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크리에이터와의 우연한 만남, pop-up業 interview
by.컨츄리시티즌 X 로컬 에디터 1기
컨츄리시티즌 로컬 에디터, 오지현 에디터가 소개합니다.
정선영 크리에이터
2020년, 하동 집단 이주 및 버거집 창업으로 매스컴의 관심을 받았던 7명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정선영 크리에이터는 부산에서 10년 정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만나게 된 6명과 함께 하동으로 집단 이주해 <고하버거>를 창업하였습니다. 현재는 개인 크리에이터로 청년 마을 <오히려 하동> 등 하동에서 만난 다른 인연들과 함께 관광 상품 기획·운영 등 다양한 활동들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하동 이주 4년 차가 된 정선영 크리에이터를 만나 하동 이주와 창업, 그리고 로컬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나눠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하동에서 관광 상품을 기획하고 있고, 그 기획한 상품을 실험해 보며 살고 있는 하동 이주 4년 차 정선영입니다. 활동할 때는 ‘행님’이란 활동명을 사용해요. 다양한 일을 하며 여러 조직들과 협업하다 보니 그때마다 직위도 달라지고 어떻게 불러야 할지 물어보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편하게 ‘행님’이라도 부르라고 한 걸 시작으로 쭉 ‘행님’이라는 이름을 가져가고 있어요.
오히려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래요, 친근하게 생각해 주면 고마운 거죠. (웃음)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바라본 나의 로컬(하동)은 어떤 곳인가요?
도시에서 계시던 분들이 이쪽으로 오면 다들 느끼시는 거겠지만 여기는 편의점, 영화관, 마트처럼 도시에 비해서 없는 게 참 많아요. 하지만 거기 반해서 또 있는 것도 있죠. 별 많고, 공기 좋고, 아름다운 자연도 있고요. 그런 부분들이 하동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 뭐냐고 하면 딱 하나 꼽지는 못하겠어요. 근데 제가 50이 넘게 살면서 7개 정도의 지역에서 살아봤는데 살면서 '아, 좋다'라는 말은 하동에서 제일 많이 했어요. 주변 사람이 좋아서, 풍광이 좋아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살면서 좋다는 말을 하동에서 4년 동안 제일 많이 한 것 같아요.
2020년도에 청년 7명이 하동으로 집단 이주한다고 해서 당시 굉장히 이슈가 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이주하시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하동 오기 전에 숙박업을 한 10년 정도 했어요. 그때 인연이 닿은 사장님들이 바로 같이 집단 이주한 그 6명이에요. 하동으로 왔을 때는 코로나가 굉장히 심해서 숙박업이 힘든 시기였어요. 그래서 각자 가지고 있는 재능들이 있으니 모여서 뭔가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사석에서 지나가듯이 나온 얘기가 실현이 된 거죠.
사실 처음부터 하동을 정해 놓은 건 아니었고요, 여러 군데를 알아보다 고전면 고하리에 들어왔는데 그때가 딱 벚꽃 피는 시즌, 5월이었거든요. 한번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봄에 엄청 좋아요. 만화에서처럼 딱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거기에 그냥 반한 거죠. 그리고 마침 우리가 원했던 창고도 있었고 우리가 다 같이 살 수 있는 집도 있었으니 타이밍이 맞아떨어졌어요. 코로나 때문에 힘든 점도 있었지만 코로나 덕에 같이 뭉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 되었죠.
7인이 집단 이주를 해서 처음 시작하신 게 바로 <고하버거> 였죠. 창업하시게 된 과정과 이유가 뭐였나요?
나중에 7명이 가진 각자의 재능들을 발휘해서 활동할 수 있으려면 우선은 우리가 먹고 살 기반이 되는 것을 마련해야겠다 싶었어요. 제가 하는 일이 솔직히 돈을 가져다주지는 않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여행사를 차리고 관광 상품을 팔면 수익이 생기겠지만 제가 하고 싶고, 하고 있는 건 하동에 대해 공부하고 하동에 대해 알리는 거예요. 그런 일들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다 보니 사람들에게 비교적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점은 좋지만 지속적이지 않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는 어려움이 있죠. 그래도 제가 자부심을 느끼고 하고 싶은 일이니 계속 하고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금전적으로 기반이 필요했고, 그 기반이 버거집이 되었죠.
