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스러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며 도전했다가 실패한 물류 상하차 알바. 나이의 현실을 깨닫고 좀 더 쉬운 길을 찾아본다.
엑스트라 알바
1년 전 영화과를 나온 포토그래퍼 동생과 넋두리를 풀다가 이야기했던 50대 보조출연, 엑스트라 알바를 기억해 낸다.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네이버 밴드의 몇몇 “액터”, “보조출연” 커뮤니티들과 고3아들이 연기학원에서 들었다고 알려준 네이버 까페 등 대부분의 구인 구직이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로 이뤄지는 것 같다.
30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1년 대학 1학년, 스무 살의 여름방학.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 알려준 인력사무소에 전화한 후 일반적인 식당, 까페가 아닌 특이한 알바들을 이어간 적이 있다.
한여름 땡볕에 집 앞 버스정류장 사거리 유동인구 기록하기, 호텔 연회장 만찬모임 서빙, 그리고 CF 엑스트라 등등
당시 엑스트라를 하려면 인력사무소에서 연결에 연결이 되어 우연히 참여한 경우이거나 연기와 관련된 사람들의 소개를 타고 줄을 잡게 된 후 계속 “유선전화”라는 도구를 통해 알바일을 찾았던 것 같다.
딱 30년이 흘렀고, 2022년은 이미 다양한 구인사이트, 알바사이트와 앱들이 공기와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더 전문화된 앱들이 구직자와 구인자를 연결해 주고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다시 2022년으로 돌아가서, 한여름 밤 물류센터에서 보낸 하루 밤에 놀란 뒤 소위 노가다와 물류 상하차가 아니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마음으로 보조출연 까페를 통해 간단한 사진을 보내고 일자리를 쉽게 배정받았다.
수원 화성 능행차
사극 영화나 드라마 보조출연으로 알았는데 안내를 보니 가을을 맞아 진행되는 서울에서 화성까지의 정조 행렬의 한 명이 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복장에 창을 들고 천천히 따라 걷는 나름 쉬운 알바란다.
생각했던 조연 엑스트라는 아니었지만 아무 걱정도 생각도 없이 당일 이른 아침 집합장소인 공원에 도착했다.
뭔가 분위기가 묘하다.
내가 지원했던 보조출연 인력센터는 중 장년 위주인가 보다. 몇명의 이삼십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40대와 50대, 그리고 60대의 아주 원숙한 인력 구성이 오히려 새롭다.
명단 확인을 할 때부터 정말 이상하게 묘하고 찌질한 분위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솔직히 딱히 어려울 것도 없는 일이라 감을 잡았고, 추적추적 비오는 가을날 컨디션만 문제없으면 될 것 같은데 30분도 안되어서 이곳을 생계의 보조수단으로 삼고 있어 보이는 경력자들의 분위기를 파악해버렸다.
이 안에서 누군가는 또 형님이고 누군가는 따까리 역할을 한다.
누군가는 젊었을 때부터의 꿈을 못 이루고 계속 이 일을 해온 것 같은데 또 많은 이들은 나처럼 좀 편한 알바를 찾다가 안착을 한 것 같다.
일하는 내내 내 주위를 맴돌던 한 아저씨는 엄청나게 큰 배낭안에 또 엄청나게 큰 보온물통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친한 형님들에게 믹스커피를 조공하면서 나름 그 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어한다. 근데 좀 많이 어눌해 보인다. 아주 많이
정말 연기를 해보고 싶어하는 중년의 남자들 ( 특히 안쓰러워 보이긴 했다 )
걍 친구랑 와서 시간 때우려는 20대 ( 참 잘 살고들 있구나 너네 )
주기적으로 덕수궁 행사부터 다양한 고전 행사들과 사극 조연으로 부수입을 올리고 있는 사람 ( 뭘 해도 잘 사실 것 같습니다 )
그 중 친해진 두 분은 다들 작게 자기 사업을 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이 알바를 하게 된 자영업자 형님들이었다. 꿀알바에 감사하면서 긍정적으로 일하고 계신 형님. 평생 선망했던 전문모델을 50대에 시작하게 된 인테리어 관련 사장님.
일 자체는 30년 전 경험했던 광고 엑스트라 알바때와 동일하게 대기의 연속이다. 출석체크 후 대기, 환복 후 대기, 행차 시작 전 대기, 비가 와서 대기...
게다가 어차피 한번 출근한 거 오전 오후 두 탕을 뛰기로 했기에 가랑비 속에 진행된 오전 행차 이후 운동장에 모여 점심도시락 이후 또 대기에 대기.
결국 비에 젖고 춥고 길었던 마지막 행렬은 수원성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고, 두시간 동안 뒤에서 들려왔던 취타대의 뿜뿜 소리는 귓가에서 가시지는 않고, 예상했던 것처럼 이놈의 아재 집단은 환복과 장비 반납소에서 쌍욕을 먹어가면서도 순식간에 사방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고, 나는 그 무리중의 한 명이었다.
이날도 역시 도망치듯이 집을 향했다
비만 안 왔다면 정말 꿀인 알바. 해산과 함께 바로 계좌로 입금이 된다. 기억해 보니 딱 30년 전 풋풋한 스무살 대학생의 나는 새벽 두세시까지 널널하게 버텼던 하룻밤의 엑스트라 알바가 끝나고 집에 가서 아버지께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아빠 나 오늘 저녁 내내 도시락 먹고 백화점 안에서 앉아서 대기하다가 한시간 일하고 돈 벌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비에 쫄딱 맞은 차림으로 집에 도착한 50대 아재가 와이프와 아들에게 이야기한다.
“나 오늘 점심 도시락 먹고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대기하다가 한 세시간 걷고 돈 벌었다!”
30년이 흘러 세상은 이렇게 무섭게 변했지만 또 무섭게 변하지 않았다.
이제 막 50대가 된 엑스세대. 가끔은 너무나 빠른 변화에 무섭고 두려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몰래 시험지와 답지를 미리 보고 시험을 치루는 듯한 여유가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날 이후 딱히 연락이 오지는 않는다. 30년전 그 때처럼 내가 인력소개소 대표에게 문자로라도 물어봐야 하나보다.
2023년 오늘,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반짝이는 시절과 비교해서 크게 변하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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