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감정 빠진 막장 드라마 그리고 네카라쿠배당토

정천 전문위원 승인 2022.03.19 17:07 의견 0

(사진 출처 : SBS)

감동적인 이야기

그룹 회장이 비서실장을 호출하였다.

(회장) “오랫동안 눈여겨본 직원이 하나 있네. 마케팅팀 조병주(가명) 부장이네. 조병주 부장에 대한 평판, 인사고과는 어떤가?”

(실장) “말씀하신 조병주 부장 인사기록 카드입니다. 지방 출신이지만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성실하고 애사심도 높으며, 인사고과와 평판 모두 좋습니다”

(회장) “조병주 부장을 다음 주 본사에서 가장 먼 통영지점으로 발령 내도록 하게”

(실장) “회장님, 이렇게 유능한 직원을 갑자기 왜…”

(회장) “시키는 대로 하게”

1년 후 어느 날 회장이 비서실장을 호출하였다.

(회장) “통영지점으로 간 조병주 부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실장)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통영지점 직원들 평가도 좋다고 합니다”

(회장) “다음 주 조병주 부장을 이사로 승진시키고 기획실장으로 발령 내도록 하게”

1주 후 회장이 조병주 기획실장을 호출하였다.

(회장) “조병주 이사, 그 동안 고생이 많았네. 내가 자네를 통영지점으로 보낸 것은 자네 능력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네. 이제 내 곁에서 자네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게”

감정없는 이야기

스토리텔링 대가 로버트 맥키는 저서 <스토리노믹스 (2020, 민음인)>에서 스토리를 ‘인물의 삶에 유의미한 변화를 야기하는 갈등 중심 사건들의 역동적 사건’으로 정의하였다. 조병주 부장의 이야기는 로버트 맥키가 이 책에서 설명하는 여덟 가지 필수 요소로 잘 구성되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병주 부장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도, 행복한 결말도 아니다. 인사결정권을 가진 회장 입장에서 본다면 훌륭한 인재를 시험해본 후 발탁한다는 스토리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조병주 부장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밀실인사로 주변정리도, 제대로 된 인수인계 할 시간도 없이 약 450㎞ 떨어진 통영으로 갑자기 가야만 했다. 통영에 있는 1년 동안 그는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에너지로 적응해야만 했을 것이다. 가끔은 외로움과 억울함에 술을 마시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기약 없는 생활 속에서 겨우 적응하고 있을 때쯤, 비서실의 연락을 받은 조병주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사로 승진도 하고, 기획실장 자리를 얻었으니 회장님께 감사하며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며 회장님께 충성을 다했을까?

네카라쿠배당토

일본어처럼 들리는 이 말 네카라쿠배당토는 젊은 세대 취업선호도가 높은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 민족, 당근마켓, 토스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이 회사들이 얼마나 좋길래 신조어까지 생긴 것일까? 필자는 이 회사들에 근무하는 지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예전 젊은 세대들이 대기업을 선호했던 이유는 높은 연봉과 그 회사를 다닌다는 자부심 때문이었다. 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네카라쿠배당토를 선호하는 이유는 다양한 복지혜택, 수평적인 조직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기 결정권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조직의 부품처럼 살아가다가 나이 들어 은퇴하는 기성세대와 다르게, 젊은 세대는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자기의지로 통제하고 또 성장하고 싶어 한다. 이것이 중고등학생들까지 네카라쿠배당토를 선호하는 이유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기성세대와 다르게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했던 것은,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X세대, Y세대도 그렇지 않았던가?)

조병주 이사의 선택은?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조병주 부장의 애사심은 통영에 있던 1년 동안 사라졌다. 그리고 조병주 부장은 근로기준법을 무시한 근로조건 변경과 인사발령을 내린 회사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았다. 1년 후 기획실장 이사로 돌아온 그는 열심히 일하며 업계에 이름을 알린 후 결정적인 순간에 경쟁사로 이직한다. 결국 회장은 직원의 의사와 결정권을 무시한 경영자가 된다. 동시에 훌륭한 인재를 경쟁사에 빼앗긴 것이다.

이제는 이런 드라마가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대표이사, 오너만 선택권을 갖지 않는다. 직원들 역시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바칠 회사를 고르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6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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