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천(靜天)의 에너지 이야기 ] 모두 내가 한 것이라는 거짓말, 이제 그만

정 천 전문위원 승인 2024.02.07 19:05 의견 0

지역본부에 본사 본부장이 격려차 방문했다. 업무보고를 받은 본부장은 직원들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A 대리 : 본부장님, 경쟁사에서 말하길 우리 회사에 대해 이런 점이 참 부럽다고 말합니다.

B 사원 : 네,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도 이 제도는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본부장 : 그거 내가 과장 때 만든 거야.

일 동 : 우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C 과장 : 본부장님, 이번 인사제도는 그 동안 직원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것 같습니다.

D 대리 : 지역근무가 본사에 비해 약점이라고 여겨졌는데 그런 고민이 해결된 것 같습니다.

본부장 : 다행이군. 이번 인사제도는 여러분의 고민을 충분히 듣고 HR에 내가 지시한 거야.

일 동 : 본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기가 막혔다. 그 본부장이 과장이었을 때부터 봐왔다. 그러나 A 대리가 칭찬한 복리후생제도는 그 본부장이 아니라 오래 전에 퇴사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본부장의 동료가 만든 것이었다. 또한 C 과장이 이야기한 새로운 인사제도는 본부장이 지시한 것이 아니었다. 본부장은 새로운 인사제도에 부정적인 사람이었고 이 제도가 나왔을 때 평가에 참여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부장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지역근무 직원들에게 마치 본인이 모든 것을 만들고 해결한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순간 얼마 남지 않은 존경심마저 사리지기 시작했다.

그가 떠난 자리

회식이 끝나고 본부장도 본사를 향해 차를 타고 떠났다. 본부장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우리만 남은 2차 자리에서 맥주잔을 한 번에 털어 넣은 부장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 장 : XXX…우리를 바보로 아나…

1년 후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마녀사냥하고 동료의 공을 가로채기로 유명했던 본부장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미리 부사장에게 줄을 댄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를 즐겼고,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던 사람들은 다시 묵묵히 헤드헌터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직장인의 봄

2023년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은 1980년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그린 영화다. 영화를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스마트워치 심박수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는 챌린지가 유행했을 정도로 영화 자체가 사회적 현상이 되었고, 영화관 불경기 속에서 1300만명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수를 기록했다.

어린 아이들이 무시무시한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공룡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문 밖에서 육식공룡이 뛰어다니고 친구들을 잡아먹는다면 공룡은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혐오하고 무찔러야 하는 대상이 될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사건이라면 관객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일어났던,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분노의 챌린지를 할 만큼 공감했던 것이다.

다시 부사장이 된 본부장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이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하거나 심지어 분노하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이다. 가상의 이야기가 가상이 아닌 것으로 느껴질 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이 있다. 인재를 선발에 적재적소에 두어야 성공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인재를 적재적소에 두지 않는 조직을 보는 후배들은 더 이상 비전을 느끼지 못하고 탈출을 준비한다.

글 | 정천(靜天)

<필자 소개>

재수를 거쳐 입학한 대학시절, IMF 때문에 낭만과 철학을 느낄 여유도 없이 살다가, 답답한 마음에 읽게 된 몇 권의 책이 세상살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꿔주었다. 두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껴 지금도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16년 차 직장인이며 컴플라이언스, 공정거래, 자산관리, 감사, 윤리경영, 마케팅 등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해왔다. 일년에 100권이 넘는 책을 읽을 정도로 다독가이며, 팟캐스트, 블로그, 유튜브, 컬럼리스트 활동과 가끔 서는 대학강단에서 자신의 꿈을 <Mr. Motivation>으로 소개하고 있다.

대구 출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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