칠 전 갑자기 찾아온 몸살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 다행히 Y대 공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1학기가 끝나자 다시 수능을 준비했다. 그러나 두 번째 수능은 역대 최악의 난이도 실패로 문제가 되었던 시험이었다. J군은 다시 Y대로 돌아왔다. 달라진 것은 있었다. 이번에는 공과대학 신입생이 아니라 사회대학 신입생이었다.
그때 J군과 처음 캠퍼스에서 만났다.
J군은 대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다. 대부분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나르시시즘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런데 J군은 달랐다. 분명 우리들보다 똑똑한데 가끔 바보같다고 느낄 만큼 착하고 순박했다.
1학기가 끝나갈 무렵 J군이 말했다.
“나 마지막으로 수능시험 한 번만 더 도전해 보려고 해.”
다음 해 봄날, 그는 Y대 캠퍼스로 돌아왔다. 이유를 물어보지 않았다. 가장 속상한 사람은 J군 본인일 테니까…
한 명씩 군대를 가기 시작했다. J군에게도 입영통지서가 도착했다. 훈련소 위치는 강원도. 그곳에서 훈련을 받으면 강원도 최전방으로 배치된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J군은 어떤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후방에 있는 부대로 배치된다고 했다. 똑똑한 J군에게 어려운 자격증이 아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격증을 취득했는데도 이듬해 강원도 훈련소로 오라는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몇 년 후 예비역이 된 우리들은 캠퍼스에서 다시 만났다. 어느 날 J군이 회계사 시험을 함께 준비하자고 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하지만 시험을 보지 않더라도 공부해두면 좋을 것 같았다. J군은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나는 수업시간 내내 딴생각만 하다가 1주일 후 학원비를 환불받았다.
1년 후 나는 취업을 했다. J군은 사법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시 1년 후 다시 만났을 때 J군은 사법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취업을 준비한다고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너무 긴 도전이 두려웠을 것이다. 취업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후 J군은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했다.
5년 후 J군은 그 동안 모은 돈으로 MBA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J군은 월급쟁이가 아닌 멋진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2년 후 J군은 미국 명문대 MBA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대기업 월급쟁이가 되어 열심히 살고 있다.
J에게 #2
그때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J군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과 싸울 용기가 없어 보였다. 언제까지 꿈만 쫓을 것인지 걱정되기도 했다. J군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안줏거리가 되기도 했다. S대학교 도전, 후방부대 배치 도전, 회계사 도전, 변호사 도전, MBA 도전 등 도전으로 온통 얼룩진 그의 인생을 장난처럼 이야기 하곤 했다.
그래도 J군은 절대 화를 내거나 싸움을 거는 일도 없었다. 분명 속이 상했을 텐데도 함께 떠들고 웃었다.
어느덧 40대가 된 우리는 여전히 J군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더 이상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J군은 생각없이 도전만 했던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인생을 멀리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한 진정한 협객이었다. 오히려 중간고사, 기말고사, 레포트, 학점 등 눈 앞에 인생만 고민하던 우리가 부끄러운 존재들이었다.
왜 그때는 그게 보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J군 만큼만 똑똑했어도 그 길을 함께 걸었을 텐데. 그럼 지금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J에게 #3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심리학과 닐 로스 교수에 따르면 후회는 「한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Action)」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Regret of Inaction)」로 구분된다고 한다. 그리고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한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그 행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만약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결과를 놓친 것이 아까워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J군은 진정한 위너(Winner)였던 것이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6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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