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에게 ESG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고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 환경보호는 곧 비용 증가를 의미했지만, 이제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오히려 수익성을 높이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린테크(Green Technology)는 쉽게 말해 '환경을 보호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기술'이다. 태양광 패널이나 전기차처럼 친환경적이면서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든 기술을 포함한다. 특히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같은 디지털 기술들이 핵심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면서 동시에 불량률을 줄이고, 작업자 안전을 보장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솔루션들이 등장한 것이다.
스마트팩토리가 보여주는 디지털 전환의 힘
스마트팩토리란 공장의 모든 기계와 설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인공지능이 이 정보를 분석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똑똑한 공장을 말한다. 마치 사람의 몸에서 뇌가 각 기관의 상태를 파악하고 조절하는 것처럼, 공장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런 개념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 암베르그에 있는 지멘스(Siemens) 전자공장이다. 이 공장이 생산하는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는 '공장의 두뇌' 역할을 하는 제품으로, 전 세계 모든 제조업체들이 자동차부터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제품의 생산라인을 제어하는 데 사용한다.
놀라운 것은 이 공장의 성과다. 1990년 이후 공장 크기와 인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생산량을 13배나 늘렸다. 더욱 인상적인 건 하루에 350번이나 생산 전환을 한다는 점이다. 오전에는 자동차용 PLC를 만들다가 오후에는 로봇용으로, 저녁에는 또 다른 제품으로 바꾸는 식으로 1,200여 가지 제품을 유연하게 생산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99.98%라는 경이로운 품질을 달성했다.하지만 진짜 혁신은 에너지 관리에 있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센서들이 모든 기계의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AI가 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기계가 언제 고장날지 미리 예측한다. 실제로 회로기판을 자르는 기계에 예측 정비 시스템을 적용한 결과, 연간 20만 유로를 절약했다. 기계가 일하지 않을 때는 자동으로 전력을 차단하고, 생산 계획에 맞춰 에너지 사용량을 최적화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앞서가는 ESG 혁신 전략
지멘스의 성공은 다른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미국의 화학소재 기업 셀라니즈(Celanese)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 일상의 플라스틱, 섬유, 자동차 부품 원료를 만드는 이 회사는 연 매출 109억 달러 규모의 거대 기업이지만, 스마트팩토리 도입에는 더욱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셀라니즈는 전 세계 30개 공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디지털 미래 공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노르웨이 IT 기업 코그나이트(Cognite)와 협력해 모든 공장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각 공장의 기계 가동률, 제품 품질, 에너지 사용량까지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중앙에서 파악된다.
투자 효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포레스터(Forrester) 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30개 제조시설과 25,000명 직원 규모에서 이 솔루션은 14개월 만에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3년간 400% ROI를 달성해 2,160만 달러의 순이익을 창출했다. 단순히 각 공장을 개별적으로 관리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성과에 고무된 지멘스 에너지(Siemens Energy)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2024년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손잡고 전 세계 80개 공장을 연결하는 'Connected Factory' 시스템을 개발했다. 현재 18개 공장에서 가동 중인 이 시스템은 직원들이 수작업으로 하던 데이터 수집 시간을 50% 줄였고, 기계 수리비는 25% 절약했으며, 기계 가동률은 15% 향상시켰다.
그런데 이런 대규모 투자가 부담스러운 중소기업들을 위한 해법도 등장했다. 멕시코 스타트업 알리(Allie)는 기존 공장의 기계에 작은 센서만 부착하면 되는 간단한 시스템을 개발했다. 거대한 인프라 구축 없이도 AI가 생산라인의 멈춤을 미리 예측해주는 것이다.
알리를 도입한 기업들은 평균 22% 생산량 증가를 달성했고, 일부는 3개월 만에 20% 효율 향상을 경험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알리의 'Factory GPT' 시스템이다. 공장 관리자가 "3번 기계가 왜 자주 멈춰?"라고 물으면, ChatGPT처럼 AI가 데이터를 분석해서 원인과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두꺼운 매뉴얼을 뒤져가며 몇 시간 걸리던 문제 해결이 몇 분으로 단축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새로운 기회들
이처럼 다양한 규모와 접근법을 보여주는 해외 사례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ESG는 더 이상 규제 대응이나 비용 부담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만날 때 새로운 수익 창출의 핵심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독일 제조회사에서 AI로 에너지를 관리한 결과 전력비를 12-15% 절약했고, 중국 50개 기업 대상 연구에서는 AI 기술로 에너지 효율을 6.38% 높이면서 탄소 배출을 5.29% 줄일 수 있었다. 환경보호와 경제성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셈이다.
특히 중소 제조기업들에게는 더 큰 기회가 열렸다. 대기업처럼 수십억 원을 들여 거대한 시스템을 새로 구축할 필요 없이, 인터넷 기반의 간단한 센서와 AI 프로그램만으로도 빠르고 저렴하게 스마트팩토리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단순히 에너지 사용량을 정확히 측정해서 보여주기만 해도 10-20%의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 여기에 AI 예측 정비와 데이터 기반 생산 최적화까지 더하면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린테크 스타트업들에게는 더욱 명확한 기회가 보인다. 전 세계 환경 규제 강화로 에너지 절약과 탄소 감축 기술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2023년 전 세계 친환경 에너지 기술 투자만 1조 7,690억 달러에 달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비즈니스 모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보여준 핵심은 디지털 기술로 환경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반과 IT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그린테크 혁신에 최적의 조건을 보유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환경보호를 결합한 그린테크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었다. 앞서 나가는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지금,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이 변화의 물결에 합류해야 한다.
[ 필자소개 ]
심준규. 경영학박사. 더솔루션컴퍼니비 대표. <그린북 : ESG로 성과내는 사람들>, <실천으로 완성하는 ESG 전략> 저자. 기업의 ESG 역량강화 프로그램 개발과 ESG경영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