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경제 시대, 일상을 바꾼 패러다임 전환

아침에 눈을 뜨면 유튜브 뮤직으로 추천되는 음악을 듣고, 유튜브로 뉴스를 확인하며, 쿠팡으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한다. 점심시간에는 배달의민족이나 쿠팡이츠로 식사를 해결하고, 퇴근길에는 카카오T로 택시나 전동킥보드를 이용한다. 주말에는 넷플릭스나 티빙으로 영화를 보고, 교보문고 sam으로 전자책을 읽는다.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영역이 이미 구독 및 이용 서비스로 채워져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편의성 때문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가치관 자체가 변했기 때문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유'보다 '경험'을, '축적'보다 '접근'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높은 초기 비용을 지불해 제품을 소유하기보다는, 필요할 때 적절한 비용으로 이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경제적 합리성과 환경 의식이 결합된 새로운 소비 패턴이다.

이제 이 변화의 물결이 제조업과 B2B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순환경제 시장이 연평균 13.1% 성장하고 있으며, 디지털 순환경제는 24.4%의 놀라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조업 경영진의 70% 이상이 순환경제 솔루션이 2027년까지 매출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Product-as-a-Service(PaaS) 모델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이다. 제품을 일회성으로 판매하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이 제공하는 기능이나 결과를 지속적인 서비스로 제공하는 혁신적 접근법이다. 고객들은 더 이상 제품 자체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제품이 제공하는 '결과'와 '경험'이다. 이러한 인식 전환이야말로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의 출발점이다.

필립스 조명 사례로 본 서비스화 성공 공식

네덜란드 필립스의 'Light as a Service' 모델은 제조업의 서비스화가 어떻게 혁신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필립스는 조명 기기를 판매하는 대신 '조명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은 조명 제품을 구매하지 않고, 필요한 조도와 품질의 빛을 서비스로 제공받는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과의 15년 장기 계약이 대표적이다. 필립스는 공항 전체의 조명 설치부터 유지보수, 에너지 관리, 성능 최적화까지 모든 것을 책임진다. 공항은 조명 인프라에 대한 초기 투자 부담을 덜고, 예측 가능한 운영비로 최적화된 조명 환경을 확보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공항은 에너지 비용을 30% 절감했고, 필립스는 기존 일회성 판매 대비 20% 높은 수익성을 달성했다.

이 모델의 경영학적 핵심은 인센티브 구조의 재정렬에 있다. 전통적 제조업에서는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할수록 수익이 늘어난다. 따라서 제품 수명이 짧을수록, 고장이 자주 날수록 오히려 매출에 도움이 된다는 역설이 존재했다. 하지만 서비스 모델에서는 정반대다. 제품이 오래 사용될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을수록, 고장이 적을수록 서비스 제공업체의 수익성이 향상된다.

필립스는 이런 인센티브 구조 변화를 통해 혁신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R&D 투자의 초점이 '더 많이 팔 수 있는 제품'에서 '더 오래,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전환되었다. LED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 IoT 센서를 통한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AI 기반 예측 유지보수 알고리즘 개발 등이 그 결과다.

또한 고객 관계의 질적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일회성 거래에서 장기 파트너십으로 관계가 진화하면서, 필립스는 고객의 비즈니스를 깊이 이해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스키폴 공항의 경우, 승객 동선 분석을 통한 조명 최적화, 계절별 일조량 변화에 따른 자동 조절 시스템, 특별 이벤트 시 맞춤형 조명 연출 등이 가능해졌다. 단순한 조명 제품으로는 절대 제공할 수 없는 통합적 가치다.

재무 구조의 혁신도 간과할 수 없다. 전통적 제조업의 경우 제품 판매 후 수익 인식이 완료되지만, 서비스 모델에서는 계약 기간 동안 지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수익 흐름이 발생한다. 기업의 밸류에이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구독 기반 수익 모델은 투자자들로부터 더 높은 기업가치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서비스화 전환과 성공 요인

국내에서도 이러한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LG전자의 '케어십'은 가전제품의 서비스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대표 사례다. 고객은 월 구독료를 내고 최신 가전제품을 사용하며, LG전자는 제품 수명 연장과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존 일회성 판매보다 높은 총 수익을 창출한다.

케어십의 성공 요인을 경영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몇 가지 핵심이 드러난다. 첫째, 고객 세그멘테이션의 정교화다. LG전자는 전통적인 인구통계학적 세분화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기반 세분화'를 도입했다. 자주 이사하는 신혼부부, 최신 기술에 관심 많은 1인 가구, 환경을 중시하는 친환경 소비자 등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각기 다른 서비스 패키지를 제공한다.

둘째, 옴니채널 서비스 체계 구축이다. 단순히 제품을 렌탈해주는 것이 아니라, 설치부터 사용법 교육, 정기 점검, 고장 수리, 업그레이드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통합된 경험으로 설계했다. 고객은 앱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관리할 수 있으며, 콜센터, 서비스 기사, 온라인 플랫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셋째, 데이터 기반 개인화 서비스다. IoT가 내장된 가전제품을 통해 수집되는 사용 패턴 데이터를 분석해, 개별 고객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 사용 빈도와 패턴을 분석해 최적의 세제 배송 주기를 제안하거나, 에어컨 사용량을 바탕으로 에너지 절약 팁을 제공하는 식이다.

<ChatGPT 생성이미지>

지속가능경영의 새로운 해답, 소유에서 이용으로

글로벌 제조업 리더들의 97%가 순환경제 솔루션을 지속가능성뿐만 아니라 수익성과 경쟁우위 확보를 위해 도입한다고 답했다. 서비스화가 더 이상 '착한 기업'을 위한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비스화 모델이 ESG 경영에 핵심적인 이유는 인센티브 구조의 근본적 변화 때문이다. 기존 제조업에서는 더 많이 생산하고 판매할수록 수익이 늘어났다. 심지어 제품이 빨리 고장나면 신제품 판매 기회가 더 생겼다. 하지만 서비스 모델에서는 정반대다. 제품이 오래 사용될수록, 에너지 효율이 높을수록, 고장이 적을수록 서비스 제공업체의 수익성이 향상된다.

이런 구조적 변화는 자연스럽게 환경친화적 혁신을 유도한다. 필립스가 LED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도, 현대차가 전기차 라인업을 확대하는 것도 모두 서비스 모델의 경제적 논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환경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수익을 위해서도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들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자원 효율성 측면에서도 효과가 크다. 하나의 제품을 여러 고객이 순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자원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개인이 각자 세탁기를 소유하는 대신 케어십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동일한 편의를 제공하면서도 필요한 세탁기 대수는 크게 줄어든다.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기업들이 주목해야 할 점은 고객 관계의 재정의다. 제품을 팔고 끝나는 거래 중심에서 지속적인 서비스 제공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기업도 자사의 핵심 역량 영역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일회성 거래를 반복적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비스 모델로의 전환이 단순히 임대업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그 과정에서 환경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장은 이미 변하고 있다. EU의 지속가능제품 에코디자인 규정이 2025년부터 시행되고, 국내에서도 K-순환경제 이행계획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완벽한 준비보다 빠른 시작이 중요하다. 작은 파일럿 프로젝트부터 시작해서 고객 피드백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서비스화 전환은 제품을 '팔고 끝'이 아니라 고객과 평생 동반자가 되는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이 여정을 지금 시작하는 기업이 내일의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 필자소개 ]

심준규. 경영학박사.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 ESG로 성과내는 사람들>,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