저희는 당시 요리하는 사람, 여행하는 사람, 디저트 제과 교육하는 사람 그리고 저처럼 관광업을 하던 사람 등 7명이 다 다른 능력들이 있었고, 그중 지금 <고하버거>의 레시피나 버거를 만들 수 있게 요식업을 굉장히 오래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도 각자 본인 경력, 재능들을 합쳐서 생활공동체·경제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버거집을 함께 운영했죠.
생활공동체·경제공동체라.. 각자도생이 어울리는 현대 사회에서는 굉장히 이상적으로 들리는데요. 실제로는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처음에 하게 된 건 7명이 모여서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고, 거기에 다 동의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고하버거> 옆에 큰 집을 구해서 같이 살고 우선은 버거집에서 나오는 수익을 공유하다 버거집이 기반이 잡히면 각자 다른 재능을 펼치고 그로 인한 수익들도 다 공유하기로 하고 시작했죠.
현재는 여러 이유로 인해 4명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고, 저 포함 3명이 하동에 계속 있어요. 생활공동체, 경제공동체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형태잖아요? 어찌 보면 저희도 실패고요. 경험을 해보니 확실히 어렵긴 합니다. 근데 안되는 건 아니라고 느꼈어요. 물론 각자의 기여도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자가 가진 재능이 있으니 상호보완된다고 생각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부분이 있어야죠.
2020년 하동 이주 후 벌써 4년째 하동 살이 중이신데요. 여행하는 것과 실제로 살아보는 것은 확연히 다를 것 같습니다. 로컬에 사시면서 느꼈던 제일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나요?
로컬은 옛날부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두레, 품앗이 이런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몸에 배어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부분이 처음 로컬에서 살게 되었을 때 제일 크게 느낀 차이점이었어요. 저희들의 경우엔 이사를 와서 현장에서 버거집 구축한다고 일을 하고 있을 때 지나가시는 어르신들 보이면 다 인사를 드렸어요. 그럼 미숫가루도 타다 주시고 수박도 잘라다 주시면서 이장님한텐 인사드렸냐, 면장님한텐 인사드렸냐 하시거든요. 이런 문화가 우리한테는 생소하잖아요. 이런 문화가 좀 안 맞을 수는 있어요. 그래도 여기서 생활하려면 어느 정도 흡수하려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로 나중에 득을 보기도 해요.
저희가 어르신들 말 듣고 이장님, 면장님께 옷 예쁘게 입고 인사드리러 갔는데 (웃음) 좋게 봐주셨는지 주무관님께 <고하버거> 얘기를 마을 신문에 내자라고 말씀드렸더라고요. 그렇게 저희 이야기가 마을 신문에 났는데 당시 코로나가 한참 때라 저희 얘기가 이슈가 되었어요. 그게 이어져서 여러 매스컴도 타게 되면서 덕을 많이 봤어요. 도시에서 자란 우리들은 겪어보지 못한 생소한 문화지만 로컬에서 생활을 하려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려고 해야 하는 지점들이 있고 저희는 그 덕을 보았죠. 어느 로컬이든 그곳에서 살려면 그곳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흡수하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로컬 살이는 역시 관계와 커뮤니티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하동의 커뮤니티는 어떤가요?
지금껏 제가 하동에서 커뮤니티들을 접해본 바로는 하동으로 귀촌하신 분들이나 원래 하동이 고향이고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다시 하동으로 돌아오신 분들의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동에 원래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하동으로 온 사람들이 화합 될 수 있는 어떤 매개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그럼 서로 다른 시각들이 합쳐져서 여러 분야에서 시너지효과가 날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로컬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개인적으로 지역의 크리에이터들, 청년들을 모으는 게 일단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자체나 지역에서는 하동에 활동하는 청년들이 많은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만나보면 많아요. 많지만 드러나지 않아서 아직 활기를 못 피는 분들도 많고요.
하동으로 온 초창기에 <청년 유랑단>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다른 하동 분들 7명과 함께 하동으로 귀농, 귀촌 한 청년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7명이다 보니 연령대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고 각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각자가 추구하는 생각들이 달라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커뮤니티 메이킹을 할 수 있었어요. 만나서 인터뷰도 했었는데 프로그램 중간에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끝맺음 제대로 못해서 아쉬워요.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지자체의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몇 월, 며칠, 몇 시 모이세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모으려고 하면 모이기가 힘들어요. <청년 유랑단>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직접 만나면서 모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통해 그때의 인연이 다른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여러모로 제가 하동에서 4년 차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고하버거> 이후에 말씀 해주신 <청년 유랑단> 뿐만 아니라. 하동에서 여러 조직들과 협업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셨어요. 어떤게 제일 기억에 남으신가요?
하동형 DMO 사업 일환으로 진행했던 <지리산소멸단>이라고, <청년 유랑단> 활동 때처럼 하동에서 활동하는 드러나지 않은 청년들을 많이 찾았던 프로그램이에요.
하동에서 하고 싶은 일들도 많고, 지역에서도 우리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하는 의지를 청년들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만나게 된 청년들 중에 지금 청년마을 <오히려하동> 운영하는 <다른 파도> 청년들도 있었고, 그 인연으로 작년 디지털 디톡스 여행 프로그램도 같이 진행했었고요. 사업이 끝나고 군에서도 이렇게 지역에 있는 인재들을 찾아냈다는 게 큰 성과인 것 같다고 얘기를 해주셔서 보람찼고 저도 잘 된 부분이라 생각해요.
행님이 해오신 활동들을 보면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을 찾고 그들을 연결해 그들이 지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서포트해 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서포트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고요. 여기 남아 있을 수 있게 해주는 계기점, 그 점 하나 찍어줬다고 생각해요. 그런 계기점을 찍어줄 수 있는 존재가 다양해지면 좋겠고 계기점을 찍어줄 수 있는 방법이 다각도로 그들에게 맞춰서 진행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행님이 하동에서 만들어 가고 싶은 거나 더 채워가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걸까요?
앞으로 하동에서 더 만들어 가고 싶은 부분은 막연하고 꿈같은 이야기긴 하지만 관광문화재단이나 비슷한 성격의 협회 같은 중간 지원 조직이 있으면 좋겠어요. 지자체 공무원분들은 1~3년마다 바뀌시고 새로운 업무를 맡으시다 보니 중간 지원 조직이 있으면 일을 추진하거나 똑같은 결의 사업을 계속해서 이어갈 때 좀 더 편리할 것 같아요.
중간 지원 조직이 생긴다면 저는 사람이 제일 크고 중요한 자원이라 생각해서 청년 유랑단 했던 것처럼 사람을 찾으러 다니고 싶어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하동의 관광자원, 문화자원 등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역민들과 청년들과 같이 일을 하고 싶고 하동에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들과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로컬에서 업을 가지거나 뭔가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지역에 대한 팬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의의 경쟁심을 가지고 내 지역의 어떤 것이 좋다면 더 좋게 발전시키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 것이 있다면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려는 게 필요해요.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지자체가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게 일 순위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진행&편집 : 오지현 에디터
촬영 : 김지영 에디터&오지현 에디터
총괄 :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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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발견한 팝업스토어처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종 즐거운 인연이 되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로컬 브랜드, 로컬 크리에이터들을 우연히 만나보세요.
<POP-UP業 interview>에서는 컨츄리시티즌과 로컬 에디터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로컬을 업으로 삼고있는 10인의 로컬 크리에이터와의 인터뷰를 통해 새로운 로컬,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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